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정부 누적 무역적자, IMF 직전치 4배 넘었다
윤 정부 682억 달러…구제금융 직전 158억 달러
인플레 감안하면 2배…GDP 대비 4.1% vs 2.59%
현 상황, IMF 구제금융 당시보다 훨씬 더 심각
한미 금리차, 대중 무역적자 줄어들 전망 흐려 문제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무역수지 적자의 액면 규모가,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기 직전 13개월에 비해 4배가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4일 관세청 통계에 따르면,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던 지난해 5월부터 올해 5월까지 13개월간 무역수지 누적 적자 금액은 682억 달러에 이른다. 관세청의 통계는 신고수리일 기준으로 연간 통계 확정 시점(2024년 2월)까지 일부 월별 수치는 정정될 가능성이 있고, 이에 따라 누적 무역수지 적자 금액도 달라질 수 있다.
e-나라지표에서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받기 직전 13개월인 1996년 10월부터 1997년 10월까지 무역수지 적자 금액을 합산하면 158억 달러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13개월간 무역수지 적자 금액(682억 달러)은, IMF 직전 13개월(158억 달러) 무역수지 적자 금액보다 4배가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가 상승, GDP 대비해도 구제금융때보다 적자 많아
미국 비영리단체인 오피셜 데이터(Official Data)가 만든 ‘소비자물가지수(CPI) 인플레이션 계산기’에 따르면, 1997년 1달러의 가치는 2023년 1.89달러의 가치와 같다. 이 계산 식에 따라 단순하게 계산해보면, IMF 구제금융 직전 무역적자 규모인 158억 달러는 2023년 기준으로 약 298억 달러의 가치에 해당한다. 물가 상승을 감안해도,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누적 무역적자 규모인 682억 달러는, IMF 구제금융 직전 13개월간 무역적자 규모보다 2배가 넘는다.
무역적자는 경제 규모와도 상대적으로 비교되어야 한다. 통계청 KOSIS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1996년 달러 표시 명목 국내총생산(GDP)은 6099억 달러였다. 구제금융 직전 무역적자 158억 달러는 1996년 명목 GDP의 2.59%에 해당한다. 지난해 달러 표시 명목 국내총생산(GDP)은 1조 6643억 달러였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누적 무역적자 682억 달러는 2022년 명목 GDP의 4.1%에 해당한다. 경제 규모와의 상대적 비교를 해보면, 현재의 무역적자 규모가 IMF 구제금융을 받던 당시보다 더욱 심각한 상황임을 알 수 있다.
무역적자는 IMF 구제금융 위기를 초래한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였다. 장단기 금리 차를 노린 금융사의 외화 차입, 재벌과 대기업의 무분별한 대출을 통한 문어발식 경영 등, IMF 구제금융을 초래한 여러 원인들이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장기화되고 만성화된 무역적자를 통한 지속적인 외화 유출이 IMF 구제금융을 촉발할 만한 거시경제 환경을 조성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자본시장 개방이 점진적 개방 방침에 머물다,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과 1997년 IMF 구제금융 패키지를 통해 본격화된 것을 고려하면, 자본시장을 통한 외화 유출입보다 큰 원인이었다고 할 수 있다.
IMF 구제금융을 받기 1년 전후로 언론은 무역수지 적자의 원인을 여러 가지로 분석하고 있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국내 기업의 해외투자가 생산품의 역수입을 통해 수입을 늘려 무역 수지 적자에 기여한다고 지적했다. 이외에도 반도체 가격 하락 사이클, 미국, 일본 등 대 선진국 수출 감소 등도 무역수지 적자의 원인으로 꼽혔다.
1996년 11월 27일 자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1996년 초부터 9월 말까지 한국의 대미 무역적자 증가 속도가 주요 교역국 가운데 가장 높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대미 무역적자 규모가 전년 대비 67.5% 증가했다. 이 기사는 미국의 통상압력 가중이 대미 무역적자 확대의 원인으로 지목됐다.
한미간 금리격차 장기화시 문제 발생 가능성
IMF 구제금융을 받을 당시와 현재는 거시 경제 환경이 다르다. 현재 자본시장 개방 정도가 당시보다 높고, 최대 교역 파트너도 미국 등 서구에서 중국으로 변경됐다.
