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복의 인물탐구]천안함 진실투쟁 8년 신상철 “북한 김영철 증인신청 고려 중”
(경향신문 / 원희복 기자 / 2018-03-11)
2010년 3월 26일 백령도 근처 해상에서 침몰한 천안함이 8년 만에 다시 수면위로 떠오르고 있다. (천안함은 인양돼 지금 평택 2함대 사령부에 전시돼 있다) 천안함 침몰의 진실문제가 다시 떠오른 것이다. 평창 동계올림픽 폐막식에 북한이 김영철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을 파견하자 자유한국당이 ‘천안함 폭침의 주범’이라며 극력 반발했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파주 통일대교에 드러누우며 철야농성까지 감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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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철 서프라이즈 대표 / 우철훈 선임기자 |
이에 국민들은 ‘차제에 천안함 진실을 규명하자’고 나섰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재조사 목소리가 높아지더니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르고, 2월 28일 청와대 청원에 ‘천안함 진실규명’이 공식 등록됐다. 이에 금방 6만여명이 동의했다. 사실 세월호는 416재단까지 만들어졌고 검찰도 진실조사를 방해한 당시 해양수산부 장·차관을 사법처리하는 등 진실규명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기자협회 차원 조사단까지 만들 정도로 의혹이 컸던 이 천안함은 잊혀졌다.
민·군 합동조사단 야당 추천위원 참여
그러는 동안 이 천안함 진실투쟁에 8년간 외롭게 매달리고 있는 사람이 있다. 바로 신상철 < 서프라이즈> 대표다. 민·군 합동조사단 야당(현 민주당) 추천위원으로 참여한 그는 ‘북한군 어뢰에 의한 폭발’이라는 정부 발표에 의문을 제기하며 지금까지 진실투쟁을 하고 있다. 2010년 8월 김태영 당시 국방부 장관과 해군참모총장, 합동조사단장 등에 의해 피소돼, 재판 4년 만에 그는 공소사실 34건 가운데 32건은 무죄, 2건이 유죄로 인정돼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검찰이 기소한 34개 공소사실 모두 천안함과 관련된 분석글이다. 이 중 유죄로 인정된 2건은 천안함 스크래치(스친 흔적)를 국방부가 인멸했다고 했는데, 1심 재판부는 ‘장관은 증거를 없애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나는 국방부가 인멸했다고 했지 장관이 인멸했다고 하지 않았다.
또 내가 ‘초기에 구조할 의사가 없었다’고 한 것이 해군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했다. 반토막 났지만 길이 38m, 높이 10m 크기가 침몰한 곳에서 180m 떨어진 곳에 있었다. 천안함 길이 2배에 불과한 바로 옆이다. 그것을 이틀 동안 못 찾았다는 것을 누가 믿을 수 있겠는가. 어선에 장착된 어군탐지기에도 물고기가 보일 정도다.”
침몰지점도 알고, 깊지도 않은 바닷속 천안함을 해군이 못찾고 어민이 찾았다는 사실은 바로 그 시각, 해군은 다른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을 것이라는 추론이 제기됐다. 그것은 별도 서재정·이승헌 박사의 잠수함 충돌설로 이어진다.
신 대표는 초기 좌초와 구조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46명이 탄 선미는 금방 침몰했지만, 선수에 있던 1명도 희생됐다. 신 대표는 “그 선수는 16시간 22분 동안 바다에 떠 있다 침몰했는데 거기에 박성균 하사가 있었다”면서 “국방부 관계자들이 퇴근해 쉴 때 박 하사는 침몰하는 배에서 처절한 생존투쟁을 벌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것을 지적한 것이 해군의 명예를 훼손한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핵심은 천안함 침몰 원인이다. 처음부터 좌초라고 주장했다. 지금도 그런 생각인가.
“그렇다. KBS가 최초 ‘침수, 5㎞ 포류 후 반파’라고 보도했다. 모든 사건을 보면 최초의 상황이 가장 진실을 많이 담고 있다. 조작이 개입할 여지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이게 정답이다. 침수는 배에 물이 들어온다는 것이고 포류는 엔진이 꺼졌다는 것이다. 반파는 거대한 충격이 있었다는 것이다. 정부는 사고 발생시간도 네 번이나 번복했다.”
