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공판이 끝나게 되면 재판부는 선고문 작성에 들어가고 이후 검찰의 구형 그리고 판사의 판결문 낭독과 선고를 내리는 것으로 2심인 항소심은 종결됩니다. 하지만 무죄가 나오면 검찰이 상고할 것이고, 유죄가 나오면 피고인측이 상고할 것이니 최종심인 대법원까지 가는 것은 불가피할 것 같습니다.
1. 정호원, “폭발한 배와 천안함 다르다.”
이번 글부터는 이번 재판의 주요 쟁점들을 차례대로 짚어나가려고 합니다. 정호원 증인에게 제가 질문했던 것과 그의 답변 그리고 관련된 사실들에 대한 분석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으로 설명드리겠습니다.
미디어오늘 조현호 기자는 천안함 첫 재판부터 지금까지 7년 반동안 거의 빠짐없이 모든 재판을 취재 보도한 유일한 기자입니다. 짧게는 두 시간, 길 때는 여섯 시간 재판을 끝내고 나면 오늘 핵심쟁점(소위 기자들 속어로 ‘야마’)이 무엇이었는지 혼란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중요한 내용이 쏟아질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럴 때에는 다음 날 ‘미디어오늘’에 들어가면 답이 나옵니다. 조현호 기자가 감각적으로 우선 순위를 뽑아내니까요.
http://www.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39802
정호원 88수중개발 부사장이 “폭발한 배의 상태와 천안함 절단면의 손상상태가 다르다”고 증언하였습니다.
정답입니다.
사고난 선박과 선체 손상을 많이 접하고 다루어 본 전문가들은 절단면을 보면 폭발사고로 찢어졌는지, 물리적인 충격에 의해 찢어졌는지 충분히 구분해 냅니다. 정 부사장은 변호인측의 “폭발한 선박을 인양한 경험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두라3호를 인양한 실적이 있다.”고 답변하였습니다.
두라3호는 2012년 1월 15일 휘발유를 인천항에서 하역하고 출항후 인천앞바다 자월도 해상에서 가스프리작업(Gas Free, 선창내 남아있는 유증기를 배출시키는 작업)을 하던 중 스파크(추정)로 인한 폭발로 11명이 사망한 사건입니다.
알파잠수 이종인 대표 또한 두라3호 인양에 참여하여 시신수습을 하며 제게 참혹한 모습의 사진과 함께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신 대표, 시신들이 벽에 발려있다. 이게 폭발이야.. 폭발이 이렇게 무서운 것이야..”
그 때의 기억이 떠올라 저는 정호원 부사장에게 물었습니다. “시신의 형태는 어떻던가요?”하고 묻자 그는 “너무나 비참한 모습이었습니다. 팔다리가 떨어져 나가고..”이어 “일부 시신은 찾지도 못했죠?”하고 묻자 그는 "네, 시신 중 4구는 벽에 발려있다고 표현해야 할 정도로.."라고 답하였습니다.
폭발사고는 그렇듯 인체에 미치는 영향, 철판의 손상 형태 뿐만아니라 내부 곳곳에 그을음의 존재여부, 고열에 노출된 흔적, 폭발력에 의한 비산형태 등으로 구분이 가능합니다. 적어도 선체 검사를 해 본 사람이라면 말이지요.
2. 정호원, “절단면의 손상이 무언가의 충격으로 긁힌 것으로 보였다.”
이 부분 매우 중요한 증언입니다. 정 부사장은 이미 “폭발된 배와 다르다”고 못을 박은 후 “무언가의 충격”을 증언합니다. 즉 ‘폭발력’이 아닌 ‘물리적’충격을 말하는 거지요. 그것을 잘 보여주는 사진 한 장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만약 폭발이 있었다면 상갑판(A) 은 하늘로 들어올려져야 맞습니다. 이유는 폭발력은 'V'자로 비산하므로 두께가 얼마되지 않는 상갑판의 경우 폭발의 엄청난 압력과 솟구치는 물기둥에 의해 두라3호의 상갑판처럼 위로 들어올려져야 하는 거지요.