1차적인 자본 유출 우려는 한미 간 금리 격차에서 나온다. 현재 한국과 미국의 기준금리 격차는 역대 최대인 1.75%p 차로 벌어져 있다. 이에 대해 차영주 와이즈경제연구소장은 1일 YTN 라디오 생생경제에 출연해 "외국인은 금리 격차만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환율, 기업의 전반적인 전망 등을 고려한다"면서 "현재 이러한 부분이 긍정적으로 나오고 있어 현재 한미 간 금리 격차가 벌어져도 우려할 상황은 아니다"라고 진단했다.
그러나 한미 간 금리격차가 조만간 줄어들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는 점은 문제다. 미국을 포함한 세계 각국 중앙은행들이 관리 목표치보다 높은 물가상승률로 인해 은행 파산 등 위기 징후가 나타나는 데도 쉽사리 기준금리 인하 사이클로 전환하지 못하고 있다. 역대 최대 규모의 한미간 금리격차가 현재 상황에서 종료될 경우 큰 문제가 없을 수 있지만 올해 말까지 장기화 될 경우에는 한국 투자에 대한 경계심을 높일 만한 이슈가 발생하는 상황에서 자본이 민감하게 이동할 위험성이 상존하고 있다.
짐 오닐, 지난해 '제2의 아시아 금융위기' 경고
1997년 외환위기 당시 골드만삭스의 경제학자였던 짐 오닐은 지난해 6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일본 엔화가 달러당 150엔을 넘어서면 1997년 아시아 외환 위기가 재현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오닐의 블룸버그와의 인터뷰가 보도된 지난해 6월 10일 달러당 134.40엔을 기록했다. 이후 지난해 10월 20일 달러당 150.19엔을 찍었다. 일본은 지난해 9월에 1998년 이후 24년 만에 외환 시장에 개입해 엔화 가치 방어에 나섰다. 150엔을 찍었던 엔화 환율은 이후 지난 1월 15일 128.04엔까지 빠졌다. 그러나 이후 다시 상승 추세가 이어지면서 지난 4일 오닐의 블룸버그 인터뷰 시점보다 높은 139.96엔을 기록했다. 지난해 10월 달러당 7.30위안까지 올랐던 중국 위안화 환율도 올해 1월 6.70위안까지 빠졌다가 지난 4일에는 7.08위안으로 마감했다.
1997년 아시아 외환 위기의 기폭제로 1995년 ‘역플라자 합의’가 꼽힌다.
1985년 서방선진 7개국(G7)은 일본의 엔화를 인위적으로 강세 전환하는 이른바 ‘플라자 합의’를 도출했다. 이후 일본 엔화는 1985년 254.79엔에서 1995년 84.25엔까지 급격히 가치가 상승한다. 일본 엔화가 강세로 전환되면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한 한국은, 이른바 3저 호황(약달러, 저유가, 저금리)을 바탕으로 무역 수지 흑자 국면으로 돌입했다. 1986~1989년 4년간의 무역 수지 흑자는, 1990년 이후 다시 적자로 전환되면서 마감된다. 플라자 합의 이후 1995년까지 한국의 경제성장률도 1989년과 1992~3년을 제외하면 연 9% 이상을 달성했다. 이 기간 한국 정도는 아니지만 다른 아시아 국가들도 고도성장을 구가했다.
1995년 G7은 이번에는 엔화를 약세로 전환하며 강달러 정책을 도입하기로 하는 ‘역플라자 합의’에 나선다. 달러 약세 정책에도 경상수지가 개선되지 않자, 강달러 정책을 통한 자본수지 흑자로 만회하려는 미국의 의도와 엔화 강세로 인한 경쟁력 약화에서 빠져나오려는 일본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였다.
일본 엔화 가치는 1995년 84.25엔에서 1998년 141.72엔까지 수직 하락했다. 일본 엔화 가치가 하락함과 동시에 미국 달러화가 강세를 보이면서, 저금리, 약달러 장세에서 동아시아로 향했던 자본이 미국으로 유출되기 시작했다. 태국에서 시작된 자본 유출이 이내 한국 등 다른 동아시아 국가로 전이됐다. 짐 오닐이 지난해 일본 엔화 환율 동향과 제2의 아시아 외환위기 가능성을 연결시킨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 있다.
'9월 무역 수지 흑자 전환' 자신하는 정부
한국에서 제2의 외환위기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무역수지를 다시 흑자로 돌려놓을 필요가 있다. 자본시장을 통한 외화 유입과 상품 교역과 무역을 통한 외화 유입은 외생 변수에 대한 민감도와 탄력성에 있어 차이가 있다. 상품 교역을 통한 구조적 외화 획득 경로를 확실히 해 외환 축적에 나서는 것이 외환 수급에 따른 위기에 대비하는 가장 근본적인 해법이라고 볼 수 있다.
