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녀에 '간첩 누명' 씌운 국가...법원 "21억원 배상하라"
불법구금·가혹행위로 징역형..32년 후 무죄
법원 "민주주의 법치국가서 결코 일어나선 안돼"
국가 공무원의 조직적인 불법 행위로 간첩 혐의를 뒤집어썼다가 32년 만에 누명을 벗은 모녀에 대해 법원이 21억여원을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0부(부장판사 문혜정)는 고(故) 황모씨의 자녀 김모씨 등 3명이 대한민국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국가는 김씨 등에게 총 21억2000여만원의 배상 책임이 있다"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고 3일 밝혔다.
어머니 황씨와 장녀 김씨는 가정형편이 어려워지자 일본으로 건너가 종업원 등으로 일하다 1984년 잠시 귀국했다. 국가안전기획부는 이들이 '일본에서 조총련 인사를 만나 금품을 수수하는 등 국가보안법을 위반했다'며 영장 없이 연행해 불법으로 구금했다.
황씨와 김씨는 안기부 조사에서 '혐의를 인정하면 석방시켜주겠다'는 회유를 받고 자백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 조사에서도 '안기부에서 진술한 것과 같은 내용으로 말하라'는 강요를 받았다. 검찰은 기자를 동원해 이들의 사진과 집 등을 촬영해 방송하게 하기도 했다.
법원은 딸 김씨에게 징역 7년, 어머니 황씨에게 징역 3년을 선고해 1984년 판결이 확정됐다. 이들은 32년이 지난 2016년 재심을 청구했고, 증거가 없다는 점 등이 인정돼 무죄가 확정됐다. 이에 김씨와 동생 2명은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며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영장 없는 체포와 구금, 수사 과정에서 가혹행위, 수형생활 중 사상전향 강요 등의 공권력 행사는 공무집행의 외관만 갖췄을 뿐"이라며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보호해야 하는 국가는 그 의무를 위반해 불법행위를 저질렀다"고 설명했다.
이어 "2017년 재심에서 무죄가 확정되기 전까지 국가는 무려 30년 이상 이들의 명예와 피해를 회복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방치했다"며 "각종 불이익을 당하게 했음이 인정되기에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공무원들이 개별적으로 저지른 불법행위가 아니라, 공권력을 악용하고 보편적 자유와 기본적 인권을 조직적으로 침해해 발생한 특수한 불법행위"라며 "민주주의 법치국가에서 결코 일어나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소멸시효가 지났기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는 국가의 주장에 대해선 "고의적인 불법행위로 큰 고통을 당한 김씨 등을 위로하고 피해보상 대책을 강구하지 않은 채 소멸시효를 주장한다"며 "피해보상을 받을 마지막 수단까지 봉쇄하는 것이기에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국가가 보상해야 할 위자료와 상속분에 대해 김씨에게 13억5500여만원, 동생 2명에게는 각각 3억8500여만원 등 총 21억2000여만원의 배상 책임이 있다고 판결했다. 이 중 이미 결정된 형사보상금을 제외해 김씨 등에게 14억50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밝혔다.
(서울=뉴스1) 문창석 기자 =
themoo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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