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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민연금 기금고갈론이 ‘공포마케팅’인 세 가지 이유

道雨 2022. 2. 24. 10:08

기금고갈론이 ‘공포마케팅’인 세 가지 이유

 

 

얼마 전 ‘한국경제연구원’에서 연금기금 고갈로 ‘1990년생부턴 국민연금 한 푼도 못 받아’라는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여러 언론에 크게 보도된 이 제목은 가장 악의적인 국민연금 뉴스 중의 하나이다.

이 자료는 국민연금이 부실하니 ‘사적연금 활성화가 시급하다’고 끝을 맺고 있다. 전형적 공포마케팅이다.

‘보험료가 40%까지 오른다’는 기사도 전문가들의 입을 빌려 자주 등장한다. 집값으로 열받아 있는 2030 세대는, 국민연금 불신을 넘어 적대감까지 표출한다.

 

세 가지 이유에서 국민연금 고갈론은 공포마케팅이다.

 

첫째, 기금 고갈로 연금을 주지 않은 나라는 역사에 없다. 기금이 고갈되면 연금을 못 받을까? 기금 없이 연금을 지급할 수 있고, 대부분 국가가 이렇게 연금을 지급하고 있다. 나라가 망했던 러시아는 국내총생산(GDP)의 9.1%, 재정 파탄을 겪은 그리스도 GDP의 15% 정도를 연금으로 지급하고 있다. 연금지급에 필요한 돈 100%를 적립하고 이 기금으로 연금을 주는 나라는 칠레와 싱가포르 딱 두 나라뿐이다. 아주 예외적이다.

기금이 없으면, 필요한 돈을 보험료로 걷고, 모자라는 부분은 세금으로 보충하여 연금을 지급한다. 가령 연금으로 100조원을 써야 한다면, 그 해에 90조원을 보험료로 걷고 나머지를 세금으로 충당한다. 이를 ‘부과방식’이라 한다.

우리나라 건강보험이 이 방식이다. 2020년에 건강보험 진료비로 73.6조원이 지출되었는데, 85.7%인 63조원을 보험료로, 나머지 9.2조원을 세금으로 충당하였다. 건강보험 기금은 17.7조원으로 비상시를 대비한 예비금 정도의 의미이다.

대부분 국가가 초기에는 기금을 적립했지만, 현재는 건강보험처럼 연금을 ‘부과방식’으로 운용하고 있다. 독일과 프랑스가 대표적인데, 독일은 기금이 없이 한두 달 치 정도의 예비금만 보유하고 있다.

이와 달리 상당 규모의 기금을 적립한 국가가 있는데, 우리나라가 대표적이다. 2020년 국민연금 적립금은 834조원인데, GDP의 43.3%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일본의 적립금은 GDP의 33%, 스웨덴은 31.8%, 캐나다 21.6%, 미국 13.4% 순이다.

국민연금 적립금은 보험료 없이 향후 25년간 연금지급이 가능한 규모이며, 일본과 스웨덴은 약 5년치, 미국은 3년치 정도이다. 이 국가들의 연금운용은 적립방식이 아닌 큰 기금을 가진 부과방식으로 이해하는 게 합리적이다.

현재의 보험료 9%, 소득대체율 40%를 변경하지 않아 35년 후인 2057년에 기금이 소진된다면, 기금 없는 완전 부과방식으로 전환된다. 이 지점에서 엄청난 쟁점과 논란이 벌어진다.

1990년생이 2057년 기금 고갈로 진짜 연금을 한 푼도 못 받을까?

그렇지 않다.

2057년에도 후세대들은 경제활동을 한다. 이들이 낼 보험료 총액은 GDP의 2.4% 정도이다. 연금지급에 필요한 돈은 GDP 6.9%이므로, 이들이 낸 보험료만으로는 약속한 연금의 35% 정도만을 받게 된다. 미국 국민연금은 우리보다 23년 빠른 2034년에 기금이 고갈되는데, 약속한 연금의 75% 정도 받을 것으로 추정한다.

연금의 100%를 받다가 2057년 이후부터 갑자기 65%가 삭감된 35%짜리 연금을 받는다? 다른 말로 2060년에 1900만명에 달하는 노인들의 연금이 갑자기 65%가 삭감된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소비가 급감하고, ‘폭동’이 일어날 것이다. 경제적, 정치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재원을 어떻게든 마련해 약속된 연금을 지급해야 한다. 즉, 기금 고갈로 연금을 못 받은 일은 역사상 없었고, 앞으로도 없으리라는 것이다.

단, 부과방식으로의 이행은 필연적이나, 저출산·고령화가 가져오는 대규모의 연금적자가 우리 사회가 감당 가능한 규모인지, 감당 가능하다면 이를 어떻게 세대 간에 합리적으로 분담할 것인지가 문제의 핵심이다.

