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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 OECD 최하위권의 소득대체율…‘더 두터운 보장’ 필요하다

道雨 2022. 2. 22. 10:10

국민연금 개혁 연쇄기고 _1

 

OECD 최하위권의 소득대체율…‘더 두터운 보장’ 필요하다

 

때만 되면 유령처럼 나타나는 연금 공포마케팅이 대선을 앞두고 또 기승을 부리고 있다. 기금 고갈로 ‘1990년생은 연금을 한 푼도 못 받는다.’ ‘보험료가 월급의 40%까지 오른다.’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의 국가 부채가 2020년 한 해에만 100조원 넘게 늘어났다’ 등, 검증 안 된 황당한 주장이 사실인 듯 유포되면서, 청년세대의 불안과 세대간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연금 이슈는 매우 복잡해서 차분하고 균형 있는 시각이 필요하다. 편향된 정보에 갇히면 합리적인 논의를 할 수 없다. 연금과 관련하여 잘못 알려진 사실들을 바로잡고, 균형 있는 연금개혁 논의를 촉구하기 위한 기고를 4회에 걸쳐 연재한다.
 

 

 

 

국민연금 기금이 고갈되니 연금을 더 깎아 재정을 안정화하자는 주장이 있다. 언뜻 그럴 듯해 보이지만, 동전의 한쪽만 강조하는 편협한 논리이다. 연금은 다양한 경제사회적 파급효과가 있으므로 여러 각도에서 균형 있게 접근해야 한다.

 

국민연금을 깎기보다 지금보다 보장성을 더 강화해야 한다. 그 이유는 세 가지이다.

 

첫째, 국민연금의 보장성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꼴찌이다. 작년 말 OECD의 보고서 ‘한눈에 보는 연금’(Pensions at a Glance 2021) 최신판이 발간되었는데, 국민연금의 보장성에 관한 ‘충격적’인 수치가 들어가 있었다. 그동안 일부에서는 ‘국민연금 수준이 다른 나라에 비해 낮지 않으며’(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 더 나아가 보장성을 현행 40%에서 30%로 더 낮춰야 한다고 주장해왔다(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운영위원장). 이 주장은 재정안정화가 시급하다는 논리를 뒷받침하는 핵심 근거이었다. 하지만 OECD 최근 자료는 국민연금의 보장성이 선진국 중 사실상 꼴찌임을 보여주고 있다.

OECD 연금 보장성은 소득대체율(연금액/전일제 근로자 전체 평균임금)로 측정한다. 근로자 평균임금이 100만원이고 연금이 50만원이면 소득대체율은 50%이다. 수치가 높을수록 보장성이 좋은 것이다. OECD는 근로자 평균임금과 똑같은 월급을 평생 받는 사람을 가정하고 소득대체율을 계산한다.

2020년 OECD 회원국 의무가입 연금제도의 평균 소득대체율은 51.8%인데, 우리 국민연금은 31.2%로 OECD 평균의 60% 수준이었다. 38개국 중 34위로 완전 하위권이다. 이태리, 오스트리아, 스페인 등은 70%가 넘었고, 한국보다 낮은 국가는 폴란드(30.6%), 아일랜드(29.7%), 에스토니아(28.0%), 리투아니아(19.7%) 등 4개국이다.

OECD는 의무가입 연금제도를 공적연금과 강제민간연금으로 나누고 각각의 소득대체율을 계산한다. 강제민간연금은 가입이 법으로 강제되어 있으나 기금은 강력한 규제를 받는 민간회사가 운영한다. 오스트레일리아, 덴마크, 칠레, 스위스가 해당된다. OECD는 근로자의 85% 이상에게 적용하는 강제민간(기업)연금에 한해 소득대체율을 계산한다. 우리나라의 퇴직연금도 강제민간(기업)연금이나 가입률이 50%에 미달하고 연금으로 지급되지 않아 제외되어 있다.

공적연금만 계산한 소득대체율 OECD 평균은 42.2%로, 의무가입 제도 전체 소득대체율 51.8%와 약 9.6%포인트의 차이가 난다. 비교 기준을 42.2%로 잡아도 우리나라는 11%포인트가 적고, 짧은 가입 기간을 고려하면 그 차이는 더 커진다. 즉 어떤 기준을 사용해도 우리나라 공적연금의 소득대체율이 OECD 최하위권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소득대체율 31.2%가 ‘충격적’인 것은 이유가 있다. OECD의 수치는 22살 청년(1998년생)이 2020년에 첫 취업을 하고 근로자 평균임금을 받으며 국민연금 의무가입 연령 59살까지 계속 직장에 다닌다는 것을 가정한 것이다. 즉, 평균임금을 받는 1998년생이 22살부터 59살까지 38년 동안 매년 보험료를 내고 받는 소득대체율이 31.2%라는 것이다. 그러나 38년 동안 보험료를 내는 사람은 극소수이며 국민연금 평균 가입연수는 25년~26년 정도이다.