-나도 기자지만 특히 재난상황에서 초기 보도는 부정확한 것도 많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배가 반파되고 46명이 죽는 사고에서 그것도 일주일이 넘어서도 계속 발생시간이 바뀔 수는 없다. 그래서 사고는 한 번이 아닌 두 번이라는 추론을 하는 것이다.”
-물론 그때도 많이 제기됐지만 폭발이 있었느냐가 계속 논란거리다. 당시 김용옥 선생은 북한 어뢰에 의한 폭발이라는 정부 발표에 “나는 0.0001%도 설득이 안 된다”고 주장했고, 최근 유시민 전 의원도 “폭발 침몰로 보지 않는다”고 했다.
“폭발이 없었다는 것은 10개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화약냄새를 맡았다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다. 바닷가에서 폭죽 하나만 쏘아도 화약냄새가 코를 찌르는데, 성인 6명 크기인 360㎏의 TNT가 터졌는데 화약냄새가 없었다?
둘째, 승조원 누구도 코피나 고막손상 등 이비인후과적 손상이 없다. 시신 또한 전원 ‘익사’였다.
셋째, 수중 폭발이 있었다면 2만 기압의 압력으로 100m 이상 거대한 물기둥이 솟아야 한다. 그러나 함교 밖 좌우 견시병 누구도 물기둥을 본 사실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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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철 서프라이즈 대표가 열화상카메라 동영상을 통해 천안함 침몰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 우철훈 선임기자 |
좌초라고 주장하는 10가지 이유
그는 계속 설명했다. 3∼4월 까나리철에 360kg TNT 폭발에 죽어 떠오른 까나리가 한 마리도 없었다, 천안함 절단면 하부에서 3000도 고열 발생 흔적이 없다. 2만 기압 충격파와 3000도 고열에도 형광등이 깨지지 않았다. 화염이 없었다, 충격파가 없었다, 굉음이 없었다, 열관측장비(TOD)에 폭발로 데워진 바닷물 증거가 없었다는 이유를 들었다. 그는 이를 충격이 없는 10가지 이유라고 말했다.
신 대표는 천안함이 좌초한 상태에서 무리하게 배를 빼내다 스크루가 굽어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천안함이 두 동강이 난 것을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 신 대표는 좌초로 인한 배의 절단 증거로 외국 사고 사진을 제시한다. 그러나 해당지역 해저는 암반이 아닌 모래톱인데 여기서 배가 두 동강이 날 수 있을까. 의문은 계속 이어진다.
-비교적 정확한 조사를 했다는 러시아 조사단도, 또 그레그 전 미국대사도 2015년 JTBC와 인터뷰에서 천안함이 좌초했다가 기뢰에 의해 비접촉 폭발했다고 증언했다. 비접촉 폭발이 있었던 것은 아닌가.
“러시아도 처음에 제대로 보도하다가, 이명박 대통령과 단독면담 후 기조가 바뀐다. 그레그 대사도 처음에 ‘한국 정부와 이명박은 곤란해질 것’이라고 했다가 기뢰 폭발로 얘기를 바꿨다. 기뢰는 언제, 누가 설치했는지 모르기 때문에 사건을 미궁에 빠지도록 방향을 돌린 것이라 본다. 그레그는 미국이 곤란한 입장에 처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현 휴전협정에 남북 분쟁은 중립국감시위원단이 조사하게 돼 있다.(서해상은 휴전협정에 아무런 명시가 없지만) 당시 왜 중립국감시위원단 조사를 받지 않았나.
“북한은 2010년 8월 한국과 미국, 중국 4자 간 공동조사하자고 제안했는데 우리 정부가 거부했다. 북한은 다시 그 어뢰를 판문점에 가져와 조사하자고 했다. 북한은 특수합금으로 어뢰를 만드는데, 그 어뢰와 비교해 보자고 했는데 우리가 ‘노’ 했다.
북한은 계속 자신들이 하지 않았다는데, 우리 주류언론은 이런 북한 주장을 보도하지 않았다.
이러면서 우리는 뭐했나. 싱가포르에서 김태효 (청와대) 비서관이 ‘천안함에 대해 유감 표시만 해달라’며 돈줄 테니 정상회담을 해달라고 구걸하지 않았나.”
-송영무 전 해군참모총장은 사고 직후인 2010년 4월 6일 <서울신문>과 인터뷰에서 “한·미 공동작전 중에 북한이 도발했을 가능성은 없다”고 정부 주장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런 그가 국방부 장관이 된 지금, 진실을 밝힐 수 있지 않을까.
