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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통위의 가짜뉴스 대응 ‘패스트트랙’, 사실상 검열이다

道雨 2023. 9. 21. 09:57

방통위의 가짜뉴스 대응 ‘패스트트랙’, 사실상 검열이다

 

 

 

신학림 전 뉴스타파 전문위원의 김만배 녹취파일 보도와 관련하여 허위 논란이 불거진 뒤 대략 20여일 동안, 언론계는 그야말로 난리를 만났다.

여당 대표는 해당 보도를 대선 정치공작으로 단정하고 이를 극형에 처해야 하는 중대한 반국가 범죄라고 무시무시한 말을 쏟아내고, 이에 맞장구라도 치듯이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는 인터넷 언론까지 심사해 악의적 허위 보도에는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를 추진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누가 뭐래도 신학림 전 위원이 책값이라며 김만배씨와 거액 돈거래를 한 점은 부적절한 행동이겠지만, 이후 뉴스타파에서 공개한 녹취록 전문을 보면, 당시 김만배 인터뷰 보도가 책값을 대가로 완전히 조작된 허위 인터뷰를 내보냈다고 단정할 만한 확증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아직 해당 녹취록이 대가에 의한 명백한 허위라고 단정할 수 없는 상태임에도, 정치권과 방통위는 누가 무슨 버튼이라도 누른 듯이 언론 전체를 대상으로 가히 폭주하고 있는 셈이다.

 

급기야 지난 18일 방통위가 허위 뉴스에 대한 구체적 대책으로 심의 패스트트랙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정작 독립성을 갖고 심의를 담당해야 하는 기관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인데, 이를 대신해 방통위가 심의 정책을 발표한 형식도 부적절한 것이지만, 그 내용은 가히 깜짝 놀랄 만한 것이다.

 

발표된 내용의 핵심은, 방심위에서 인터넷 뉴스 중 가짜 뉴스 심의가 접수되면, 원스톱으로 접수 순서와 상관없이 신속 심의해 포털사업자에게 선제 조치를 요구하겠다는 내용인 듯싶다.

물론 포털사업자의 자율규제를 통한 선제 조치를 우선 추진한다고 하지만, 이 서슬 퍼런 시대에 포털사업자들이 정부 선제 조치 요청에 어떤 모습을 보일지는 다들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일단 가짜 뉴스로 접수되면 심의기관의 자의적 판단과 요청으로 우선 조처될 수 있는 셈인데, 이는 언론 보도의 진실성이 편의점의 3분 즉석요리가 아닌 이상 커다란 언론자유 침해 문제를 야기할 수밖에 없다.

 

지금 문제가 되는 김만배 녹취파일 보도만 봐도, 과연 누가 그 보도를 보자마자 ‘척 보면 압니다! 이건 가짜!’라고 판정할 수 있겠는가?

또한 대부분 선거 보도는 유권자에게 투표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것인데, 보도의 진실 여부를 심의기관이 심의 중이라는 이유로 선거가 끝날 때까지 차단한다면, 애초 뉴스로서의 본질적 가치를 잃어버리게 된다.

 

이러한 문제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언론에 대해서 사전 억제(Prior Restraint)의 금지 원칙을 갖고 있으며, 적지 않은 언론의 잘못에도 불구하고 그 원칙을 지켜왔다.

설사 오류가 있더라도 그 오류에 대한 정부의 사전적인 간섭과 검열은 오히려 진실의 발견을 가로막을 뿐이라는 것은, 근대 언론자유 사상의 출발이자 뿌리이다.

 

단언하자면, 언론에 대한 사전 검열의 금지 원칙은, 우리의 근대 이성과 표현의 자유의 핵심에 놓여 있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언론중재법 개정을 시도하면서 열람차단청구권이 논란이 됐다. 피해구제를 위한 것이더라도 언론 보도의 열람 차단이 정치인 등에 의해 자의적으로 적용될 우려가 있기에 당시에도 언론계는 강하게 반대하였으며, 당시 야당이었던 국민의힘이 이를 얼마나 강력하게 비난했는지는 간단한 검색만으로도 충분히 확인해볼 수 있다.

하물며 당시 언론중재법의 열람차단청구권은 현재 방통위가 밝힌 패스트트랙 같은 즉각성을 갖는 임시 조치가 아니라 사후적인 피해구제 수준이었지만, 언론계도 그리고 당시 야당도 그렇게 반대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방심위를 통해 하겠다는 패스트트랙은, 임의적이고 즉각적이라는 점에서 문재인 정부의 열람차단청구권보다 훨씬 더 심각하게 사전 억제의 성격을 띠고 있다.

 

현 정부가 처음 출범할 때부터 ‘좋아! 빠르게 가!’ 정신을 갖고 있다는 것을 몰랐던 바는 아니다. 다만 요즘 들어 더 분명하게 알게 된 것은, 그렇게 빠르게 달려가고 있는 목적지가 미래가 아니라 ‘엠비(MB) 시절’과 같은 해묵은 옛날이라는 것이다.

 

10여년 전 그때 방송 뉴스에서는, 선거를 코앞에 두고도 선거는 뒷전이고, 아스팔트에 계란을 던져놓으며 날씨가 덥다는 소식을 첫번째 헤드라인으로 다루곤 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패스트트랙을 타고 우린 또 그곳으로 그렇게 ‘좋아! 빠르게’ 가려나 보다.

 

 

 

홍원식 | 동덕여대 ARETE 교양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