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4, 천안함 그리고 과학계 적폐
지겹다.
5월24일 이낙연 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자유한국당 소속 의원이 천안함 침몰 사건의 원인이 뭐냐고 물었다. 총리 후보에게서 ‘북한 소행이라고 믿는다’는 답변을 받아내는 것이 왜 그리 자유한국당에는 중요할까? 천안함 사건은 수구세력에게 사상검증의 전가의 보도가 된 듯하다.
과학 연구를 평생의 업으로 삼고 사는 나에겐 적반하장이다.
최근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별보좌관이 5·24 조치를 전향적으로 재정비해야 한다고 밝혔다. 5·24 조치는 7년 전 이명박 정부가 천안함 침몰의 원인이 북한 어뢰라고 강변하면서 내린 북한 제재 조치다. 그러자 보수진영이 벌떼같이 일어나 발끈했다.
과연 5·24 조치를 내린 근거는 정당했을까?
7년 전 한-미 군사훈련, 그것도 대잠수함 훈련 중에 천안함이 침몰했다. 그 후 이명박 정부가 임명한 민관합동조사단(이하 합조단)이 한달 반이란 짧은 기간 동안의 졸속조사 끝에, 천안함 침몰이 북한 잠수함이 쏜 어뢰의 소행이라고 단정하는 중간조사결과를 발표했다.
그 중간보고서의 결론을 내세우며, 이명박 대통령은 전쟁박물관에서 비장한 모습으로 북한 제재를 발표하였는데, 그것이 문제의 5·24 조치다.
그럼 그 합조단의 결론은 과학적 근거가 있었나? 전혀 없었다. 근거는커녕 합조단이 스모킹건(결정적 증거)이라고 제시했던 과학 데이터의 일부는 분명 조작이었다.
중간조사결과 발표 직후 나는 그들이 제시한 과학 데이터를 보고 문제점을 발견하고, 조작이 되었음을 과학적으로 증명하였다. 그것은 이미 여러 언론보도와 졸저 <과학의 양심, 천안함을 추적하다>에 발표되었다. 스모킹건은 없었던 것이다.
그즈음 과학계 최고 잡지 중 하나인 <네이처>는 합조단의 결론에 합리적 의문을 제기했던 사람들의 주장을 자세히 다뤘다. 한국 내에도 천안함 침몰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열정적으로 노력한 언론인이 여럿 있었다.
합리적 사회라면 그 합조단의 결론을 놓고 철저히 재논의를 해야 했다. 그러나 ‘이명박근혜 정권’ 7년 내내 재논의는커녕 보수진영은 합리적 의문을 제기했던 사람들을 폄하하는 데만 몰두했다.
그러고는 자신들의 허무맹랑한 주장만 앵무새처럼 줄기차게 되뇌었다. 거짓도 무수히 되풀이하면 사실처럼 된다는 히틀러 정권의 언론관과 똑같이 말이다.
5월9일, 촛불혁명을 기반으로 문재인 정부가 탄생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한국 사회를 제대로 된 민주공화국으로 만들겠다고 다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겨레티브이(TV)’가 최근 선정한 ‘이명박근혜 9년 의혹 10선’에 언급된 모든 사건의 진상을 낱낱이 밝혀야 할 것이다. 그중 가장 힘든 문제가 바로 천안함 사건이라고 본다.
분단 현실로 빨갱이, 종북이란 혐의에 대한 두려움이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그 두려움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한 한국은 민주공화국이 될 수 없다.
천안함 침몰 진상규명의 결정적 첫걸음은 의외로 쉬운 곳에 있다. 합조단이 실시한 모의폭발실험을 다시 하면 된다. 재실험은 거짓의 둑이 터지는 계기가 될 것이다.
천안함 관련 내용을 보도한 한 방송사 제작팀에 따르면, 2010년 당시 모의폭발실험을 한 연구원들은 실험 결과가 북한 어뢰설과는 무관함을 알았고, 그대로 주장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북한 어뢰설에 맞게 데이터를 조작하도록 밀어붙인 사람이 합조단 대표단에 있었다고 한다.
한국 과학계에도 출세지상주의가 만연해 있었다.
천안함 사건의 진실규명을 통해 과학기술계의 적폐 또한 청산되기를 바란다.
이승헌
미국 버지니아대학 물리학과 석좌교수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96703.html?_fr=mt0#csidxb3b07504022d39d933db5a74a36174c
'천안함 관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재미학자·국회의원 “천안함 7년, 재조사…판도라상자 열어야” (0) | 2017.05.31 |
---|---|
천안함 1번어뢰와 딸려 온 철사와 ‘금속밴드’ 정체는 (0) | 2017.05.30 |
한주호 준위가 작업하다 숨진 장소는 함수가 아니다. 한주호 준위의 작업과 제3의 부표 (0) | 2017.05.29 |
[천안함 항소심 제5차 공판 ③] 박성균 하사만 몰랐던 ‘골든타임’ (0) | 2017.05.24 |
암초 충돌했다고 결코 분리되지 않는다? (0) | 2017.05.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