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중 선동으론 중국 극복 못한다
천안함이 백령도 인근에서 침몰한 지 나흘이 지난 2010년 3월30일. 북한의 공격이라는 심증이 고조되던 그 혼란의 시기에, 이상의 합참의장은 심한 굴욕감을 느꼈나 보다.
그날 북한 경비정들이 중국 어선과 뒤섞여 백령도 인근으로 접근해 왔다. 합참의 지휘통제실에서 해군 전술지휘통제시스템으로 이를 지켜본 합참의장은 무언가 새로운 사태가 벌어지고 있음을 직감했다. 즉시 그는 “북한 배가 엔엘엘(북방한계선) 내려간다. 쏴!”라며 공격 명령을 내렸다.
당시 해군 작전사령관과 2함대 사령관이 황급히 합참의장과의 화상회의 시스템에 나와 “사격은 안 됩니다, 중국 어선이 있습니다”라면서 만류했다.
재차 의장이 “쏘라면 쏘지, 왜 안 쏴”라고 하자, 작전사령관은 “중국하고 문제가 되면 어쩌려고 그럽니까?”라고 대답했다. 재차 의장이 “그래도 쏴”라고 독촉하자, 작전사령관의 언성도 높아졌다. “여기 의장님이 내려주신 작전예규에 못 쏘게 되어 있지 않습니까?”
합참에 근무해본 경력이 없던 의장은 “그런 게 어딨어?”라고 했다. 작전사령관이 작전예규 책자를 들어 올리며 “아 여기 ○○페이지에 있습니다!” 했다.
때마침 순시하던 김태영 국방부 장관이 지휘통제실을 들어와 이 장면을 보게 되었다. “뭘 쏘라는 거냐?”고 묻다가, 사태를 파악한 김 장관은 놀라서 소리쳤다. “전부 동작 그만!” 이렇게 해서 중국 어선에 대한 우리 군의 무력행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재명 후보가 며칠 전 <세계일보>와 한 인터뷰에서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에 대해 “영해 침범인데, 그런 건 격침해버려야 한다. 소말리아 (해적이) 왔어도 봐줬겠느냐”고 했다.
북한이나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을 강력히 단속하겠다면서 “할 말은 한다”고 덧붙였지만, ‘격침’이란 용어는 그 할 말에 해당하지 않는다. 국제법과 우리 군의 표준행동절차라고 할 수 있는 작전예규에도 위반된다. 만일 이재명 후보가 대통령이 되어 실제로 격침을 명령했더라도, 국방부 장관과 해군 지휘관은 절대 따르지 않는다. 그런 대통령이 되고 싶은 건가.
최근 베이징겨울올림픽에서 중국의 편파 판정과 한복 논란 와중에, 이재명 후보가 반중 정서에 편승하여 선거를 치르려 한다는 의심을 일으키는 대목이다.
윤석열 후보가 “남북 군사합의서 파기” “대북 선제타격” “사드 추가 배치” “대중 굴종 외교 청산” “청년들은 중국 싫어한다”는 등, 노골적 반중 감정과 강경 노선을 선동하던 터에, 이 후보까지 이러면 국민은 불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번주에 미국의 외교안보전문지 <포린 어페어스> 온라인판은 “한국이 나서야 한다”는 윤 후보의 기고문을 게재했다.
기고문을 찬찬히 살펴보면 “한국 정부는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 중점을 둔 외교정책으로 인해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역할은 축소”되었으며, “한-미 동맹이 대북정책에 대한 차이로 인해 표류했다”고 전제한다.
또한 “한국은 자국의 안보 이익을 희생시키면서 중국의 경제 보복에 굴복했다”며, 전략적 모호성으로 대응하는 정부에 대해 ‘굴종 외교’라고 공격한다.
이 기고문을 통해 한-중 관계에서 긴장과 파국을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윤 후보는, 그의 반중 정체성을 분명히 하면서, 한반도 주변 정세에 불안을 조성할 수 있음을 과시했다. 이 기고문은 중국으로 하여금 윤석열을 불안하고 위험한 인물로 인식하게 만드는 근거가 될 것이다.
대선이 이렇게 흘러간다면 누가 집권하든 차기 정부에서 외교안보에서의 위기는 한-중 관계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장기간의 불황과 침체 속에서 국민 마음속에 응어리진 상실과 분노의 감정을, 중국을 향한 반감으로 분출시킬 가능성이 커졌다는 이야기다.
물론 중국이 권위주의로 회귀하고 대만과 홍콩, 남중국해에서 횡포를 부리는 건 규탄해야 한다. 한국을 작은 나라라고 업신여기면 더 당차게 대응할 필요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세력균형을 유지하고, 규칙과 규범을 준수해야 한다는 공적 가치로 말하는 것이지, 반감이나 혐오의 감정으로 말하는 것이어서는 곤란하다.
뭐가 굴종이고 뭐가 모호성인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굳이 치르지 않아도 될 비용까지 자초하면서, 굳이 갈등을 조장하는 이유가 도대체 뭔가.
이번 대선이 주변 정세를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성숙한 국가의 품격을 세우는 계기가 되지는 못할망정, 국제관계의 급소를 치고 신경줄을 건드려, 한국이 위험국가, 수정주의 국가로 인식되게 할 그 어떤 당위도 없다.
김종대 | 연세대 통일연구원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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