 

둘째, 2030 세대에게 공포를 조장하는 2057년 기금 고갈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 정확히는 기금을 고갈시킬 수가 없다. 이유는 역설적으로 막대한 국민연금 기금 때문이다.

기존 추계에 의하면 2035년에 연금기금은 GDP의 48.2%로 최고치를 기록한다. 하지만 투자수익이 예상외로 커지면서 2021년에 이미 GDP의 47%까지 오른 것으로 추정되며, 2035년에는 GDP의 50%를 훨씬 넘게 적립될 것이 분명해졌다. 최근 3년 간의 막대한 투자수익으로 기금 고갈이 몇 년은 더 늦춰질 수도 있다.

기금을 많이 쌓아두면 좋으나 풀기 어려운 딜레마가 발생한다. 주식, 채권, 부동산에 투자된 천문학적인 자산을 연금지급을 위해 현금화하는 과정에서 어떤 경제·사회적 충격이 나타날지 누구도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을 ‘연못 속의 고래’로 비유한다. 기금이 너무 커 국내에 투자할 곳이 없고, 조금만 투자 방향을 바꿔도 금융시장에 미치는 여파가 크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이 주식을 매도하면 개미투자자들의 아우성이 들려온다.

2021년 11월 924조원이 적립된 국민연금은, 국외 금융자산에 316조원(34.2%), 국내채권에 340조원(36.8%), 그리고 국내주식에 157조원(16.9%)이 투자되어 있다. 국민연금의 국내 투자액은 채권시장의 13.3%, 주식시장 시가총액의 10%를 차지하는 막대한 금액이다. 웬만한 재벌기업 주식의 10%를 국민연금이 보유하고 있다.

연금급여는 주식과 채권으로 못 주니, 연금을 주려면 기금을 매각하여 현금화해야 한다(이를 유동화라 한다). 2057년 기금 고갈은 2040년을 전후하여 GDP의 50% 넘게 적립된 주식, 채권, 부동산 자산이 17년 만에 완전히 매각하여 현금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국민연금이 주식을 팔기 시작하고, 만기채권을 연장하지 않고 원금을 회수하면 어떤 일이 발생할지 상상조차 힘들다. 이 때문에 국외투자를 늘리고 있지만, 유동화 과정에서 환율리스크 등 여러 문제에 봉착할 수 있다.

함의는 이렇다. 기금의 최고 적립 시점부터 소진까지의 시기를 최대한 길게 늘이지 않으면, 즉, 고갈 시점을 연장하지 않으면, 유동성 확보가 어렵고, 예상조차 힘든 리스크가 나타날 수 있다. 가장 합리적인 추론은, 2057년을 전후하여 기금 고갈이 수십 년에 걸쳐 매우 완만하게 진행되도록 만들어야, 유동화로 인한 경제, 사회적 충격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결론은 유동성 문제로 기금 고갈 시점을 최대한 연장시킬 수밖에 없어, 2057년의 기금 고갈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완만한 유동화가 가능해지려면 새로운 연금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

 

셋째, 연금지출은 감당할 수 있고 재원 마련도 가능하다.

새로운 연금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재정안정론자들이 40년, 60년 뒤의 일을 몇 퍼센트 수치까지 제시하며 ‘나라가 망한다’고 하니 대응하지 않을 수 없다.

먼저 고령화로 인한 연금지출이 우리 사회가 감당 가능한 수준인지 아닌지부터 따져보자.

<표 1>은 군인연금을 제외한 우리나라 총연금지출액을 GDP 비율로 추정한 것인데(정부 자료), 2040년에 GDP의 6.8%, 2060년에 10.9%의 지출이 예상된다. 2060년 이후는 인구구조가 안정되어 연금지출이 폭증하지 않는다. 2060년에 부담해야 할 GDP 10.9%가 부담 불가능한 수준인가? 선진국들은 이미 2020년 GDP의 평균 10%를, 이탈리아, 스페인 등은 15% 이상을 연금으로 지출했다.

 

선진국의 경험을 보면 감당 가능한 수준이며, 나라가 망한다고 호들갑을 떨 합당한 이유가 발견되지 않는다. 더욱이 2060년 우리나라의 노인인구는 43.9%인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은 26.6%이다. 우리나라의 1인당 연금액과 노인에게 배당되는 연금의 총량이 다른 나라에 비해 매우 낮은 것이다. 선진국과 같은 수준의 연금을 받으려면, 한국의 연금지출은 2060년에 GDP의 18% 정도가 되어야 한다.

