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단 허락 받으라"는 핑계, 더 이상 댈 수 없다
[해설] '법원 기자실 사용 거부 소송' 원고 승소 판결의 의미와 파장... 기자단 카르텔 '균열'
▲ 서울 서초구 서울행정법원 자료사진.
서울법원종합청사 기자실 사용 및 출입증 발급 여부를 출입기자단 결정에만 맡긴 것은 적법하지 않다는 지난 19일 서울행정법원의 결정은 국가기관 출입취재에 기준을 제시한 판결로, 확정시엔 '기자단 카르텔'을 깰 단초가 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행정법원은 적법한 출입승인의 중요 기준으로 ▲(기존 출입기자단이 아닌) 기관 스스로의 결정 ▲투명한 절차를 제시했다.
<미디어오늘>이 서울고등법원을 상대로 낸 '기자실 사용 및 출입증 발급 거부 취소 소송'을 심리, 원고 승소 판결을 한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재판장 강우찬)가 기준으로 삼은 주요 법률은 국유재산법 3조다. 국가기관 청사 내 기자실과 출입증은 국유재산에 속하기 때문에 이를 이용·발급받고자 낸 신청을 사실상 불허한 서울고등법원의 결정이 이 법률에 비춰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잘못이 있다"는 것이다.
'기관의 기자실은 국유재산' 명확히 한 판결
재판부는 공물관리권과 관련있는 각 기관의 내규 적용이 국유재산법 3조의 취지를 준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사안의 경우 관련 규칙은 대법원 규칙 '재산관리관 및 물품관리관 등의 지정에 관한 규칙'과 '법원청사 관리내규', 서울고법의 '서울법원종합청사 관리 내규'와 '법원홍보업무에 관한 내규' 등이 있다.
국유재산법 3조는 국가가 국유재산을 관리할 땐 ▲국가 전체 이익에 부합되도록(1항) ▲취득과 처분이 균형을 이루도록(2항) ▲공공가치와 활용가치를 고려하면서 경제적 비용까지 고려하도록 정한 조항이다. ▲투명하고 효율적인 절차를 따라야 한다는 원칙도 4항으로 명시됐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기자실 사용 등의 허가는 서울법원종합청사의 청사관리관인 서울고법의 업무여서 기자단 판단에 맡길 수 없고 스스로 재량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밝혔다. 청사관리의 책임이 없는 기자단이 기자실 사용 허가를 하는 것은 적법하지 않다는 것이다. 혹여 출입 여부 결정 과정에서 기자단 의견을 듣는다 하더라도 "제3자에게 미루는 게 아니라 피고(서울고법) 스스로 수립한 원칙에 근거해 결정해야 한다"고도 명시했다.
재판부는 서울고법이 특히 절차의 투명성 원칙을 어겼다고 봤다. 서울고법이 <미디어오늘> 출입 신청을 거부할 때 "기자단 가입 여부 및 구성에 법원은 전혀 관여하지 않으니 출입 관련한 사항은 기자단 간사에게 문의하길 바란다"고만 답했다는 점에서다.
재판부는 "기자단 의견은 피고가 직접 기자단에 물었어야 마땅하다. 의견을 묻는 게 어려웠다 하더라도, 적어도 미디어오늘이 기자단 의견을 받아 법원에 내면 피고가 종국적으로 결정을 할 것이란 취지를 분명히 하면서 결정을 보류했어야 했다"며 "(그렇지 않았던 서울고법은) 투명한 절차에 따른 보류 결정으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 지난 1월 미디어오늘, 뉴스타파, 셜록 등 3개 매체의 기자실 사용 및 출입증 발급 신청에 거부 취지로 답변한 서울고등법원의 공문.
재판부는 법원 기자실 관련 내규의 취지를 "기자들이 청사 내에서 더 편하게 머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준 것일 뿐, 기자들에게 그 행정재산에 관한 배타적 점유 사용권을 주려는 것이 아님은 명백하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이와 관련해 지난 8월 20일 1차 변론기일에서 "기자실 경우 돈을 받고 임대해주는 게 아니지 않느냐. 출입기자들이 돈을 내느냐? 내지 않는다"며 "공물인 법원 건물을 일반 대중 중 특별한 유형인 기자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법원장이 내규를 정해 배려해주는 형태"라고 직접 밝히기도 했다.
검찰기자실 대상 소송도 진행중... 기자단 카르텔 깰 단초
▲ 지난 1월 4일 서울고등검찰청에서 당시 박범계 법무부장관 후보자가 검찰 출입기자들과 질의응답 시간을 가지고 있다.
재판부 판단은 현재 관행적으로 굳어진 언론계 출입처 기자단 운영 방식과 정반대다. 법원·검찰청 뿐만 아니라 18개 정부부처, 경찰청·공정거래위원회·금융감독원 등 부처 산하기관, 17개 광역지자체와 226개 기초지자체의 시·군·구청 모두 기자단이 다른 언론사의 기관 출입 여부를 결정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서울의 법원·검찰 기자단은 서울시청 기자단, 경찰청 및 경찰서 기자단과 함께 가장 폐쇄적인 곳으로 손꼽힌다.
기자단 문제는 기관이 기자단 소속 매체만 취재 지원 대상으로 취급하면서 더 심화돼왔다. 예로 서울법원종합청사의 서울중앙지법, 서울고법, 대법원은 기자단 소속이 아닌 기자에겐 판결문을 직접 제공하지 않는다. 공보판사실을 들러 판결문을 공개 열람하는 것도 기자단만의 특혜다. 기자실도 기자단 소속 기자만 쓸 수 있다. 유명 사건 피의자의 구속영장 발부 결과와 같은 긴급 공보 자료도 기자단에만 제공되며, 법정 내 노트북 사용에도 기자단에 더 높은 수준의 편의가 제공된다.
유사한 판례가 누적될 가능성이 점쳐지며, 언론계에선 이같은 출입처 기자단 구조에 변화를 기대하는 여론이 생기고 있다. <뉴스타파>와 <셜록>이 검찰기자실을 관리하는 서울고등검찰청을 상대로 제기한 출입처 발급 등 거부 취소 소송은 내달 9일 3차 변론기일이 예정되어 있다. 서울고검의 변론 내용은 서울고법과 흡사하다. 기자단의 투표로 기관 출입이 거부된 또 다른 매체가 향후 같은 소송을 낼 여지도 있다.
한편 재판부는 "언론기관에도 법규상 내지 조리상 신청권이 있음을 넉넉히 인정할 수 있다"고 확인했다. '개별 기자가 아닌 언론사는 이 소송 주체가 될 수 없다'는 서울고법 주장을 기각한 것.
재판부는 이유로 "헌법상 언론기관에 대한 특별한 배려와 보장, 언론 자유의 실질적 보장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출입 신청 거부로 제한되는 법률상 이익엔 언론기관 고유의 것도 포함됐다"며 "서울고법 주장은 언론기관이 헌법에서 차지하는 특별한 위치를 간과했고 기자 개인이 직접 쟁송에 나설 경우만 권리구제를 하겠다는 것과 같아 지극히 형식적·법 기술적 해석이어서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밝혔다.
손가영(ga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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