“송 장관은 나중에 천안함은 북한 소행이라고 못을 박았다. 문 후보를 데리고 백령도까지 갔다. 아마 송 장관의 국방부는 재조사할 의지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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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철 서프라이즈 대표 / 우철훈 |
선임기자해군 소위로 임관 서해 5도서 근무
그는 대선 직전 문재인 캠프에서 이 문제를 놓고 격론을 벌인 사실을 오프더레코드를 전제로 얘기했다. 그 대목 중에는 이해가 되는 부분도, 아닌 부분도 있었다.
사실 문 대통령은 2015년 3월 25일 당대표 시절 천안함 5주기를 맞아 해병대 2사령부를 방문한 자리에서 “천안함은 북한 잠수정의 타격”이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신 대표는 당시 문 대표가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은 “보수표를 얻기 위한 것이며, 종북프레임이 두려웠기 때문”으로 풀이했다.
신 대표는 앞으로가 문제라고 했다. 그는 “북한이 김영철을 내려보낸 것은 천안함을 자신이 하지 않았다는 자신감을 보인 것”이라며 “국방부가 천안함 조사결과를 왜곡했다면 사과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자유한국당이 김영철 부위원장 문제를 제기한 것은 “펄펄 끓던 감자를 덥석 문 격”이라고 말했다. 새롭게 제기되는 진실규명 요구가 오히려 이명박 정권의 부도덕성을 드러내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말이다.
신 대표는 1958년생이다. 서울에서 출생했지만 부산에서 초·중·고를 나와 1978년 한국해양대 항해학과에 입학했다. 82년 해군 소위로 임관해 천안함보다 큰 호위함을 탔다. 중위 때는 인천에서 수송함(LSM)을 타고 서해 5도에서 근무했다. 그는 “군 수송함은 일부러 배를 좌초시켜 하역하기 때문에 좌초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안다”면서 “특히 천안함이 침몰한 백령도 근처는 손바닥 보듯이 훤하다”고 말했다.
해군에서 제대한 후 한진해운에 입사해 컨테이너선을 타고 미주항로를 다니다 삼성조선소에서 선박 건조 감독을 했다. 92년 배에서 내린 그는 전산프로그래머 사업을 하다 2002년부터 <서프라이즈>에서 진보논객으로 활동했다. 이 인연으로 그는 민주당 추천 국방부 세월호 민·관 합동조사단의 민간위원으로 참여했다.
그는 민·관 합동조사단원으로는 유일하게 조사단의 결론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기자가 ‘나름 전문가들인데 정부가 지시한다고 일사불란하게 조작에 가담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제기했다.
이에 그는 “인혁당 사건이 났을 때 우리나라 검찰·법원·언론 모두 동의하지 않았나”라고 반문했다. 이 대답에 기자는 할 말이 없었다. 사실 우리는 지난 촛불혁명에서 백남기 농민이 물대포에 맞아 쓰러지는 동영상을 수없이 보면서도 서울대병원 주치의의 ‘병사’라는 억지를 그냥 듣고 있었다.(정권이 바뀌고 이는 수정됐지만)
그는 2006년부터 <서프라이즈>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그는 “한때 기자가 43명까지 됐던 적도 있었다”면서 “광고가 끊어진 지금은 ‘천안함 진실을 지키는 사명으로 매체를 남겨놓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별도 시사문제를 다루는 <진실의 길>이라는 인터넷 매체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8년간 법정투쟁으로 운영하던 매체와 건강을 잃었다. 2013년에는 대장암 판정을 받고 수술 두 번을 거쳐 겨우 최근에 완치 판정을 받았다.
현재 항소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그는 “항소심에서 김태영 당시 국방부 장관과 이상의 합참의장 등을 증인으로 신청할 것”이라며 “북한 김영철도 증인으로 부를 것을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
냉정히 말하면 천안함 사건은 신 대표와 개인적으로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런 사건에 이렇게 집착하는 것을 보면 참 고집스러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죽하면 보수단체로부터 ‘간첩보다 더하다’는 평가를 받을까.
그는 “천안함 사건은 단순한 해상사고가 아니다”라면서 “북한 소행으로 은폐·조작했다면 언젠가 통일이 됐을 때 우리는 뭐라고 말할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출처: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oid=032&aid=0002856551&sid1=001&lfrom=kaka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