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총장처럼 국가를 운영한 대가
윤석열 정부는 ‘사상 최초’ 챔피언이다.
분량의 한계상 경제 분야에 국한해서 말하면, 물가는 오르는데 임금은 제자리라, 실질임금이 2년 연속(2022~2023년) 줄어든 것도, 외환위기 당시조차 늘렸던 연구개발(R&D) 예산을 삭감한 것도 사상 최초다.
56조4천억원이라는 막대한 세수 펑크를 낸 것도, 외환위기·금융위기 같은 외부 충격이 없는 상태에서 1%대 경제성장률(2023년 1.4%)을 기록한 것도 처음이다.
이 모든 ‘사상 최초’와 직간접적인 연관이 있는 것이, 부자감세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기이한 집착이다. 정부 출범 1년여 만에 89조원(나라살림연구소 6년치 추정 집계)의 세금을 깎아주는 감세를 단행한 데 이어, 그 이후로도 수십가지의 감세 방안을 쏟아내고 있는데, 이런 대통령은 대한민국 유사 이래 처음이다.
임기 5년 동안 63조원의 감세를 한 이명박 정부는 윤석열 정부에 비하면 귀여운 수준이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로 실물경제와 이론 양쪽에서 모두 파탄이 난 신자유주의적 감세 방안을, 윤 대통령이 취임 첫해에 들고나왔을 때, 다수의 국민이 별말 않고 지켜본 것은 일단 기회를 주자는 차원이었을 것이다.
지난 2년은 윤석열노믹스의 시간이었다. 그리고 국민은 다시 한번 확인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말을 빌려 말하면, “낙수효과는 결코 작동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이념을 앞세워 경제를 운용하면서, 철 지난 신자유주의 이론이라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에 맞춰 현실의 다리를 잘라낸 결과를. 책을 읽지 않는 사람보다 책을 한권(밀턴 프리드먼의 ‘선택할 자유’)만 읽은 사람이 훨씬 위험하다는 것을.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고 실망이 분노로 응축되기에 2년은 충분한 시간이다. 이른바 ‘대파 사건’은 우연히 발생한 것이 아니다. 차곡차곡 억눌러왔던 실망과 분노가 허술하게 연출된 기만적인 촌극을 계기로 일시에 터져 나온 것이다. 이제 전 정권을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윤석열 정부는 물가를 우습게 봤다.
주가지수가 몇달째 사상 최고치를 갈아 치우며 호황을 누리고 있는 미국과 일본의 대통령과 총리가 인기 없는 이유도 바로 높은 물가 때문이다. 현직 디스카운트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게 경제와 물가다.
하물며 경제성장률(2023년)은 미국(2.5%)과 일본(2.0%)보다 낮은데, 물가상승률은 더 높은 한국은 말할 필요도 없다. 대통령이 인기가 있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정부여당이 물가보다 더 우습게 본 것은 국민이다.
민생토론회라는 이름을 빌려 감세와 개발 정책을 쏟아내면 국민이 넘어올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국민은 바보가 아니다. 재원 마련 방안도 없는 말풍선에 넘어갈 만큼 순진하지 않다. 이렇게 퍼주다간 정말 나라 거덜 나는 것 아닌가 걱정할 만큼 충분히 이성적이다.
지난해 10월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 이후, 정부와 여당이 작심하고 쏟아낸 공약들(김포 서울 편입부터 한국형 아우토반까지)은 무려 350여건에 총사업비가 900조원에 이르는데, 오히려 그 무지막지한 양 때문에 진정성을 의심받았다. 선거가 급하니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남발하고 있다고 날 선 민심은 간파했다.
‘대파 사건’은 검찰식 상명하복을 요구한 결과 참모는 사라지고 비서만 남은 내각과 대통령실이 초래한 ‘셀프 재앙’이다. 윤 대통령 스스로 놓은 덫이다.
대통령 심기 보좌를 위해 엄선한 동선에 875원짜리 대파를 배치했고, “합리적 가격”이라는 물색없는 한마디가 민생 이슈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었다.
사람들이 화를 내는 건 물가 자체보다도 이 사태를 대하는 정부 여당의 자세다. 한 단이 아니라 한 뿌리 가격을 말한 거라는 한 총선 후보의 아부성 변명은, ‘바이든-날리면’을 연상시키며 불난 민심에 기름을 부었다.
대통령 1인을 위한 혹세무민이 이 정권의 본질이라는 걸 다수의 국민이 알게 됐다.
이태원 참사와 채 상병 사망 사고를 은폐하고 축소하려 했던 정부 여당의 면피 습관은 대파 사건에서도 여지없이 관철된다.
윤 대통령은 적잖이 당황스러울 것이다. 서초동에선 이러지 않았는데 왜 내 뜻대로 되지 않는지 의아할 것이다. 피의자의 약점을 틀어쥐고 유리한 정보만 선택적으로 흘려 여론을 좌지우지했던 그 시절이 그리울 것이다.
검찰에서의 성공이라는 승자의 저주가 윤 대통령의 최대 약점이다.
그는 아직도 정치와 수사의 차이를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남은 3년 동안 또 어떤 최악의 ‘사상 최초’가 기다리고 있을지 두려울 뿐이다.
이재성|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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