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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0만 주식투자자가 ‘호구’로 보이나?

道雨 2024. 7. 12. 11:05

1400만 주식투자자가 ‘호구’로 보이나?

 

 

 

“상법 개정 땐…30대 기업 중 29곳의 이사회, 외국 투기자본에 뚫릴 수도”

 

2020년 9월 <조선일보>의 상법 개정에 반대하는 기사 제목이다.

 

당시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법개정을 추진했다. 경영진을 감시·견제하는 감사위원의 독립성을 높이기 위해, 최소 1명 이상을 다른 사외이사와 분리선출하고, 최대주주(특수관계인 포함)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내용이었다.

재계와 보수언론은 외국 투기자본에 의한 기업 경영권 침해가 우려된다며 격하게 반발했다.

 

 

이런 반대를 뚫고 법개정이 이뤄진지, 4년이 흘렀다.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우려한 일이 벌어졌다는 얘기를 들은 바 없다. 애초부터 수많은 외국 투자자가 하나로 뭉쳐 지배주주와 표대결을 벌인다는 가정 자체가 비상식적이었다. 자본시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거나, 국민을 상대로 거짓선동을 했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최근 재계와 보수언론이 다시 상법개정 저지에 나섰다. 윤석열 정부는 고질적인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증시 저평가) 해소를 위한 투자자 보호 차원에서 법개정을 추진 중이다.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주주(이익)로 확대하는 내용이다. 한경협·상의 등 8개 경제단체는 법개정 반대 건의서를 정부·국회에 제출했다. 보수언론도 맞장구친다.

 

 

재계와 보수언론의 반대 논거는 일견 그럴듯하게 보인다. 하지만 4년 전과 마찬가지로, 사실과 다르거나 과장·왜곡으로 점철된 엉터리 주장에 불과하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다고 했으니, 가장 핵심적인 주장을 살펴보자.

 

“회사이익과 주주이익을 별개 개념으로 병렬적으로 규정한 해외 입법사례가 없다. 글로벌 스탠다드에 위배된다.”

 

이 주장은 ‘팩트’부터 틀렸다. 법제처 산하 세계법제정보센터 누리집 검색창에 ‘델라웨어주 회사법 102조’만 입력하면 바로 확인 가능하다. 회사법의 모범으로 불리는 미 델라웨어주 회사법은 주주에 대한 이사의 충실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이사의 충실의무에 주주이익을 포함하지 않는 국가들도 있다. 나라마다 법제도가 상이한 것은 환경이나 조건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상법개정 여부는 우리경제 현실에 대한 인식에 달렸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된 원인이 후진적 기업지배구조라는 데 이의를 다는 사람은 거의 없다. 또 그 중심에 지배주주의 이익을 위해 일반주주에 손해를 끼치는데도, 이사가 제대로 감시·견제 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는 데도 대부분 동의한다.

 

 

최근 한화에너지의 ㈜한화 지분 8% 공개매수를 둘러싼 논란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본질을 잘 보여준다. 공개매수의 목적은 총수 아들이 100% 지분을 가진 한화에너지를 통해 총수 아들→한화에너지→㈜한화→다른 계열사로 이어지는 경영권 승계구도를 완성하는 것이다.

소액주주들은 3만원의 공개매수 가격(4일 종가에서 8% 할증)이 낮다고 반발한다. 근본원인은 PBR(주가÷주당순자산)이 0.28%에 불과할 정도로 주가가 저평가된 점이다.

승계작업을 위해 주가를 의도적으로 낮게 관리했다는 주장이 맞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게 있다. 지배주주로서는 총주주수익률(주가상승률+배당금수익률)을 높일 유인이 작고, 이사회가 전체 주주보다 지배주주의 이익에 더 충실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이런 터에 재계가 지배주주를 위한 경영권 보호장치 강화를 요구하는 것은 더욱 기가 찰 일이다.

재벌 총수일가는 지금도 절대권한을 행사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지배주주 보유주식에 1주당 여러개의 의결권을 부여하는 ‘복수의결권’이나, 적대적 인수합병 직면 시 기존주주가 싼값에 지분을 인수할 수 있는 ‘포이즌필’까지 허용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총수의 지배권은 더욱 철옹성이 되고, 지배주주의 이익을 위해 일반주주의 이익을 훼손할 잠재적 위험성은 더 커질 것이다.

 

재계와 보수언론의 상법개정 반대는 성공했다.

정부는 최근 ‘기업밸류업’ 지원대책에서 상법개정을 쏙 빼버렸다. 대신 상속·증여세 할증평가 폐지 등 지배주주 부담을 낮추는 방안을 포함시켰다.

대통령이 연초부터 직접 불을 지피고, 부총리와 금감원장까지 공개적으로 추진 의지를 밝힌 사안이 이렇게 흐지부지되다니, 할 말을 잃게 한다.

세수부족 심화와 부자감세 논란은 차지하더라도, 정말 국민을 우롱하자는 것인지 묻고 싶다.

 

코로나19 이후 개인투자자가 급증하며, 전체 유권자의 3분의 1에 육박한다. 동학농민운동에 빗대어 ‘동학개미’로 불리는 이들의 정치적 힘이 밸류업 정책을 이끌어낸 원동력이다.

