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압과 항명, 10년 만의 데자뷔
* 왼쪽부터 박정훈 대령, 김계환 사령관, 임성근 사단장, 이종섭 국방장관, 유재은 법무관리관, 이시원 공직기강비서관, 윤석열 대통령. 김재욱 화백
2023년 7월19일 경북 예천에서 수색 임무 중이던 채아무개 해병이 급류에 휩쓸려 순직한 지 거의 10개월이 되었다. 그런데도 사건의 사고 경위나 책임 소재 등은 아직 뚜렷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이 사건 초동 조사를 담당한 해병대 전 수사단장 박정훈 대령은,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 등을 거쳐 7월30일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에게 조사 결과를 보고했다. 그 요지는 사건 당시 지휘관인 해병대 전 1사단장 임성근 소장 등 8명에게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가 있다는 것이었다. 국방부 장관은 이 보고를 받고 그대로 결재했다.
그에 따라 군 사망 사건의 경우 민간 경찰이 수사하도록 개정된 군사법원법에 따라, 이 사건은 즉시 민간 경찰에 이첩되어야 했다. 그랬더라면 종국적으로 채 해병 사망 원인이 규명되고 책임자들은 의법 처리되었을지 모른다.
그런데 뜻밖에도 박 대령이 2023년 8월11일 채 해병 조사에 외압이 있었다는 폭로를 하였다. 그는 국방부 장관이 결재했는데도 유재은 법무관리관이 여러차례 전화를 걸어 보고서 내용을 고치라는 등 압력을 가했고, 국가안보실에서도 조사 자료를 보내달라는 등 월권이 있었다고 했다.
또 윤석열 대통령이 7월31일 대통령 주관 회의에서 ‘해병대 1사단 익사 사고 조사 결과 사단장 등 8명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경찰에 이첩할 예정이다’라는 보고를 받자, 격노하면서 ‘이런 일로 사단장까지 처벌하게 되면 대한민국에서 누가 사단장을 할 수 있겠느냐?’고 질책했다고 한다. 이때부터 대통령실과 국방부 등 여러곳에서 조사 결과를 바꾸려는 외압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박 대령은 이와 같은 외압에도 불구하고 8월2일 경북경찰청에 사건 조사 기록을 이첩했다. 그러나 그 기록은 당일 저녁 7시20분 국방부 조사단이 회수하였으며, 이후 국방부 조사단은 책임자를 대대장 2명으로 축소한 보고서를 작성하여 경찰에 재이첩하였다.
박 대령은 보직 해임되었고, 10월6일 김 사령관에 대한 항명죄 등으로 기소되어, 현재 군사법원에서 재판 중이다.
박 대령에 대한 공소사실의 핵심은 김 사령관의 명령을 어기고 조사 기록을 경북경찰청에 이첩하였다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는 김 사령관과 해병대 중앙수사대장 사이에 오고 간 8월2일 오후의 대화 내용이 남아 있다. 그중 일부를 옮기면, 당시 김 사령관은 중수대장에게 이렇게 말했다.
“어차피 우리는 진실되게 했기 때문에 (…) 잘못된 건 없어. 정훈이가 답답해서 그렇게 했지.”
이에 중수대장은 “법무관리관이 막 전화하고 (…) 대장 옆에서 다 들었습니다. (…) 이게 너무 외압이고 위법한 지시를 하고 있다고 다들 느끼면서”라고 외압 상황을 보고하였다.
그러자 김 사령관은 “그러면 결국 (…) 본인이 책임을 지겠다는 거 아니야. 이게 하다 안 되면 내 지시 사항을 위반한 거로 갈 수밖에 없을 거야. (…) 진정으로 원칙과 공정으로, 원칙대로 다 했으니까 기다려보자. (…) 이제 우리는 거짓 없이 했으니까 됐어. (…) 무거운 짐 다 지고 가지.”
이 짧은 대화 내용 속에 당시의 외압 정황 및 그에 대처하는 해병대 사령관과 중수대장의 고뇌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적어도 박 대령은 이첩 과정에서 상관의 명령을 어긴 바가 없고, 시종 공정하고 진실하게 직무를 수행했다고 읽힌다.
한편 임 전 사단장 등에게 책임이 있다고 본 박 대령의 초동 보고는 신뢰할 만한가.
보도에 의하면, 임 전 사단장은 자신이 직접 병사들에게 물에 들어가라고 지시한 바가 없고, 채 해병 사망의 원인은 결국 안전에 부주의했던 현장 부대원들의 책임이라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과연 그런가.
지금까지 드러난 바로는, 7월18일 실종자 수색 작전에 임한 그가 한 지시 내용은, 병사들의 복장 통일, 경례 철저, 언론에 대한 공보 관리 등 안전과는 무관한 내용이었다.
특히 사고 당일인 19일에는 현장에 없었으나, 채 해병 실종 2시간 전인 아침 7시5분께 사단 공보실장으로부터 카톡으로 위험한 상황에서 병사들이 물에 들어가 실종자 수색 활동을 하는 모습을 직접 보고받은 사실이 확인된다. 하지만 이때도 공보 활동에만 관심이 있었을 뿐, 구명조끼나 로프 등 안전 장비 구비 지시 등을 하지 않았다.
이런 사실에 비추어, 책임이 없다는 그의 주장은 설득력이 약하게 들린다. 요컨대 박 대령의 초동 조사에 과실에 관한 법리 문제가 있어 보이지 않는다. 그렇기에 김 사령관도 지난해 7월30일 해군참모총장에게 조사 결과를 보고하면서, ‘임 사단장에게 과실치사 혐의가 있다’고 하였고, 임 사단장의 후임 후보군까지 추려 보고한 것이 아닌가 한다.
2024년 5월2일 채 해병 사건 특검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대통령실 등의 외압과 지휘관의 과실 유무가 쟁점인 이 사건은, 현재 경북경찰청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서 수사 중이다. 그러나 경찰 수사는 진전이 없고, 인력 부족을 호소하는 공수처는 겨우 1개 부서에서 이 사건을 담당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기소권이 없어 추후 검찰로 사건이 이관된다고 하여도 언제 종결될지 전망하기 어렵다. 또 7월로 보존 기간이 끝나는 통신 기록 확보를 위해서도 특검이 필요하다.
윤 대통령은 ‘항명파동’으로 알려진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으로, 2013년 10월21일 국회 서울고검 국정감사장에서 증언한 일이 있다. 그는 거기서 검찰 수뇌부의 외압이 있었다는 폭로를 하였다. 국회 증언 뒤 윤 검사는 법무부에서 정직 1개월의 징계를 받았다.
그로부터 10년여가 지난 오늘날 그가 박 대령을 어떤 심정으로 보고 있을지 궁금하다.
사건 내용은 달라도 외압이나 항명의 점에서는 거의 닮은꼴인 이 사건에서, 박 대령의 결연한 자세에 자신의 모습이 혹 겹쳐져 보이지는 않을까.
5월2일 한국리서치 등 4개 여론조사기관이 한 ‘전국지표조사’에 따르면, 채 해병 특검 21대 국회 처리에 대한 의견은 찬성 67%, 반대 19%로 조사됐다. 70대 이상에서도 찬성이 46%로 높았고(반대 30%), 대구·경북 거주 주민도 찬성이 64%로 높았으며(반대 24%), 지지 정당이 ‘국민의힘’인 경우에도 찬성이 44%로 높았다(반대 39%).
이 자료로 국민의 의사는 명백하게 드러났다.
이렇게 온 국민의 의사가 하나로 모인 때가 언제 또 있었던가.
이석태 | 전 헌법재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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