따라서 실제 보험료 납부 기간을 고려하면, 소득대체율 31.2%도 과장된 것이며, 20% 정도로 보아야 한다. 이는 소득대체율이 가장 낮은 리투아니아(19.7%)와 비슷해, 사실상 국민연금 보장성은 OECD 중 꼴찌라는 것을 의미한다.

기존 OECD 보고서에서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은 이렇게 낮지 않았다. 2019년 보고서의 OECD 평균 소득대체율은 49%, 한국은 37.3%로 30위권이었다. 하지만 2021년 보고서부터 국민연금의 특성을 반영한 정교한 계산을 통해, 우리나라의 소득대체율이 다른 국가보다 월등히 낮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즉, 기존의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수준은 ‘과장’된 것이었고, 국민연금의 보장성이 선진국 중 가장 형편없다는 점은 이제 부정하기 어렵게 되었다.

기초연금 30만원은 한국의 근로자 평균소득(384만원) 대비 7.8%이다. 인구의 30% 이상에게 지급되는 (준)보편주의적 기초연금을 가진 8개국 중 가장 낮다(오스트레일리아 27%, 영국 16.7%, 일본 15.1%, 캐나다 12.9%).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소득대체율을 합해도 우리나라 공적연금의 보장성은 여전히 OECD 하위권이며, 노인가구 최소생활비에도 미달한다. ‘국민노후보장패널조사’에 의하면 2019년 노인 1인 가구 최소생활비는 117만원이고 적정생활비는 165만원이다. 2020년 국민연금 평균액 54만원과 기초연금 30만원을 합해도 최소생활비에 미달한다.

국민연금 보장성 강화는 과격한 제안이 아니다. 선진국에 진입한 대한민국이 성실하게 살고 은퇴한 평균적인 노인에게 최소생활비 정도는 보장해주자는 것이다.

 

둘째, 노인이 적정한 소비를 해야 경제가 순환된다. 재정안정화론자들은 연금을 ‘비용’으로만 본다. 연금은 명품 구매가 아닌 일상적인 소비로 대부분 지출된다. 연금 소비가 보건의료, 사회서비스 일자리 유지와 음식, 소비재산업의 매출을 늘려 경제순환에 기여한다는 많은 연구가 있다. 즉, 연금지출은 소비라는 ‘편익’을 준다.

2020년 우리나라가 국민연금, 기초연금, 공무원연금 등 모든 공적연금으로 지출한 돈의 총액은 국내총생산(GDP)의 3.3%이다. 2020년 명목 GDP가 1933조원이니 대략 63조원을 연금으로 지출한 것이다. 2020년 OECD 평균 연금지출액은 GDP의 9%이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173조원을 지출한 것이다. 연금지출이 가계소비지출을 유지·확대하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는 것은 명확하다.

한국 GDP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는 가계소비지출의 비중은 갈수록 줄고 있다. 한 해 백만명 이상 출생했던 1957년~1971년생들이 노동시장에서 빠져나가면서 소비위축은 피할 수 없다. 1990년대 이후 일본 경제의 장기침체가 인구감소로 인한 소비위축에 있다는 해리 덴트의 진단을 경청할 필요가 있다(<‘2018 인구절벽이 온다>, 청림출판).

주력 소비층이 급격히 감소하는 상황에서 누가 소비를 담당할 것인가도 경제적으로 매우 중요해진다. 2020년 주력 소비층인 25~59살 인구는 2765만명(인구의 53.3%)인데, 2060년에는 1425만명(33.4%)으로 절반이 줄어든다. 주력 소비층 절반이 사라지는 것이다. 이는 어느 나라도 경험하지 못한 급격한 소비 위축과 내수 부진으로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줄 것이다.