그리고 둥글게 밀려들어간 철판(B)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이곳의 밀려들어간 형태는 어떻게 생긴 물체가 충격을 주며 밀고 들어갔는지 알 수 있는 유일한 손상증거(Damage Evidence)입니다.
그리고 이 곳에 대해 정호원 증인은 중요한 증언을 합니다. 군함에 없는 페인트 색을 발견했다는 것이지요.
그것은 지금까지 제가 여러차례 문제제기를 했던 사안이기에, 그 말을 듣는 순간 숨이 멋는 느낌이었습니다. (이 부분 너무나 중요하므로 이번 재판의 기록이 재판부로부터 입수되는대로 상세히 글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3. 정호원, “선저 스크래치는 해저에 가라앉은 후 생긴 것이라 보기 어렵다.”
이 증언은 “천안함 절단면 폭발한 배와 다르다”증언과 함께 파괴력 높은, 거의 결정적인 증언이라 할 것입니다.
그 동안 국방부는 선저 스크랫치에 대해 “함미가 해저에 가라앉아 있는 동안 강한 조류에 의해 떠밀리며 생긴 스크랫치”라고 주장해 왔습니다. 정호원 부사장은 이에 대하여 “절대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못박았습니다. (사실 국방부의 이런 유치한 주장은 세계 해운강국이며 조선1위국으로서 너무나 부끄럽고 창피한 주장입니다.)
평택2함대에서 천안함 선저하부 스크랫치를 살피고 있는 알파잠수 이종인 대표
애시당초 국방부의 주장이 설득력을 잃은 것은, 함미 자체의 무게가 600톤, 선내에 가득찬 물이 600톤, 모두 1,200톤에 달하는 중량물이 조류에 쓸린다는 것도 황당한 논리이지만, 위의 사진처럼 종방향으로, 그것도 좌우현 모두 스크랫치가 발생한 것은 국방부 논리로는 절대로 설명될 수 없는 것이지요.
천안함이 반파되어 함수와 함미가 분리되는 순간 함수는 옆으로 비스듬히 눕습니다. 함수 하부는 침실 및 사무실등 공간이 많아 가벼운 반면 상부는 함교와 포탑의 중량으로 인해 무게중심이 흐트러지면서 오뚜기 넘어지듯 기울어지지만 그나마 선내 공간이 갖고 있는 부력으로 인해 상당시간 떠있을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함미는 기관실이 하부에 있고 메인엔진과 가스터빈등 중량물이 많기때문에 함미는 곧장 앞으로 숙여지면서 바다속으로 천천히 빨려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해저에서 앞부분이 먼저 '쿵'하고 닿고 이어 뒷부분이 해저에 닿으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1,200톤이 모래와 뻘로 된 해저지형에 박혀 이후 함미는 움직이지 않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니 해저에서 조류에 쓸려 스크랫치가 발생하는 것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위의 사진은 반파후 함수와 함미가 분리된 사진에 천안함 함미를 합성한 사진입니다. 보시는 것처럼 함미는 수면으로 완전히 들어가기 전부터 무거운 엔진과 가스터빈실이 있는 앞부분이 먼저 해저로 들어가면서 가라앉는 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
반파되기 전 어디선가 좌초하여 그 흔적을 종방향으로 길게 남긴 채 침몰한 천안함. 그 비극의 천안함은 해저에서 조류에 휩쓸려 선저에 스크랫치를 남겼다는 국방부의 황당한 주장과 함께 길이길이 회자되며 우리나라 해난사에 웃음거리로 남을 것입니다.
끝으로, 국방부 주장이 얼마나 엉터리인지 사진을 비교해 드리는 것으로 제3편 글을 마치겠습니다. 연평해전때 서해바다에 가라앉아 무려 53일 동안 조류가 센 해저에 있다가 인양된 고속정 357호의 선저하부와 20일 머물다 인양된 천안함의 선저를 비교해 보시면 충분히 이해가 되실 겁니다.
신상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