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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잉 압수수색 결정판, 어디까지 퇴행하나

道雨 2023. 6. 9. 09:28

과잉 압수수색 결정판, 어디까지 퇴행하나

 

 

 

“도대체, 기자가 얼마나 중한 죄를 지었길래, 판사가 기자의 신체, 의복, 소지품에 주거지 집, 차량, 사무실까지 영장을 발부했을까.”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개인정보를 유출했다는 혐의로 압수수색을 당한 <문화방송>(MBC) 기자가 던진 질문은, 수사하는 경찰은 물론, 영장을 발부한 법원, 그리고 동료 시민 모두가 곱씹어볼 거리다.

언론사 뉴스룸과 기자 자택, 국회의원 사무실 등을 대상으로 이뤄진 이번 압수수색은, 한해 수십만건을 넘는 압수수색 과잉과 현 정부 들어 더욱 거칠어지고 있는 강제수사의 결정판을 보는 듯하다.

압수수색의 요건인 범죄 혐의, 필요성, 비례성, 특정성 원칙 등이 충족됐는지 하나같이 의문스럽다.

 

1. 기자가 한 장관의 국회 인사청문 자료를 입수하고 이를 다른 매체 기자와 공유한 행위가 범죄로 다뤄져야 하는지부터 의문이다. 이는 오랜 관행이며 공직자 검증을 위해 필요한 일이다. 만약 이를 처벌한다면 국회·언론의 공직자 검증은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다.

개인정보보호법에는 언론이 취재·보도 목적으로 개인정보를 ‘수집·이용’하는 경우에 대한 면책조항도 있다. 언론에 개인정보를 ‘제공’한 행위는 처벌할 수 있다는 해석도 있지만, 이렇게 되면 면책조항은 무의미해진다. 개인정보보호법을 기계적으로 적용해 언론 자유를 위축시키고 공직자 검증을 가로막는 게 이 법의 입법 취지는 아니다.

 

2. 설사 형식적으로나마 법 위반이라고 하더라도 과연 이렇게까지 압수수색을 할 사안인지는 더욱 의문이다. ‘범죄 혐의가 있으면 당연히 압수수색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잘못된 상식이다. 형사소송법은 ‘(압수수색 등) 강제처분은 필요한 최소한도의 범위 안에서만 하여야 한다’(199조 1항 단서)고 규정하고 있다.

 

몇해 전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딸의 고교 학교생활기록부를 제보받아 공개한 주광덕 당시 자유한국당 의원(현 남양주시장)이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등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았다. 경찰은 교장과 교직원의 휴대전화·컴퓨터 등을 ‘임의제출’ 형식으로 확보했다. 주 의원의 휴대전화·자택·사무실 등도 압수수색하지 않았다. 주 의원의 이메일과 통신기록에 대해서만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했다. 그마저 검찰은 이메일 영장만 법원에 청구하고, 통신 영장은 “필요성을 인정할 수 없다”며 반려했다. 이메일에서 증거를 찾지 못한 경찰이 재차 통신 영장을 신청하자, 검찰은 2개월 만에야 이를 받아들여 영장을 청구했다.

기자의 자택, 언론사 뉴스룸, 국회의원 사무실까지 몰아친 이번 압수수색과 너무나 대조된다.

 

최강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참고인 신분인데도 휴대전화와 사무실을 압수수색당했다.

주 의원 수사 때는 검찰마저 ‘압수수색의 필요성’을 따져 영장을 반려하기도 했는데, 수사기관에 대한 사법적 통제기관인 법원이 이번 수사에서 전방위적으로 영장을 내준 것은 법원의 존재 의미를 되묻게 한다.

 

3. 설사 압수수색의 필요성이 인정되더라도 압수수색이 무제한적으로 허용되는 게 아니다. 수사상 필요성과 압수수색으로 인해 피압수자가 받을 다양한 불이익 사이의 균형을 따져야 한다는 비례성의 원칙이 있다. 무엇보다 언론사 뉴스룸 압수수색은 비례성을 상실했다.

 

성장경 <문화방송> ‘뉴스데스크’ 앵커는 지난달 30일 방송에서 “1995년 엠비시에서 기자로 일한 이후 뉴스룸에 경찰이 들어온 장면을 오늘 처음 봤다”며 “서슬 퍼렇던 군사정권 때도 언론사의 취재 공간만큼은 (수사기관이) 함부로 들어오지 못했다”고 말했다.

성 앵커의 지적처럼 뉴스룸은 “수많은 취재원들의 개인정보도 노출될 수 있”는 공간이다. 한동훈 장관의 개인정보를 보호하기 위한 수사를 하면서 수많은 시민들의 개인정보를 노출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압수수색을 하는 것은 이율배반이다.

 

나아가 언론사 뉴스룸 압수수색은 그 자체로 언론 활동을 위축시키는 효과가 있다. 공직자 인사청문 자료 유출 수사와 언론자유의 위축이라는 두 사안을 저울에 올린다면 당연히 후자의 무게가 압도적이다. 미국 법무부가 취재·보도와 관련된 사안에서는 언론사와 기자를 상대로 압수수색 등 강제처분을 못하도록 연방 검찰에 가이드라인을 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채널에이(A)> 사건의 전례를 봐도, 검찰은 먼저 언론사에 자료 임의제출을 요구한 뒤 거부당하자 압수수색에 나섰고, 그나마 영장 집행이 가로막히면서 결국엔 임의제출 형식으로 자료를 받았다.

