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를 잡아야 나라가 산다
세계 각국이 앞다투어 저렴한 전기 생산과 전력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미국의 트럼프는 “미국을 가장 저렴한 전기요금을 갖는 나라로 만들겠다”고 공약하고 나섰고, 중국은 재생에너지 설비 확충에 국가의 역량을 총동원하고 있다. 중동 산유국들도 태양광과 수소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빅테크 기업들의 상황도 마찬가지이다. 재생에너지 사용을 자랑하며 탄소중립을 전세계에서 가장 빨리 달성하겠다고 4년 전 호언장담했던 구글의 탄소배출량은 전기 생산으로 인해 오히려 지난해 50% 가까이 폭증했으며, 아마존은 원자력 발전소 옆 데이터센터를 사들이며 부족한 전기를 해결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전 세계가 갑자기 전기 확보에 혈안이 된 상황은 불과 1년 전 챗지피티(GPT)가 세상에 등장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인공지능을 훈련시키고 데이터를 처리하는데 쓰는 전력량이 폭증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인공지능이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 있는 시대가 열렸다.
문제는 전기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핵심 기술인 인공지능(AI)과 반도체, 전기차 등 미래 산업의 성패가 모두 전기에 달려 있다. 값싼 전기를 확보한 국가만이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가 “가까운 미래에 인류는 극심한 전기 부족에 시달릴 것”이라고 예견한 말은 의미심장하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상황이다.
에너지 자원이 전무한 우리나라는 그동안 값비싼 수입 에너지로 제조업 경쟁력을 유지해왔다. 하지만 에너지 부국들이 저렴한 전기를 무기로 제조업에 뛰어들면서 우리의 입지는 크게 좁아지고 있어, 이대로 가다가는 우리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설 자리를 잃을 수 있다. 반도체와 배터리, 전기차 등 우리의 주력 산업이 모두 전기 다소비 업종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값비싼 전기로는 이들 산업에서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명확하다. 모든 수단을 동원해 값싸고 안정적인 전기를 확보해야 한다. 원자력이냐 재생에너지냐를 놓고 이념 논쟁을 벌일 때가 아니다. 원전은 최대한 안전하게 값싼 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데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가장 선결해야 할 문제는 역시 곧 포화 상태가 될 방사성 폐기물 처분시설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원전에 대한민국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맡기기에는 너무나 위험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꼴찌 수준의 재생에너지 보급량을 빠르게 늘려나가는 데 온 힘을 쏟아야 한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늘리는 것은 정답이 아니다. 분산에너지 특별법에 근거하여 지역의 많은 재생에너지 거점들을 확보하고, 이들 지역을 중심으로 전기를 많이 사용하는 기업들의 지역 이전을 세제 혜택 등을 통해 정부가 장려해야 한다. 이를 통해 분산에너지 생산과 소비의 선순환을 촉진해 나가야 한다.
수소연료전지 등 신기술 개발에도 박차를 가해야 한다.
아울러 송전망 등 전력 인프라 확충은 기본이다.
전기는 21세기 국가 존립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다. 값싼 전기를 확보하지 못하면 우리 경제의 미래는 없다. 정부와 기업, 국민 모두가 전기 확보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탈원전이냐 원전 확대냐를 두고 갈등할 게 아니라, 모든 에너지원을 총동원해 값싸고 질 좋은 전기 생산을 늘려야 한다. 그것만이 우리 경제와 산업의 활로를 열 수 있는 길이다.
전기를 제대로 잡지 못하면 우리나라의 미래는 없다. 지금 당장 범국가적 역량을 모아 값싸고 풍부한 전기 확보에 주력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 경제를 살리고 지역을 살리고 젊은 세대들에게 희망을 주는 길이다.
김백민 | 부경대 환경대기과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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