천안함 46명의 희생자 외에, UDT 베테랑 한주호 준위의 죽음은, 희생자와 구조지원에 나섰다가 침몰하여 전원 사망한 금양호 선원들, 그리고 추락한 링스헬기 조종사의 희생과 함께 참으로 안타까운 사고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한주호 준위 사고 순간 같은 작업현장에 있었다는 UDT대대장 권영대 중령의 기록에 의하면, 한주호 준위는 2010년 3월 28일 오후 권 중령과 함께 헬기편으로 백령도에 도착하여, 오후에 바로 함수 수색작업에 투입됩니다.
김정오 상사와 함께 제1조로 투입된 한주호 준위는 함수를 발견치 못하고 올라왔으며, 다음 제2조로 투입된 박현규 상사조가 함수를 발견한 후 부이를 설치한 것으로, 권 중령은 자신의 저서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틀 뒤인 3월 30일 오후 함수 수색을 위해 잠수에 투입되었던 한주호 준위는 의식불명 상태로 발견되었고, 산소감압장치가 있는 미 살보함으로 이송되어 응급조치를 받았으나 끝내 사망합니다.
여기까지가 정부와 국방부의 공식발표로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졌으며, 권영대 중령의 저서에 기록된 내용과도 동일합니다.
그런데 이 상황에 대한 다른 기록과 증언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 내용은 KBS 기자들에 의해 취재되어 2010년 4월 7일 저녁 KBS 9시뉴스로 특종 보도됩니다. (아래 동영상을 클릭하시면 동영상 뉴스를 보실 수 있습니다.)
( KBS 9시 뉴스 - 한주호 준위 다른 곳에서 숨졌다 ) ( 동영상 - https://youtu.be/eOtaHsM6erk )
KBS는 <"다른 곳에서 숨졌다"> 제하의 단독 보도를 통해 "한 준위가 당초 군 당국이 발표한 곳과 다른 제3의 지점에서 숨졌다는 증언이 새롭게 나왔다"며, 군 당국은 한 준위가 함수 부분에서 수색작업을 하다 의식을 잃었다고 발표했지만 "실제로 고 한주호 준위는 이곳 함수가 아닌 다른 곳에서 수색작업을 하다 의식을 잃었다는 증언이 나왔다"고 보도했습니다.
KBS 황현택, 최영윤, 이병도 세 기자는 “한 준위는 백령도와 대청도 사이의 함수로부터 1.8Km, 함미로부터 6Km 떨어진 곳인, 함수도 함미도 아닌 제3의 부표에서 숨진 것으로 보인다”며, 함수로부터 북서쪽 해상, 용트림 바위 바로 앞 빨간색 부표가 설치된 곳을 지목합니다.
함미와 함수 침몰지점에 크레인이 배치된 것은 4월4일(함미)과 4월5일(함수)이었습니다. 따라서 한 준위가 사망한 3월30일에는 오로지 빨간 부표만 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한주호 준위와 UDT 동기인 예비역 이헌규 씨는, 3월29일 다른 예비역 동지회원들과 함께 백령도에 들어와 한 준위 작업팀에 합류하여 함께 잠수하였으며, 당시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증언합니다.
이헌규씨가 한 준위와 함께 작업한 장소(제3의 부표 지점)에, 3월29일 한 준위가 어군탐지기를 이용하여 그 위치를 찾았으며, 직접 부이를 띄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 함수와 함미는 그 하루 전인 3월28일 저녁 8시와 10시경 각각 발견되어 부이가 설치되었고, 더구나 이번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권영대 중령의 증언에 의하면 ‘어군탐지기’를 이용해 함수를 찾은 사실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변호인 : 함수를 발견할 당시 ‘어군탐지기’를 사용한 사실이 있는가요? 증 인 : 없습니다. (2017. 5. 18 제5차 항소심 공판에서 권영대 증인의 증언) |
그러면 이헌규 UDT예비역 대원이 증언하였던, 29일 한 준위가 어군탐지기를 이용하여 발견하고 부이를 설치한 곳에는 무엇이 있었으며, 한 준위는 그곳에서 무슨 작업을 하다가 사망한 것일까요?