 

4. 설사 압수수색의 필요성과 비례성이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아무 곳이나 마구 뒤질 수 있는 영장이 발부돼서는 안 된다. 어떤 물건이 압수 대상인지 특정해야 하고, 이 물건이 존재할 개연성이 있는 장소에 한해서 압수수색을 허용해야 한다(형사소송법 109조).

<문화방송> 기자의 인사청문 자료 유출 여부를 확인하려면, 유출 경로의 인물들과 통신 및 자료 전송을 한 내역을 살펴보면 되는 게 상식적이다. 해당 기자는 압수수색 때 휴대전화와 업무용 노트북까지 제출했다. 그런데도 경찰은 신체, 의복, 차량, 주거지, 심지어 속옷 서랍까지 수색했다.

 

압수할 대상이 과연 어떻게 특정돼 있었기에 이렇게 내밀한 사생활의 영역까지 샅샅이 뒤질 수 있었는지 궁금하다. 앞서 경찰은 기자의 2개월치 차량 출입기록까지 확보하고 가족들이 엘리베이터를 드나드는 장면까지 촬영해 갔다고 한다. 이게 압수수색인지, 민간인 사찰인지 묻고 싶을 지경이다.

 

경찰은 <문화방송> 뉴스룸에서는 심지어 압수할 물건이 없어 그냥 돌아갔다. 경찰이 애초 뉴스룸에서 어떤 물건을 압수하려 했는지, 그 물건이 뉴스룸에 있을 개연성을 입증해서 영장을 발부받았는지 궁금하다.

 

현 정부 들어 검찰은 야당 당사, 경기도지사 집무실 등을 떠들썩하게 압수수색하고는 빈손으로 돌아간 경우도 있었다. 이 역시 애초 그곳에 압수할 물건이 있을 개연성을 충분히 따지지 않은 채 영장이 발부된 게 아닌지 의문스러운 사례다.

 

* 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법원종합청사에서 대법원 형사법연구회와 한국형사법학회가 공동개최한 `압수·수색영장 실무의 현황과 개선 방안' 학술대회가 열렸다. 백소아 기자

 

 

혹자는 압수수색 요건을 이렇게 깐깐하게 따져서야 어디 수사를 제대로 할 수 있겠느냐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런 요건들은 현행 법과 판례가 요구하는 기본적인 내용이다.

수사의 효율만 따진다면 영장도 없이 아무 곳에나 들이닥쳐 샅샅이 뒤지는 게 가장 좋은 방식이다. 영장제도가 도입되기 전 절대권력이 통치하는 시대에는 그랬다. 그러나 그것은 야만이다. 개인의 자유도, 사생활도 보호받지 못한다면 문명사회라고 할 수 없다.

국가권력이 인간을 인간으로 대하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진 게 형사소송 원칙들이다. 그리고 민주사회에서 그 원칙은 점점 강화되는 흐름이고 그래야 한다. 외국의 사례도 그렇고, 우리나라도 그래왔다.

 

하지만 요즘은 그 원칙들이 무너지고 오히려 퇴행하는 느낌이다. 지금의 추세라면 앞으로 더 심한 일도 벌어질 것 같은 불길함마저 감돈다.

 

이런 때일수록 중요한 게 법원의 사법적 통제 기능이다. 대법원이 △압수수색 영장 심사 때 대면심리를 도입하고 △전자정보 압수수색 영장에 검색어·대상기간 등 집행계획을 기재하도록 하는 등 압수수색 통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형사소송규칙 개정에 나선 것은 시의적절하다.

 

압수수색 관련 원칙들에 비춰 영장 발부가 적절한지, 발부하더라도 어떤 제한을 둘지 정확히 판단하려면 검찰이 제공한 서면 자료만으로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이럴 때는 법관이 수사기관 관계자나 정보 제공자 등을 대면해 충분히 물어볼 필요가 있다. 범죄수사를 가로막는다는 비난을 들을까봐 찝찝한 상태로 영장을 발부한다면, 법관의 영장심사라는 제도 자체가 무의미해진다.

 

또 휴대전화 등 전자정보 압수수색을 더 엄격히 통제할 필요성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현대사회에서 휴대전화 압수수색은 주거지 압수수색보다 몇십배, 몇백배의 사생활 침해 가능성을 지닌다. 휴대전화 속 정보들을 속옷 서랍 뒤지듯 다 열어볼 수 없도록, 검색어나 대상 기간, 파일 유형 등을 수사에 필요한 한도로 제한하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이런 방안에 대해 수사기관은 물론이고 시민의 기본권 보호에 앞장 서야 할 대한변호사협회까지 반대하고 있는 게 지금의 초현실적 현실이다.

형사소송법 교과서를 꺼내 보며 압수수색의 기본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시절이다.

 

 

 

박용현 |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