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대표소송이 ‘기업 통제’라는 재계의 궤변
국민연금이 주주대표소송 여부를 결정하는 주체를 기금운용위원회에서 수탁자책임위원회(수책위)로 일원화하는 안건을 25일 논의할 예정이다. 이를 앞두고 전경련과 경총 등 재계 단체들이 잇따라 토론회를 열어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보수언론들도 “기업 벌주기”니 “경영 간섭”이니 하며 거들고 있다.
소송 제기 요건을 매우 엄격하게 정해둔 국민연금이 주주대표소송을 ‘남발’할 것이란 주장은 별 근거가 없다. 국민연금이 ‘상장사를 통제하는 기구가 될 것’이라는 주장도 얼토당토않다.
경총이 지난달 20일 ‘국민연금 대표소송 추진, 이대로 괜찮은가’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연 데 이어, 7일 전경련이 같은 주제로 좌담회를 열었다.
권태신 전경련 부회장은 “수책위의 결정으로 실제 소송이 이루어진다면, 국민연금은 우리나라 대부분의 상장사를 통제하는 무소불위의 기구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금도 주주대표소송 사건 가운데 기금운용위원회가 처리하기 곤란한 사안, 수책위 재적위원 3분의 1 이상이 수책위에 회부할 것을 요구한 사안은 수책위가 판단하게 돼있다. 그것을 수책위로 일원화하는 것을 두고 “상장사 통제” 운운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재계가 수책위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문제 삼는 것도 근거가 없다. 국민연금은 기금운용위원회가 모든 의사결정을 하기 어렵기 때문에 산하에 3개의 위원회를 두고 있다. 수책위는 책임투자나 보유 상장주식에 대한 주주권 행사 등에 관한 사안을 맡고 있다. 9명의 전문위원은 국민연금의 주인이라 할 수 있는 사용자·근로자·지역가입자 단체가 각각 3명씩 추천하는 전문가들로 구성된다. 부당한 외압이 작용할 여지가 거의 없다.
2018년 제정한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는 제소 요건, 승소 가능성, 소송의 실익을 두루 고려하여 소송 제기 여부를 판단하도록 하고 있어, 소송은 엄격하게 제한될 것이다.
주식회사의 이사는 지배주주에 의해 선임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지배주주가 이사의 경영 활동을 좌우하는 일이 많다. 그런데 이사가 회사에 손해를 끼쳐도 책임 추궁은 거의 없고, 의사결정에 참여하지 못한 소액주주들이 그 손실을 고스란히 떠안는 게 우리 현실이다. 우리나라 상장사들이 자본시장에서 제대로 된 평가를 못 받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주주대표소송은 준법경영을 하려는 전문경영인을 보호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이런 공적 가치는 제쳐둔 채, 재계 단체가 무리한 주장을 펴는 것은, 낡은 지배구조를 끝까지 버리지 않겠다는 뜻이 아닌가 의심된다.
[ 2022. 2. 9 한겨레 사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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