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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한복 ‘문화공정 논란’이 놓친 것들

道雨 2022. 2. 9. 10:27

올림픽 한복 ‘문화공정 논란’이 놓친 것들 

 

* 지난 4일 열린 베이징겨울올림픽 개막식에서 각자 전통복장을 입은 소수민족 참가자들이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를 옮기고 있다. 앞줄 왼쪽에서 두번째가 조선족 참가자. 베이징/연합뉴스
 

 

베이징겨울올림픽 개막식에 한복을 입은 조선족 여성이 등장한 것을 둘러싸고 분노가 들불처럼 번졌다. ‘중국이 한국의 문화와 역사를 빼앗아가려 한다’는 비판에, 대선 후보들이 일제히 “‘문화공정’ 반대“ “고구려와 발해는 대한민국 역사” “한푸(漢服)가 아니라 한복(韓服)”이라고 응답했다.

오랫동안 한-중의 일부 ‘애국주의 네티즌’ 사이에서 계속되어온 ‘문화 원조’ 공방전의 불길이, 대선 득표 경쟁을 타고 삽시간에 현실 정치로 옮겨붙었고, 중국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쇼트트랙 편파 판정은 여기에 기름을 부었다.

 

하지만 올림픽에 등장한 한복을 두고, 한국 문화를 중국 문화로 왜곡하려는 문화공정으로 부르는 것은 문제의 본질에서 벗어나 있다. 중국 국가 주도 행사에서 한족과 55개 소수민족이 함께 오성홍기를 옮기는 장면에서 소수민족들이 저마다의 전통 의상을 입었는데, 조선족의 전통 의상은 당연히 한복이다.

 

문제는 중국 당국이 소수민족들을 등장시킨 의도에 있다.

이번 개막식에서 국제적으로 가장 논란이 된 부분은 한복이 아니라 성화를 점화한 위구르인 스키 선수 디니거얼 이라무장이었다. 중국이 신장위구르자치구에서 위구르인 100만명 이상을 ‘재교육 캠프’에 가두고 강제노동에 동원하는 데 항의하며, 미국과 영국, 일본 등이 이번 올림픽에 정부 대표를 보내지 않는 ‘외교적 보이콧’을 한 데 대한 중국의 계산된 대응이었다.

해외 위구르인 단체와 국제인권단체들은 ‘중국이 충성스런 위구르인을 내세워 수많은 위구르인들이 당하는 고통을 은폐하고 인권 유린을 정당화하려는 의도’라고 비판한다.

 

중국은 개막식에서 위구르인을 성화 최종주자를 내세우고, 조선족을 비롯한 소수민족들과 한족이 함께 오성홍기를 옮기는 모습을 부각시키면서, ‘중화민족의 굳건한 단결’을 세계에 과시하려 했다.

미국을 향해 ‘올림픽을 정치화하지 말라’고 소리 높여온 중국이, 소수민족 탄압을 정당화하고, 중국의 위대함을 강조해, 시진핑 주석의 3연임을 위한 업적 쌓기에 소수민족을 ‘들러리’ 삼은 것이 문제의 본질이다.

중국인들의 애국주의를 고취하기 위해 계속되고 있는 편파 판정은, ‘중국몽’의 편협함을 전세계에 생중계하고 있다.

 

* 지난 4일 열린 베이징겨울올림픽 개막식에서 위구르인 스키 선수 디니거얼 이라무장(왼쪽)이 성화 최종 주자로 등장했다. 베이징/AFP 연합뉴스

 

이에 대응하려면 현상을 잘 구분해 따져야 한다. 중국의 정치 행사에 ‘한복 차림의 조선족’이 등장할 때마다 한-중 사이에 ‘한복 원조 논쟁’이 폭발한다면, 조선족들은 한복을 입지 말아야 할까. 한복·김치 원조 논쟁이 한-중관계에 부담이 된다고 판단한 중국 당국이 ‘조선족 자치’를 지워버린다면 한국과 조선족에 바람직한 일일까.

실제로 조선족들이 한복을 입지 못하던 시대가 있었다. 반우파투쟁과 문화대혁명이 중국을 휩쓸던 1950~1970년대 중반까지, 조선족을 비롯한 소수민족들은 민족 문화가 말살당하고 외세의 스파이로 몰리는 등 극심한 고통을 당했다. 민족 의상은 금지되고 모두가 회색 인민복 차림이었다.

사회학자인 박우 한성대 교수는 “문화대혁명이 끝난 뒤 조선족들은 경제 자유화, 북중관계 해빙, 한국과의 교류 등을 통해 많은 노력을 하면서 힘겹게 민족 문화를 복원해 왔으며, 조선족의 한복과 전통 문화는 한민족 공동체의 시각에서 보아야 한다”며 “1980년대 말 이후 중국 국가행사에서 전통복장을 입은 소수민족이 자주 등장하게 되었고, 지금은 오히려 이 다양성이 다시 한가지 색상의 인민복으로 수렴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문제의 본질은 훨씬 큰 틀에 있다. 1989년 천안문(톈안먼) 시위 유혈 진압과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중국 지도부는 미국이 중국을 압박하거나 공산당 통치체제를 바꾸려 할 것이라는 안보 강박에 휩싸였다.

변경의 소수민족들이 중국에서 분리독립할 수 있다는 안보 불안에 대처하려는 조처들이 진행되면서, 고구려·발해사를 ‘중국 소수민족의 역사’로 왜곡하려는 ‘동북공정’이 2000년대 초 한-중 간 외교 문제가 되기도 했다.

이제 중국의 국력이 훨씬 강해지고 미-중 패권 경쟁이 본격화하면서, 중국은 국내에선 한족 중심의 민족 동화정책을 훨씬 강압적으로 추진하고 있고, 대외적으로는 경제력을 지렛대 삼아 주변국에 ‘중국식 국제질서’를 만들어가려 하고 있다.

상황이 달라졌는데, 한국이 여전히 ‘동북공정’ ‘원조 논쟁’ 프레임으로 대응해서는, 본질을 놓치거나 한-중 간 ‘혐오 전쟁’으로 사태만 악화시킬 수 있다.

 

무엇을 해야 할까.

국제사회와 함께 중국의 소수민족 억압에 대해 보편적 인권의 관점에서 지속적으로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중국이 ‘대국-소국’ 질서를 강요하는 행위에는 단호하게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중국을 비판하는 동일한 잣대로, ‘조선족’ 중국 동포들을 향해 한국 사회가 보여온 차별과 혐오도 반성해야 한다. 국가 최고지도자가 되겠다고 나선 정치인들은 중국의 애국주의와 강압적 통치가 결국 한-중관계에도 큰 위기를 초래하는 엄중한 문제라는 걸 직시하되, 맹목적 혐오에 올라타는 것으로는 해결할 수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중장기적 외교·안보 청사진 제시는 뒷전으로 미뤄둔 채, 혐오와 선동의 경쟁을 벌일 때가 아니다.

 

박민희 | 논설위원

minggu@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