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1만원이 '패닉'이라는 양심불량 언론들
"편의점주 허리 휜다" "곡소리" "악영향" "패닉"
최저임금에도 고용원 있는 자영업자 증가 추세
자영업자 고통, 최저임금 아닌 임대료· 불황 탓
고물가로 1.7% 임금인상은 사실상 '임금삭감'
주류 언론들 사실왜곡하고 기업주 입장만 대변
내년도 최저임금이 시간당 1만30원으로 결정됐다. 올해 9860원에서 1.7%, 금액으로 170원 늘어나게 됐다. 하루 8시간씩 한달 20일 일하면 월급으로 160만4800원을 받게 된다. 올해보다 월 2만7200원 더 받는 셈이다.
언론은 이 소식을 어떻게 다뤘을까?
많은 언론들이 ‘최저임금 1만원 시대 열렸다’라고 큰 일이 난 것처럼 보도했는데, '그래서 환영할 일'이라는 투로 보이지는 않는다.
‘편의점 등 자영업자 허리가 휜다’ '자영업자 곡소리' ‘중소상공인 피해 우려’ ‘일자리에 악영향’ ‘경영에 부담 가중’ 이란 제목에서 보듯이 부정적인 측면을 강조하고 있다.
“정말 깜짝 놀랐죠...최저임금 1만원 돌파에 자영업자 패닉”(이데일리)이라는 선정적 제목의 기사도 보인다.
내년 최저임금 1.7%인상으로 자영업자·소상공인을 포함한 경영계가 큰 타격을 입을 것처럼 보도한 기사가 대부분이다.
노동계의 반발을 보도한 매체는 드물다. 노동계가 ‘사실상 임금삭감’이라며 반발하고 있다는 보도도, 경영계에서는 ‘불만’‘한숨’이라며 양쪽의 입장을 나란히 소개한 내용이다.
최저임금 1.7% 인상은 정말 우리 자영업자·소상공인에게 ‘패닉’일까?
최저임금이 너무 많이 올라 '허리가 휠 정도'여서 편의점 사장들과 자영업자들이 폐업하거나 직원을 해고해야할 만큼 부담을 주는 걸까?
최근 10년간 최저임금 인상률은 ▲2015년 7.1% ▲2016년 8.1% ▲2017년 7.3% ▲2018년 16.4% ▲2019년 10.9% ▲2020년 2.9% ▲2021년 1.5% ▲2022년 5.1% ▲2023년 5.0% ▲2024년 2.5%였다.
올해 결정한 내년 최저임금 인상률 1.7%는 최근 10년간 결정된 인상률 가운데 두 번째로 낮다. 인상률이 가장 낮았던 때는 2021년(1.5%)이었는데, 이때는 코로나 영향으로 자영업자·소상공인들이 최악의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였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5~17년엔 7~8%, 문재인 정부 때인 2018~19년엔 두자릿수 인상률이었다. 급격한 인상에 대한 거센 반발과 코로나 탓에 2020~21년 1~2%대로 인상률이 주저앉았다. 그러나 2022~24년 2.5~5% 역시 올해 1.7%보다는 훨씬 높다. 그런데 내년 1.7% 인상률 정도를 ‘패닉’이라고 한다면, 이보다 훨씬 인상률이 높았던 지난 10년 간 우리나라 대부분의 자영업자·소상공인들은 직원을 다 해고하고 1인 회사를 운영하거나 문을 닫았어야 한다.
자영업자들이 직원을 줄이거나 폐업하는 것이 최저임금 때문이라고 보기 힘든 통계가 있다. 최근 폐업이 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조금 자세히 보면 폐업이 늘고 있는 자영업자는 ‘고용원이 있는 자영업자’가 아니라 ‘고용원이 없는 자영업자’(사장 1인 자영업자)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올해 6월 ‘고용원이 있는 자영업자’는 143만5000명으로 전년보다 오히려 3만4000명 늘었다. 반대로 ‘고용원이 없는 자영업자’는 425만3000명으로 작년 같은 달보다 13만5000명(3%) 줄었다.
언론의 주장대로라면 최저임금 상승 부담으로 ‘고용원이 있는 자영업자’는 줄어들어야 할 텐데 오히려 늘었다. 반대로 최저임금 상승의 영향을 받지 않는 ‘고용원이 없는’ 자영업자는 줄었다. 고용원이 없는 자영업자, 즉 1인 자영업을 운영하던 '사장님들'이 높아진 최저임금을 받는 임금 노동자로 흡수되어 줄어들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백번 양보해서, 최저임금 상승이 자영업자·소상공인에게 부담을 준다고 치자. 그러면 그 부담은 다른 경영상의 어려움에 비교해 어느 정도인가? 폐업이나 직원해고에 결정적인 요인이 될 만큼 중대한 경영상 애로사항인가? 자영업자·소상공인 스스로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조사결과가 있다. 그들은 내수 불황과 부동산 거품으로 인한 임대료 부담에 가장 힘들어하고 있다.
지난해 7월 한경협(옛 전경련)이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자영업자의 약 40%가 향후 3년 내 폐업을 고려하고 있는데, 주요 이유는 첫째가 ‘영업실적 악화’(29.4%), 둘째가 ‘자금사정 악화 및 대출상환 부담’(16.7%), 셋째가 ‘경기회복 전망 불투명’(14.2%)이었다. ‘임차료, 인건비, 공공요금 등 비용 상승’은 네 번째(13.2%) 요인에 그쳤다.
