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반중 정치. 국내정치적 목적을 위해 외교관계를 수단화하지 말라

道雨 2022. 2. 10. 09:41

반중 정치

 

 

베이징겨울올림픽 쇼트트랙 편파 판정이, 기름 안개처럼 깔려있던 ‘반중 정서’에 스파크를 일으켰다.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는 판정 시비를 넘어, 온갖 형태의 중국 성토·혐오 글이 이어진다.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일반시민들의 반중 감정이 이처럼 높았던 적도 그리 많지 않았던 것 같다.

2016~17년 한국의 사드 도입 과정에서 중국이 자국민의 한국 단체관광을 불허하고 경제보복에 나선데다,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동북공정 등이 겹치면서, 반중 정서는 이전과 다른 단계로 접어든 바 있다. 특히 실생활에서 또래 중국인들을 자주 접하고, 온라인에서 게임, 댓글 논쟁 등으로 계속 부딪치면서 쌓인 젊은층의 반중 정서는 기성세대와는 결이 다르다.

 

이를 의식한 탓인지 4명의 유력 대선후보들이 일제히 편파 판정에 대한 성토 메시지를 쏟아냈다. 국민의힘은 “지난 5년 친중 정책의 대가가 무엇이냐”며, 편파 판정 시비를 국내정치로 끌어들이려 애쓰는 모습도 보인다.

정치 지도자들이 국민들의 희로애락에 부응하고, 정서를 공유하는 것은 응당 할 일이다. 그러나 국내정치적 목적을 위해 외교관계를 수단화하려는 움직임은 우려스럽다.

 

앞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지난해 말, 주한미상공회의소 간담회에서 “한국 청년들 대부분은 중국을 싫어한다”며, 문재인 정부의 ‘중국 편향 정책’ 때문에 한·중 국민들의 관계가 나빠졌다고 주장했다.

설 연휴기간에는 외국인 건강보험 급여지급 상위 10명 중 8명이 중국인이라며, 이주노동자 ‘건강보험 무임승차론’과 사드 추가 배치 등을 들고 나왔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8일 <세계일보> 인터뷰에서 “중국 어선이 우리나라 영해를 침해하면 격침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기도지사 시절에도 중국 어선의 영해 침해 등에 대해 ‘무관용’ 원칙을 내세우며 나포 등 강력한 조치를 강조하긴 했지만, ‘격침’은 완전히 다른 차원이다.

올림픽 편파 판정 비판을 넘어 중국 혐오를 발화시키는 것은, 당장은 정치적으로 안전하고 이로운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정치인들이라면 반중 정서에 올라타기보다는, 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편파 판정은 공식통로를 통해 강하게 항의하되, 스포츠와 국내정치를 뒤섞어 정치적 이득을 얻으려는 건 올바른 자세가 아니다.

 

쇼트트랙 1000m 준결승에서 1위로 통과했지만 실격 처리당한 황대헌(23) 선수는, 그날 밤 11시39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장애물을 만났다고 반드시 멈춰야 하는 건 아니다. 벽에 부딪힌다면 돌아서서 포기하지 말라. 어떻게 하면 벽에 오를지, 벽을 뚫고 나갈 수 있을지 또는 돌아갈 방법이 없는지 생각하라”는 마이클 조던의 경구를 올렸다.

 

권태호 논설위원 h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