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검도 소통도 ‘마이 웨이’, 기자회견 왜 열었나
윤석열 대통령이 9일 취임 뒤 두번째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과 김건희 여사가 관련된 사건 수사와 특검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김 여사 명품백 수수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에 대해선 특별한 언급이 없었다.
그러나 ‘김건희 주가조작 의혹 특검’에 대해선 “정치공세”라며 거부 의사를 밝혔다.
지난 2일 국회를 통과한 ‘해병대 채 상병 순직 사건 수사 방해 의혹 특검법안’에 대해서도 “경찰과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수사를 지켜보는 것이 옳다”며 거부권 행사를 기정사실화했다.
두 사건 다 특검 찬성 여론이 70% 안팎에 이른다. 이미 총선 참패로 유례없는 민심의 경고장을 받아들고도, 한치 변화 없이 대다수 민심의 요구에 귀 닫은 채 특검 거부만 되뇐 것이다.
많은 국민은 윤 대통령이 이번 회견을 통해, 자신과 부인의 사적 이해보다 공정과 상식을 앞세우는 국가지도자로서의 책임감을 보여주기를 기대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끝내 자신과 부인의 안위만을 생각한 윤 대통령의 행보가 참으로 실망스럽다.
윤 대통령은 ‘주가조작 특검’에 대해 “지난 정부에서 사실상 저를 타깃으로 검찰에서 치열하게 수사했다. 지난 정부에서 저와 제 가족을 봐주기 수사 했다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반대론을 폈다.
그러나 현 정부 검찰 또한 2년이 지나도록 김 여사 조사조차 뭉개고 있다는 사실은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김 여사에게 아무런 혐의가 없다면 불기소 처분을 하면 된다. 그런데도 지금껏 검찰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특검 필요성을 역설적으로 말해주는 것 아닌가.
이런 상식적 판단을 무시하고 거부권을 남용했기에, 국민 신뢰를 잃고 총선에서 참패한 것이다.
채 상병 사건 또한 공수처만 바라보며 시간을 흘려보낼 수 없다는 데 국민적 공감대가 이뤄진 사안이다. 공수처가 일부 성과를 내고 있지만, 대통령실이 관여된 권력형 게이트 의혹을 신속히 수사하기엔 역부족인 것도 사실이다.
수사는 공수처가 하더라도 기소권은 검찰이 갖고 있다.
이 정부 검찰이 받는 불신을 생각하면, 결국 특검에 맡겨야 국민이 결과를 납득할 것이다.
윤 대통령은 해병대수사단의 수사 결과에 대해 국방부 장관을 질책했는지를 묻는 질문에, 엉뚱하게 ‘채 상병 사망 직후 왜 무리한 구조작전을 폈느냐는 질책을 했다’고 답했다.
불통을 넘어 국민을 기만하려 한 것 아닌가.
이처럼 책임을 회피하고 일방적 주장만 반복하려고 1년9개월 만에 기자회견을 연 것인지 의아할 따름이다.
[ 2024. 5. 10 한겨레 사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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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 95분에서 확인된 네 가지, 이건 비극이다
[취임 2주년 기자회견 관전평] '권위주의·사대주의·보복·잘못된 전문가 중심주의'
애초 기대하지도 않았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1년 9개월, 무려 631일 만에 기자회견을 한다고 했을 때부터 큰 기삿거리가 없을 거라고 봤습니다. 국정 기조의 변화는 꿈도 꾸지 않는 게 좋을 거로 생각했습니다.
4·10 총선 대패 이후 윤 대통령이 해온 언행을 보고 그렇게 판단했습니다. 총선 참패 엿새 만에 나온 국무회의 머리 발언, 구태 정치인 정진석 비서실장의 발탁,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수뇌회담 내용을 시간순으로 살펴보니 기자회견에서 무슨 말을 할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역시 9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윤 대통령은, '국정 방향은 옳았는데 소통에 문제가 있었다'라는 기존의 주장을 되풀이했습니다. 약간의 변조를 가하긴 했지만, 변명과 불통의 큰 흐름에 전혀 변화가 없었습니다.