2020년 854만명인 노인층(인구의 16.5%)은, 2060년 1천만명이 늘어난 1882만명(43.9%)이 된다. 총인구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는 노인층이 지금처럼 최소생활비에도 못 미치는 연금을 받게 되면, 추가적인 소비 여력 확충은 불가능하다. 기금고갈로 연금을 못 받는 첫 세대가 될 것이라는 황당한 가짜 뉴스의 주인공인 1990년생도 2060년에 계속 연금을 받는다. 이들도 대부분이 기초생활비에 미달하는 연금을 받는데, 무슨 소비 여력이 생기겠는가.

주력 소비층의 감소로 인한 소비위축을,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노인층에서 보완해주어야 내수가 유지된다. 공적연금을 강화하는 것이 사실상의 유일한 해법이다. 이런 이유로 지금보다 공적연금의 보장성을 더 강화해야 한다.

 

셋째, 평등한 복지국가를 만들기 위해 필요하다. 우리나라 노후소득보장은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있다. 첫째는 국민연금, 기초연금, 공무원연금 등 공적연금, 둘째는 연금저축(개인연금), 변액연금 등 보험회사가 운영하는 민간연금(이하 사적연금), 그리고 셋째, 퇴직금을 연금화시킨 퇴직연금이다(이하 기업연금). 세 부문의 비중에 따라 노후 소득의 불평등 정도가 결정되고, 나아가 복지국가의 성격에 영향을 준다.

우리나라는 공적연금, 사적연금, 기업연금이 비슷한 비중이다. 2016년 국민연금 보험료 총액은 38.3조원이었고, 사적연금과 퇴직연금에 낸 보험료가 각각 34.9조원, 34.8조원이었다. 이는 세계에서 부러워할 정도로 정부, 개인, 기업이 노후소득을 분담하는 황금비율이다.

하지만 제대로 된 소득보장은 공적연금만 하고 있다. 사적연금은 중도 해지율이 워낙 높아, 만기까지 가는 비율은 30% 정도이다. 10명 중 7명은 중도 해약으로 원금도 못 건지는데, 특히 저소득층의 해지율이 높다. 퇴직연금도 비교적 괜찮은 직장에 다녀야 보장되는데, 이마저도 대부분 중도에 찾거나 일시금으로 받아 연금 기능을 못 한다. 믿을 만한 건 국민연금과 기초연금밖에 없다.

사적연금과 기업연금의 비중이 클수록 노후 불평등을 더 크게 만들지 줄여주지 못한다. 대부분 유럽 복지국가는 공적연금의 비중이 높으며, 사적연금과 기업연금 비중은 미미하다.

미국과 영국은 정반대이다. 수익률이 높아 본받아야 한다고 소개되는 미국의 기업연금 401(K)는 고소득층에게는 많은 노후 자금을 남겨주지만, 저소득층에게는 돈을 거의 남겨주지 못한다. 공적연금의 비중이 클수록 평등한 복지국가가 된다는 것은 일관된 학문적 증거를 갖고 있다.

 

공적연금이 제 역할을 못하면 중산층은 사적연금과 기업연금으로 몰려간다. 이게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다. 중산층이 노후를 공적연금에 의존하는가 아니면 사적연금 혹은 기업연금에 의존하는 가는 복지국가의 내용을 결정한다. 중산층이 공적복지제도에 만족해야 불평등이 덜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

세계 최강국 미국이 왜 ‘형편없는’ 복지국가로 평가받는가? 중산층 대부분이 민간의료보험과 기업연금에 의존하는 미국은, 중산층이 공공복지제도를 지지할 정치적 이해관계가 없다. 너무 당연한 전국민의료보험(오바마케어)에 대한 극렬한 반대 여론이 존재하는 것은, 민간보험에 포섭된 미국 중산층의 상황을 보아야 이해된다.

건강보험의 보장성이 강화되고 중산층의 지지가 높아지면서, ‘건강보험 폐지, 민간의료보험 도입’ 목소리는 소멸하였다. 같은 원리이다.

국민연금 보장성 강화는 중산층의 최소한의 품위있는 노후보장을 공적연금으로 해결하여 불평등이 덜한 복지국가로 가자는 것이다.

기초연금을 인상하면 소득분배는 약간 좋아진다. 하지만 중산층이 사적연금과 기업연금에 의존하는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더 큰 불평등이 발생한다, 이것이 기초연금 중심의 소득보장 전략이 진보의 잘못된 방향이라고 비판하는 핵심적 이유이다.

 

국민연금 재정안정화만 강조하는 연금개혁은, ‘진보의 금기를 깨는 혁신’이 아니라, ‘진보 스스로 무덤을 파는 정치적 자살 행위’이다.

 

 

김연명 | 중앙대 사회복지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