정부도 무역 수지 흑자 전환을 자신하고 있다. 정부가 예상하는 무역 수지 흑자 가능 시점은 오는 9월이다. 지난달 22일 장영진 산업통상자원부 제1차관은 “9월께 흑자 전환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그러나 과연 이같은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에는 의문이 제기된다. 정부 출연 기관인 산업연구원은 하반기 무역수지 적자 전망을 유지하면서 산업부와 엇박자를 냈다. 산업연구원은 지난달 30일 펴낸 ‘2023년 하반기 경제·산업 전망’에서, 올해 수출과 수입이 전년 대비 각각 9.1%와 10.2%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에 따라 올해 연간 무역수지는 353억 달러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예측했다.
산업연구원은 "2023년 수출은 전기차와 이차전지 등 증가세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수요 둔화, 반도체 불황 지속, 대중국 수출 감소 등 영향과 함께 지난해의 기저효과 등으로 약 9.1%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대중 무역 흑자 회복 필요
그럼에도 정부가 공언한 ‘9월 무역수지 흑자 전환’은 가능할까? 구조적인 무역수지 흑자 전환을 위해서는, 분야별로 보면 반도체 경기의 턴어라운드, 지역별로 보면 대중국 무역 흑자의 회복이 필요해 보인다.
반도체 경기의 턴어라운드를 통한 수출 회복은, 빠르면 내년 1분기 정도에 가시화될 것으로 보인다. SK증권은 최근 ‘7만 전자’를 달성한 삼성전자에 대해 목표주가를 8만 원에서 9만 원으로 상향하면서 "올해 하반기 예상을 웃도는 출하량과 하반기 재고 하락 가속화, 이에 따른 재고 자산 평가손실 축소로, 시장은 올해의 메모리 적자가 아닌 내년의 턴어라운드(실적 개선)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밝혔다. 메모리 가격 반등 시점도 올해 4분기로 예상했다. SK증권은 “올해 4분기 메모리 가격이 반등하면서 내년 1분기 메모리사업이 흑자 전환할 것”이라고 밝혔다.
증권가의 분석을 보면, 최근 엔비디아가 깜작 실적을 기록하면서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에 외국인 자금이 유입되는 등 반도체 업황 개선 기대감이 나타나고 있지만, 메모리 가격 반등 및 실적 반영은 내년 이후에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 시나리오를 보더라도 산업부가 제시한 올해 9월 무역 흑자로의 턴어라운드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대중국 무역 흑자 회복이다. 한국무역협회 통계에 따르면, 1997년 이전까지 한국의 무역수지를 살펴보면, 3저 호황기인 1986~1989년을 제외하면 흑자를 기록한 해가 없다. 1997년 수평적 정권교체 이후 민주 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 한국의 무역 수지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제외하면 구조적인 흑자 기조를 이어왔다. 민주 정부 수립 이후 한국이 구조적인 무역 수지 흑자국이 된 데는 중국의 역할이 지대했다.
1991년 한중 수교 이후 1991년과 1992년을 제외하면, 1993년부터 2022년까지 한국은 대중국 무역수지에서 흑자를 기록해 왔다.
1997년 외환 위기 직전 2~3년을 보면, 미국과의 무역 수지는 적자를 기록했지만 중국과는 그 당시에도 흑자였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미국과의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하면서도 중국과는 적자를 기록하는 패턴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지난 4월 대중 수출이 전년대비 29% 감소하는 등 대중 교역의 질이 악화되고 있다. 배터리 소재에 대한 중국 수입 의존도가 커지는 반면, 화장품을 비롯한 소비재 분야에서는 한국 제품이 힘을 잃어 왔다.
반대로 미국과의 무역 수지가 흑자를 나타낸다 하더라도, 전체 무역 수지 흑자를 견인하지는 못하고 있다. 미국과의 교역량이 늘어나고 있다고 하지만, 중국과의 교역이 한국 경제에 미쳤던 역할을 그대로 대체하거나, 한국 무역수지에 순증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한국 무역수지의 전통적 흑자 공식인 중국과의 무역 관계 회복이 절실해 보이는 이유다.
만약 중국과의 무역 수지 흑자 기조를 회복하지 못한다면, 정부가 공언한 올해 9월이 아니라 내년 상반기에도 무역수지 흑자로 전환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박승철 기자psc2023@mindlenews.com
출처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https://www.mindl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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