따분하고 지루할 것이라고 예상하면서도 22분의 대국민 보고와 73분의 질의응답을 인내심을 가지고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봤습니다. 모두 95분에 걸친 '윤석열 정부 출범 2주년 국민보고 및 기자회견' 행사를 지켜보면서 윤 대통령과 윤 정권을 관통하는 특성을 더욱 뚜렷하게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권위주의와 사대주의, 전문가 중시와 보복이 그것입니다. 기자회견을 통해 발견한 '윤 정권을 규정하는 코드'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여하튼 저로선 이런 발견이 '망외의 소득'이었습니다.
먼저 권위주의입니다. 윤 대통령은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하기에 앞서 집무실에서 국민보고라는 이름으로 22분 동안 연설했습니다. 국무회의 모두 발언과 거의 비슷한 내용입니다. 그나마 국민의 대표라도 앞에 앉혀 놓고 했다면 모르겠으나 화면을 앞에 둔 일방적인 독백이었습니다. 그것도 자리에 떡 앉아서 말입니다.
권위주의와 사대주의
출입 기자들 앞에서 머리 발언으로 하는 게 더욱 자연스러웠을 법한 일을 굳이 분리해 집무실 연설 형식으로 만든 것은 권위주의를 빼놓고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그런 모습에서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대통령인 나 한 사람뿐'이라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인상을 받았다면 저의 과민한 반응일까요. 어쨌든 국민 보고와 기자회견을 분리한 것은, 국민의 알권리를 대표하는 기자의 자격과 권위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도를 강하게 풍겨 줬습니다.
둘째, 사대주의입니다. 기자회견은 정치, 외교, 경제, 사회 네 분야로 나눠 진행됐습니다. 이중 추가 질문까지 합쳐 정치가 9개, 외교 4개, 경제 4개, 사회 3개 등 모두 20개의 질문이 나왔습니다. 여기서 외교 분야 4개 질문은 모두 외국의 외신기자들이 독차지했습니다. 아니 작정하고 외신에만 질문권을 줬습니다. <로이터통신>(영국)과 <에이에프피통신>(프랑스), <닛케이신문>(일본)과 <비비시>(영국)입니다.
이전 정권에서도 외신기자에 질문권을 주곤 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처럼 외교 분야 질문에서 한국 기자를 완전히 배제한 적은 없습니다. 외교는 다른 나라의 관심사이기에 앞서 외교를 행하는 당사국 국민의 큰 관심사입니다. 외신이 아무리 한국의 외교정책에 관심이 크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관심은 한국과 한국 사람이 생각하는 국익과 거리가 있습니다. 내부의 시선보다 외부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고 우대하는 사대주의가 아니고서는, 이날 같은 외신 칙사 대접은 일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여기에 윤 대통령이 집무실 앉아 국민 보고를 할 때 내내 카메라에 비친 'The BUCK STOPS HERE!'(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라는 문구가 적힌 탁상용 패까지 더하니 얼굴이 더욱 뜨거워졌습니다.
이 명패는 미국 33대 대통령 해리 트루먼이 재임 중 자기 집무실 책상 위에 놓아뒀던 패를 본뜬 것으로, 조 바이든 대통령이 2022년 5월 방한했을 때 윤 대통령에게 선물한 것입니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도 알기 어려운 한국 사람들에게 이 명패를 그렇게도 과시하고 싶었던 심리는 무엇일까요. 외신기자에만 외교 분야 질문권을 독점적으로 준 태도와 다를 바가 없다고 봅니다.
MBC 질문권 배제, 보복이었나
셋째, 보복입니다. 20개의 질문이 나왔고 한 기자가 한 개의 질문을 했으니, 모두 20명이 질문에 나선 셈입니다. 그런데 가장 눈길을 끈 것은, <문화방송> 기자가 끝내 20명에서 배제된 일입니다. 지상파 방송 3사 중에서도 문화방송만 쏙 빠졌습니다.
잘 알다시피 문화방송은 윤 정권과 악연이 매우 깊습니다. '바이든-날리면' 파동을 비롯해 4·10 총선 보도까지 윤 정권은 집권 이후 사사건건 문화방송을 노골적으로 탄압하고 적대시해 왔습니다. 그렇지만 문화방송은 한국에서 시청률뿐 아니라 공정성과 신뢰성 등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는 가장 유력한 매체입니다. 윤 대통령이 문화방송에 질문권을 주지 말라고 명시적으로 지시하지는 않았겠지만, 문화방송 기자의 질문 배제를 보면서 '치졸한 보복'이 계속되고 있다는 의심을 거둘 수 없었습니다.