 

경고한다.

재계와 보수언론, 정부여당이 1400만 주식투자자를 계속 ‘호구’로 취급하다가는 큰 코 다칠 것이라고.

 

상법 개정에 찬성하는 민주당도 말로만 민생을 외치지 말고, 더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야 한다.

문재인 정부 때 여당으로서 상법 개정안까지 발의하고도 뭐했느냐는 지적이 뼈아프지 않은가.

 

 

 

곽정수 |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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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현이 띄운 상법 개정 패키지…‘이사 충실의무’ 허수아비 만들라

 

민사 구제 수단 부족한데 배임죄 폐지·축소 섣불러
지배주주 권한 남용 견제할 민사적 수단 강화해야

 

 

정부가 추진중인 이사 충실의무 대상을 주주로 확대하는 내용의 상법 개정을, 배임죄 폐지 등과 함께 묶어 추진해야 한다는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주장을 둘러싸고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지배주주의 권한 남용을 견제할 민사적 수단이 미비한 한국 현실에선, 이 같은 ‘패키지 딜’이 되려 망루탄주(성긴 그물로 배가 지나간다는 뜻) 격으로 상법 개정 취지를 무색하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 원장이 지난 14일 제안한 상법 개정 패키지 딜의 요지는, 이사의 충실의무와 책임을 회사뿐 아니라 주주를 포함하도록 명시하되, 그로 인한 민·형사상 처벌 가능성을 없애거나 줄여주겠다는 것이다.

현재 상법 382조3에선 이사가 “회사를 위하여” 일한다고 돼 있는데, 여기에 “주주의 비례적 이익” 등 문구를 추가하는 게 뼈대다. 지배주주의 사적 이익을 위해 일반주주에게 손해를 입히는 결정을 이사회가 내리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재계는 이 같은 개정이 이뤄지면, 주주 손해를 이유로 이사가 업무상 배임죄로 기소당하거나, 손배소가 무더기로 제기될까 우려한다. 그러자 이 원장이 꺼내든 카드가 배임죄 폐지다. 이 원장은 ‘민사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경영 판단에 따른 분쟁이 형사 처벌 대상이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이 같이 제안했다.

형사적 책임 뿐 아니라 민사적 책임 대해서도 면책 조항을 제시했다. 지배주주와 일반주주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상황에서 일반주주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독립된 전문가 의견을 구하거나 △이사회가 최선의 노력을 다했거나 △주식매수청구권 부여 등 충분한 이해관계 조정 노력을 거쳤다면, 민·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는 ‘경영판단의 원칙’을 법에 명문화하는 것도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 원장의 진단에는 동의하면서도, 해법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한다. 미국 등 선진국과 달리 이사 행위로 손해 본 일반주주가 이를 민사적으로 해결할 수단이 한국은 아직 미비하기 때문에, 배임죄 폐지·축소는 섣부르다는 것이다.

 

이상훈 경북대 로스쿨 교수는 “우리나라는 민사가 시간도 오래 걸리고 비용 보전도 쉽지 않은 데다가, 디스커버리제도(회사가 독점한 정보를 원고와 공유하도록 강제하는 제도)가 없어 원고가 손해 입증하기가 어려운데, 입증 책임 전환도 잘 안 되다보니 배임죄에 과도하게 의존해왔던 게 사실”이라며 “증거 수집 기능이 있는 검찰이 발휘하던 강력한 억제 효과가 있는데, 배임죄를 없애려면 민사 절차를 획기적으로 강화하는 별도 대안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했다.

배임죄 폐지 등 형사적 규율을 없애는 것보다 민사 구제 방안을 확대·강화하는 게 우선이라는 얘기다.

 

손해의 입증에 따라 승패가 결정되는 본안 소송 말고, 화해·조정 등 중재에 기반한 분쟁 해결 제도가 활성화되어야 한다는 제안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상법 전문 교수는 “선진국에서는 소송 전 합의를 통한 자체적 시정이나 재판 중 화해 등을 통해서도 주주 이익이 보호되는 데, 한국은 판결을 통해 이사 개인이 사적 배상을 하는 경우가 대다수인 점도 기업이 남소 우려를 제기하는 배경”이라며 “화해 등을 통한 분쟁 해결도 활성화될 필요가 있다”고도 강조했다.

 

 

이 가운데 이 원장이 제시한 경영판단의 원칙까지 명문화될 경우, 민사적 구제 수단이 퇴행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경영판단의 원칙이 규정하는 절차적 요건으로만 주주에 대한 이사의 충실의무 이행 여부를 판단하기 때문에, 자칫 상법 개정 자체를 무력화할 수 있는 셈이다.

 

천준범 변호사는 “절차를 장악한 지배주주가 이런 규정을 이용해 오히려 면죄부를 얻게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상훈 교수는 “구체적 면책 요건을 규정하는 건 불확실성 해소 차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면서도 “미국처럼 전원 독립된 이사로 구성된 위원회의 승인과 비지배주주 과반의 동의를 구하는 등 엄격한 절차적 요건을 명문화하는 게 아니라면, 지배주주의 이해상충 거래에 대하여 실효성 있는 주주 이익 보호가 이뤄질 거라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남지현 기자 southj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