사실 그 비밀을 푸는 것이 바로 천안함 사건의 진실이며, 천안함 사고 첫 이틀 동안 함수와 함미 수색도 뒤로 한 채 매달려야 했던, 제3의 부표가 설치된 그 곳 해저에 가라앉은 대형구조물에서의 작업내용이 천안함 사건의 열쇠입니다.
"자식같은 후배들을 위해 물에 들어가는데 군과의 협조가 원활하지 못해 아쉽습니다." (중략) 이헌규씨는 "해치(함정의 출입구)도 도면이 없으니 어느 부분인지도 모르겠고, 해치의 크기가 사람이 손을 쭉 뻗어 동그라미를 만들 정도의 구멍인데 군이 보유한 산소통 가지고는 들어갈 수가 없다. 군용은 산소통이 2개고 민간은 1개기 때문이다. 그 구멍속에서 뭘 구조하나"라고 지적했다. [출처: 중앙일보] UDT전우회, "군과의 협력이 아쉽다" http://news.joins.com/article/4089250 |
이헌규씨는 인터뷰 모두에 무슨 이유에선지 "군과의 협조가 원활하지 못해 아쉽다"며 말문을 엽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접근한 해치가 “사람이 손을 쭉 뻗어 동그라미를 만들 정도의 구멍”이라고 언론과 인터뷰를 하였으며, 그 사실을 법정에 증언석에 나와서도 인정하였습니다.
2015년 6월22일 천안함 1심 제38차 공판에서 저는 이헌규씨에게 해치의 샘플 사진을 제시하여 자신이 제3의 부표 아래에서 보았던 대형구조물의 해치가 어떤 형태였는지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그는 둥근 형태의 해치를 지목하더군요.
천안함 제38차 공판에서 이헌규씨가 지목한 해치
그것은 참으로 놀라운 사실입니다. 이헌규씨가 접근하였던 대형구조물의 해치는 천안함 함수와는 전혀 무관한 것이 판명된 것입니다. 국방부가 주장하듯 UDT 대원들이 함수에 접근하기 위해 설치했다는 하잠줄이 설치된 천안함 함수에는 저런 해치가 존재하지 않으며, 사람이 서서 다닐 정도의 대형 사각 해치가 세 개나 있기 때문입니다.
2010. 4. 24 인양중인 천안함 함수. 천안함 함수의 좌현 출입구는 모두 대형 4각 해치이다 천안함과 동급의 초계함인 영주함의 해치. 사람이 서서 출입하기에 충분하며 180도 열려 고박되게 되어 있다.
국방부가 주장하는 바 UDT대원들이 함수에 접근하여 하잠줄을 설치했다는 해치는 위의 사진과 같은 이것은, 이헌규씨가 증언한 “군이 보유한 산소통을 가지고 들어갈 수 없는 해치”와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한 주호 준위가 작업을 하다가 사망한 장소와, UDT 권영대 중령이 작업을 지휘한 장소가 같은 곳인지 아니면 전혀 다른 곳인지, 그것은 현재 ‘진실게임’의 중심에 있는 중요 사안이 되었습니다만, 권영대 중령이 작업을 지휘하였던 곳이 함수가 아닌 다른 곳이었다는 사실은, 그의 ‘머리’와는 달리 ‘몸’이 기억하는 사실로 인해 전혀 엉뚱한 곳에서 밝혀지게 됩니다.
이른 바 <수심의 문제>이며, 그것은 권영대 중령이 저술한 책 <폭침, 어뢰를 찾다>에 몇 차례에 걸쳐 소상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고맙게도 그 또한 법정에서 그 사실을 정확하게 확인해 주었습니다. 이번 항소심 공판에서 매우 비중있게 다루어졌던 ‘수심의 문제’- 다음 편의 글에서 자세히 소개하겠습니다.
신상철
덧글 : 제3의 부표의 의혹과 관련하여 상세한 내용이 궁금하신 분께서는 2015. 6. 30 재판부에 ‘피고인 의견서’ 형식으로 제출한 [법원제출 의견서] ‘제3의 부표’관련 UDT 대원 증언에 대하여 - 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천안함 항소심 제5차 공판 ①] 거짓의 향연 - 폭침 어뢰를 찾다 ? [천안함 항소심 제5차 공판 ②] 암초 충돌했다고 결코 분리되지 않는다? [천안함 항소심 제5차 공판 ③] 박성균 하사만 몰랐던 ‘골든타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