‘가장 큰 경영 애로사항’을 묻는 질문에도 첫째, 임차료 상승 및 각종 수수료·세금 부담(21.1%), 둘째, 수입물가 상승으로 인한 원재료 매입비 부담(17.2%), 셋째, 고금리 지속, 만기도래 등 대출 상환 부담(16.7%), 전기·가스 등 공공요금 부담(16.3%) 순이었다. 언론들이 ‘허리가 휘고’ '곡소리 나고' ‘한숨이 나오고’ ‘패닉에 빠진다’는 최저임금 상승으로 인한 인건비 부담은 10.7% 응답으로 6번째 순위에 머물고 있다.
특히 최저임금 인상률이 발표되면 언론이 가장 자주 동원하는 것이 ‘편의점 폐업론’이었다. 최저임금이 너무 올라 편의점 알바생이 사장보다 월급을 더 많이 받아가고 편의점 사장은 사업을 포기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편의점 사장님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은 알바생에게 주는 최저임금이 아니라, 편의점 본사에 갖다주는 수수료와 높은 매장 임대료다. (관련기사 “최저임금이 높아서 편의점 망한다고요?”)
언론이 최저임금 인상 탓에 자영업자·소상공인들이 ‘패닉’에 빠졌다는 식의 과장된 보도를 해온 것은 이번만이 아니다. 매년 노사의 최저임금 협상이 끝나고 나면 언론은 예외없이 이런 류의 기사를 쏟아내왔다. 경영계의 주장을 앵무새처럼 그대로 받아쓰기만 하고 있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 때인 2017년 7월에 다음해 최저임금을 7530원으로 16.4% 인상키로 결정했다. 기업과 자본의 입을 대변하는 경제지들은 물론이고 기업 광고로 먹고사는 대부분의 주류 언론들은 한국 경제가 최저임금 때문에 무너질 것처럼 보도했다.
“한국경제 견뎌낼 수 있나” “소상공인 부담 감당할 수 있나” “과속질주 ”편의점 문 닫을 판“ “직원 줄이거나 가게 문 닫아야죠”…등의 기사 제목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한국 경제는 무너지지 않았다. 경제 성장률은 2017년 3.1%, 2018년 2.7%로 직전 박근혜 정부 때인 2015년 2.6%, 2016년 2.9%에 비해서도 나쁘지 않았다.
내년 최저임금 인상률 1.7%에 오로지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주류 언론들을 이해할 수 없는 이유는 또 있다. 물가상승률 때문이다. 임금을 말할 때 물가를 따지지 않을 수 없다. 임금이 상승해도 물가가 더 오르면 사실상 임금은 줄어드는 셈이다. 최근 폭등하고 있는 물가를 감안하면 1.7% 임금 상승은 임금삭감이나 마찬가지다.
지난해 과일·채소값은 각각 40%, 12% 올랐고, 전기·가스·수도요금은 4.9%(최근 3년간은 38.6%), 시내버스와 택시 요금도 각각 11.7%, 13% 인상됐다. 올해도 1분기 외식물가 상승률은 3.8%, 신선식품 물가상승률은 20%에 달했다. 설렁탕, 짜장면, 냉면, 삽겹살 값이 너무 올라 서민들이 외식을 줄이고 있고, 과일·채소 값이 폭등해 장보기가 두렵다는 말이 나오는 상황이다. 내년 물가가 올해보다 낮으리란 보장도 없다.
물가를 생각하면 최저임금 1.7% 인상이 오히려 임금 삭감이라는 노동계의 반발이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임금 노동자의 입장에서 이를 비중있게 보도한 언론은 한겨레와 jtbc 정도뿐이다. 다른 대부분의 주류 언론에서 일하는 기자들은 스스로를 노동자가 아니라 경영자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우리나라 노동자의 최저임금을 다른 나라와 비교해 봐도, 이 정도의 최저임금을 두고 '곡소리'니 '패닉'이라고 하는 것은 과장이다. 한국 노동자의 최저임금은 OECD 평균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5월 최저임금위원회와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3년 기준 한국의 최저임금 수준은 유럽 주요 선진국의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한국의 대다수 주류 언론들은 노동자에게 보장된 이 정도 수준의 최저임금 인상도 견디지 못해, 사실을 왜곡해가며 일방적으로 기업과 자본의 목소리만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내년 최저임금 1만30원 결정으로, 우리나라에서 최저임금제가 시작된 지 37년 만에 ‘이제 겨우 1만원 시대’가 열리게 됐다. 그러나 주류 언론들은 '최저임금 1만원 시대의 한숨' '경영부담에 패닉'이라고 한다.
국내 20대 그룹 임원들이 직원보다 20배나 많은 수십억 원 연봉을 받아간다(재벌닷컴 3월24일)는 사실에는 무덤덤하지만, 노동자가 올해보다 시급 170원, 월급 2만7200원을 더 받게 된 것을 두고 ‘패닉’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런 한국 주류 언론들이야말로 노동자들에게는 ‘패닉’ 그 자체다.
김성재 에디터seong680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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