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죄"..영화 <자백> 주인공 김승효씨 재심 개시 결정
1974년 서울대 입학한 재일동포 유학생
중앙정보부 끌려가 고문받고 정신 이상
2016년 11월 형이 대신 재심 청구
법원 "불법 구금됐다" 재심사유 인정
“승효! 영수야, 영수!”
2016년 재심 신청을 설득하러 찾아온 친구 유영수씨를 본 김승효(68)씨는 그저 웃었다. 초점 잃은 눈, 가만히 있지 못하는 몸, 온전하지 않은 말투. 1974년 5월 중앙정보부 수사관들에게 끌려가 받은 고문의 후유증은 김씨의 몸과 마음에 40년 넘게 남아 있었다.
당시 김씨는 서울대로 유학 온 재일동포였다. 서울대로 유학왔던 유씨도 1977년 간첩 혐의로 보안사령부에 끌려간 이후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재일동포 조작간첩 사건 피해자인 유씨는 재심에서 무죄를 받았다.
“다리 이런 데를 많이 때렸어. 주먹으로 때리고. 취조 중에 수사관들이 멋대로 쓰고, 마지막에 강제로 지장을 찍게 했어. 안 찍겠다고 하면 때려죽인다고 하면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게 박정희의 정치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된 김씨는 1975년 대법원에서 징역 12년이 확정됐다. 고문받다 생긴 정신 이상은 일본으로 돌아간 뒤에도 나아지지 않았다. 김씨는 정신병원을 전전했으나 한국에서 있던 일 만큼은 입을 다물었다.
“잊어버리고 싶단 말이야. 그 암흑의 세월을, 지옥 같은 세월을 잊어버리고 싶단 말이야. 가슴이 아파서 죽을 지경이야.” 김씨는 “나는 무죄”라며 이렇게 말했다.
조작간첩 사건 피해자를 다룬 영화 <자백>의 주인공 중 한 명인 김승효씨의 재심이 개시됐다. 서울고법 형사11부(재판장 이영진)는 지난달 김씨의 형이 신청한 김씨의 재심 신청을 받아들였다고 19일 밝혔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임의동행 형식으로 연행된 뒤, 구속영장 없이 불법 구금된 상태에서 수사를 받았다”며 재심 사유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지난 11일 열린 첫 재심 재판에 김씨는 출석하지 않았다. 주변의 오랜 설득 끝에 재심을 결심했던 김씨는 영화에서 “한국에 안 간다. (마음이) 불편하다”고 밝힌 밝힌 바 있다. 피고인 석에는 김승효씨 대신 일본 교토에서 온 형 김승홍(76)씨가 앉았다. 김승홍씨는 통역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귀를 기울였다. 재심 결정에 대한 의견을 묻는 재판부의 질문에 검사는 “없다”고 짧 게 답했다.
그러나 재심 개시 과정에서 2016년 11월 서울고검 박두순 검사(현 수원지검)가 낸 ‘재심 반대 의견서’ 내용이 뒤늦게 알려지며, 국가폭력 사건을 대하는 검찰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나기도 했다.
박 검사는 과거 고문·조작 사건에 관여한 검사·판사 명단을 공개한 언론보도를 제시하며 “선배 법조인들이 사건을 조작한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이들의 학식과 인품은 굳이 말할 필요가 없이 잘 알려져 있다. 그 시대 상황에서 법조인의 양심을 가지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수사, 기소, 재판을 했다. 이런 선배들의 전통 위에 현재 우리나라의 사법체계가 발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재심제도 남용이 어떻게 사법제도 전체에 대한 신뢰를 손상시키면서 혼란을 야기하는지 (이런 언론보도가) 잘 보여주고 있다”는 주장을 늘어놓기도 했다.
재판부는 오는 20일 변호인이 증거로 제출한 영화 <자백>에서 김승효씨가 나오는 부분을 상영한 뒤 결심을 진행할 예정이다.
김민경 기자 salm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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