또 20명의 질문자 중에 단 하나의 지역신문 기자가 간택됐습니다. 바로 대구의 <영남일보>입니다. 이 또한 윤 정권에 대한 지지가 가장 강한 지역에 대한 배려가 작용했다고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보복과 시혜는 동전의 양면이라는 점에서, 매우 상징적인 장면이었습니다.
넷째, 전문가 중심의 편협한 사고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경제 분야에서는 세 개의 질문이 나왔는데, 질문권을 모두 <매일경제> <한국경제> <서울경제> 등 경제 전문지에 주었습니다. 외교 분야를 외신기자에만 질문권을 준 것과 흐름을 같이하는 것 같지만, 다른 면이 있습니다. 경제지이기 때문에 경제 문제에 해박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경제지에 경제 관련 질문을 몰아줬을지 모르겠으나 이런 태도는 피상적이고 나쁜 전문가 중심주의에 불과합니다.
한국 경제 전문지들의 기사를 보면, 국민경제와 생활경제, 즉 민생보다는 대기업과 부자들의 관심사에 치중한 보도가 대부분입니다. 세 경제지 기자가 이날 질문한 내용들이, 과연 한국 경제가 당면한 가장 시급한 경제 현안들이었는지 살펴보면 금세 알 수 있을 겁니다. 더구나 이들은 일본 정부의 네이버 라인 약탈 시도와 같이, 지금 전 국민이 공분하는 문제도 거론하지 않았습니다.
윤 대통령은 국민 보고에서 저출생 대책으로 저출생대응기획부를 신설하겠다는 방침을 밝혔습니다. 과연 이 부처가 만들어질지 말지 알 수 없으나,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새로운 기구를 만들자는 이런 식의 대책도 '나쁜' 전문가 중심 사고의 전형입니다. 문제의 원인을 종합적으로 파악해 적확하게 대처하는 능력을 기르기보다는 쉽게 새로운 기구를 만드는 방식은 관료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확대하기 위해 가장 잘 쓰는 수법입니다. 저출생 문제는 이 문제를 다룰 전문적인 기구가 없어서가 아니라, 저출생 대책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사업에 나랏돈을 낭비해 온 관료들의 무책임 행정 때문에 악화된 것인데도 말입니다.
국민 관심사 대변하지 못한 기자들
마지막으로, 이날 기자회견에 임한 기자들의 태도를 비판하지 않고 넘어가기 어렵습니다. 대통령과 기자회견을 하는 기자들은, 지금 이 시점에서 국민이 가장 알고 싶고 묻고 싶은 질문을 대신해 줘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기자들은 이날 회견에서 이런 국민의 관심과 요구를 전혀 대변해 주지 못했습니다. 쉽게 말해, 이재명 대표가 4월 29일 윤 대통령과 한 회담에서 제기한 문제 수준에도 한참 못 미쳤습니다.
윤 정권의 비리를 집대성한 이른바 '이채양명주'에 대해서도 극히 일부 사안만 스쳐 지나가듯이 물었을 뿐입니다. 가장 뜨거운 감자인 '해병대 채 상병 특검'은 대통령의 진노와 대통령실의 관여가 핵심인데도, 추궁은커녕 변죽도 울리지 못했습니다.
가장 슬픈 일은 기자들 자신의 문제인 언론 탄압 문제를 전혀 거론하지도 않은 것입니다. 바로 며칠 전 국경없는기자회가 2023년도 윤석열 정권의 언론자유지수가 무려 15단계나 하락했다고 발표했는데도 기자들은 자신의 입을 틀어막는 정권에 어떤 문제 제기도 하지 않았습니다. 처음부터 그럴 마음을 먹지도 않았던 것 같았습니다. '법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라는 격언이 있듯이 언론자유 위에 잠자는 기자는 보호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이날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이 몸소 똑똑하게 보여줬습니다.
오태규(oht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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