연금지출이 부담 불가능한 규모이면 나라가 ‘망할 일’이지만, 가능한 규모라면 정치적 갈등은 있겠지만 합리적인 분담을 통해 충분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가능성은 없지만 2057년에 기금고갈이 발생한다고 치자. 2057년부터 2088년까지 국민연금 지출은 연간 GDP의 6.9%~9.4%로 추정되는데, 보험료가 GDP 2.4%~2.9%이기 때문에, 연간 적자는 GDP의 4.5%~6.6% 범위 안에 있다. 부담되는 것은 맞다. 이 적자를 어떻게 충당할 것인가? 여기서부터는 불확실성이 너무 커, 논증보다는 합리적인 추론을 할 수밖에 없다.

연금제도의 수입구조부터 보자. 현재 추세면 우리나라는 머지않아 심각한 노동력 부족으로 정년을 연장할 수밖에 없다. 65살 혹은 그 이상 정년이 연장되면, 59살까지인 보험료 상한 연령도 올라가고 수입이 늘어난다.

노인인구가 30~40%에 육박하면 노인도 더 일해야 하므로, 연금 지급 개시 연령도 65살 이상으로 늘릴 수 있다. 선진국들은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 이렇게 하면 지출은 대폭 감소하고 수입은 대폭 늘어난다.

보험료 인상도 당연히 해야 한다. 노동계는 적정연금을 위해 적정부담을 하겠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오히려 사용자 단체가 반대하고 있다. 다만 어느 정도 규모로 언제부터 인상하는 것이 세대 간에 공평한 부담인가는, 연금의 적정 수준, 적립금의 추이 등을 보면서 결정하면 된다.

보험료 부과소득 기준도 개선해야 한다. 2020년 보험료가 부과된 총소득은 549조원으로, 노동소득 총액 918조원의 약 60% 수준이다. 자영업자 소득이 보험료 부과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보험료 납부 상한선(503만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2020년 한국의 보험료 소득 상한선은 평균임금 대비 1.31배로, 일본(2.37배), 미국(2.29배)보다 적고, 근로자의 17%가 여기에 걸려 있다. 물론 소득상한선을 올리면 연금지출도 늘어난다. 기금 고갈 이전 적당한 시점에 상한선을 올리면, 급격한 수지 격차를 완만하게 하고, 고액연금은 세금 환수하는 부분도 생긴다.

연금제도 외 수입을 생각해보자. 2020년 0~21살 인구가 약 1천만명인데, 2060년에는 528만명으로 절반 가까이 감소한다. 2020년 교육 및 아동복지예산 총액은 GDP 5% 내외로 추정된다. 해당 인구가 절반으로 줄면 대략 GDP 대비 2.5%의 여유분이 생긴다.

기술혁신으로 부의 원천이 자본 쪽으로 더 이동해 가면, 여기서 적자의 일부를 충당할 수 있다(예, AI 로봇세). 기금 고갈을 전후하여 특정 세대의 과부담을 막기 위해, 정부가 10~50년에 걸친 장기채권을 발행하여, 고령화 부담을 세대 간에 공평하게 분담하는 것도 가능한 대안 중 하나이다.

이 모든 것을 당장하기 어렵다. 정년 연장, 연금지급 연령 추가 연장 등은 청년 취업난이 심각하고 조기퇴직으로 중년층의 소득절벽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세대 간 갈등만 유발할 것이다. 인구·노동시장구조의 불확실성이 어느 정도 해소되어야 도입 시기를 결정할 수 있다.

재정안정화론자들의 단골 메뉴인 ‘보험료가 15% 혹은 20%(사용자부담분까지 30%~40%)까지 오른다’는 주장도, 앞에서 설명한 여러 수단을 완전히 배제하고, 연금 비용 전부를 현재처럼 임금소득에만 부과하여 충당한다는 것을 전제로 계산된 수치이다. 현재의 산업구조 변화를 고려하면 이 전제는 너무 비상식적이다.

인구변화와 기금 추이에 맞춰 연금의 수입 및 지출구조를 조정하고, 재정으로 일부 충당하면, 보험료가 15%, 20%까지 올라갈 일은 없을 것이다.

왜곡된 정보에 기반하여 대선 공약으로 제시된 ‘보험료 인상’ 공약은 후유증만 남길 것이다. 국민연금이 형편없어진 것은 참여정부에서 소득대체율을 너무 낮춰 저부담-저급여구조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적정 보험료와 적정연금을 보장하는 개혁이 이루어졌다면, 재정안정화 조치에 대한 정치적 저항은 훨씬 덜 할 것이다.

연금의 목적은 적정 소득보장으로 노후 빈곤을 예방하는 것이다. 이 목적을 상실한 재정안정화 개혁은 정치적으로 지속 가능하지 않다. 2057년까지 35년이 더 남았다. 대비할 시간이 충분하며 허송세월한 게 아니다.

연금개혁을 ‘구국의 결단’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신도 모른 채 공포마케팅을 하고 있다. 공포마케팅으로 연금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공포마케팅의 최대 수혜자는 항상 민간보험회사이다.

 

김연명 | 중앙대 사회복지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