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완견' 전성시대와 '감시견' 민들레의 현실
일본 영화 '신문기자'에도 등장하는 '총리의 개'
"받아쓰기에 환장한 한국의 하이에나 언론" 연상
광고, 클릭 수입으로 먹고사는 '애완견 전성시대'
반면 '감시견'에 충실한 대안 언론은 어려운 처지
후원자 수의 정체 및 감소를 극복해야 하는 숙제
"주권자가 권력 제대로 감시할 개 키우는 수밖에"
"총리 절친 기자 츠지카와. 강간 사건 구속 보류. 총리 관저가 은폐 협력."
"이번엔 강간 사건 은폐야? 막을 일도 많구만."
"설마 또 총리 쪽에서 압력을?"
"설마가 아냐. 츠지카와는 총리의 개로 유명한 기자야."
"다 한 패거리지."
일본에선 보기 드문 사회 고발성 저널리즘 영화로, 일본 아카데미상 최우수작품상,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한국 배우 최초로 심은경 수상)을 휩쓸었던 <신문기자>에서, 토우토(東都) 신문사 사회부 기자들이 나누는 대화 중 한 대목입니다.
여기에서도 '개'가 등장합니다.
권력과 유착한 '애완견'들이 오히려 득세하고 패거리를 지어 적반하장으로 큰소리치는 양태는, 한국이나 일본이나 비슷한 모양입니다.
수구보수 독재권력의 가짜 뉴스 유포, 여론 조작, 진실 보도를 오보로 몰아가기, 거기에 적극적 또는 수동적으로 부역하는 영혼 없는 관료와 기자 집단 등, 이 영화를 보다 보면 누구나 한국의 현실을 연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특히 '받아쓰기에 환장한 하이에나 언론을 생각'(박평식 평론가)하게 됩니다.
정권에는 애완견이고 야당에만 감시견(혹은 광견) 노릇을 하면서, 이를 지적하면 다들 개떼처럼 흥분해 달려드는 미디어 환경은 과연 개판입니다.
얼마 전 대통령실 출입 기자들은, 윤석열 대통령이 김치찌개와 계란말이를 해준다고, 진심으로 감격스러워하거나 좋아죽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다 같이 만찬을 즐겼습니다.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지만, 그 영상을 보면서 저 역시 개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길게 줄을 지어 윤 대통령에게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하면서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고 황송해하는가 하면, 식판을 들이밀며 "더 주세요"라고 말하는 기자들에게선, 마지못해 이런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는 거북함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사실 김치찌개와 계란말이만 집중적으로 부각됐으나, 그 정도 메뉴에 국한된 소박한 저녁상도 아니었죠. 안동 한우, 완도 전복, 장흥 버섯, 무안 양파, 강원도 감자, 제주 오겹살, 이천·당진 쌀밥, 남도 배추김치, 여수 돌산 갓김치, 문경 오미자화채, 경남 망개떡, 성주 참외, 고창 수박, 양구 멜론 등 그야말로 성대한 잔칫상 수준이었습니다.
용산 출입 기자들이 써야 할 기사를 제대로 쓰면서 한우 스테이크와 돼지갈비를 수북이 쌓아놓고 폭풍 흡입하든, 파안대소로 담소를 나누든 하면 누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평소 낯 뜨거운 '윤비어천가'만 열심히 불러대거나, 행여 대통령실 심기를 거스를까 하도 마사지를 해대서 물러터진 '비판 시늉' 기사를 쓰는 기자들이 태반이니 절로 혀를 차게 되는 것입니다.
어용 언론들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소위 진보 언론이라는 경향신문까지도 당시 "언론과의 직접 소통을 넓히는 모습이다. (…) 윤 대통령의 이 같은 소통 행보가 지지율 반등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고 기사를 썼더군요.
소통?
채 상병 특검법과 김건희 씨 검찰 출석 문제, 최악의 경제 지표와 엉망진창 정책 혼선 등, 국민들이 정말 궁금해하는 핵심 현안에 관한 문답은 일절 없었습니다.
대다수 시민은 군사독재 시절로 되돌아간 듯 숨막혀 하는 시국에도, 기자들 자신이 속한 언론계에서의 온갖 광태 속에 언론 자유는 속절없이 추락하는 와중에도, 그 모든 국가적 퇴행의 장본인과 그냥 웃고 떠들면서 잡담만 나눴던 것입니다.
전대미문의 무능‧무책임‧무도한 대통령이 연출한 얼빠진 행사를 '소통 행보'로 포장해주고, '지지율 반등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고, 억지로 의미를 부여해주는 각사의 '에이스'들은 대체 머릿속에 뭐가 들어 있을까요.
뇌는 없고 죽지도 않고 무한 출현하는-멀쩡하던 신입 기자도 결국 물어서 감염시키고야 마는-이런 좀비 기자들로 바글대는 기성 언론사들은, 아무리 정신 나간 행태를 반복하며 독극물 같은 보도를 쏟아내도, 광고와 클릭 수입으로 먹고살 만하니 오늘도 '애완견 전성시대'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주요 언론사 대부분이 지난해 광고 불황에 경영 실적이 악화됐다는 데도, 신문사 영업이익을 보면, 한국경제 133억 원, 매일경제 117억 원, 서울신문 93억 원, 조선일보 77억 원, 동아일보 56억 원, 중앙일보 56억 원, 세계일보 44억 원, 국민일보 31억 원, 문화일보 21억 원… 등입니다.
반면, 기성 언론에 대한 처절한 반성 끝에 탄생해 '감시견' 역할을 정상적으로 수행하려는 대안 언론은, 처지가 쉬 나아질 기미가 안 보입니다.
시민언론 민들레는 평소 이 나라 언론에 문제의식이 있는 시민이라면 누구나 반색할 만한 양질의 기사와 칼럼으로 가득합니다. 진보 진영의 스피커들 중에서도 손꼽히는 영향력을 가진 '겸손은힘들다 뉴스공장'의 김어준 씨는 "언론이 왜 이런 보도를 안 하느냐"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하는데, 그 보도를 하는 언론이 바로 민들레입니다.
예컨대 김어준 씨는 "윤 대통령이 채 상병 특검법을 거부할 때 농어업회의소법과 한우산업법 등 정부‧여당이 발의한 법안에 대해서도 거부권을 행사했다. 자기들이 발의한 법안까지 거부했으니 얼마나 코미디냐. 이런 사실을 언론이 왜 해설을 안 해주느냐"고 방송에서 여러 차례 푸념했지만, 그건 앞서 민들레가 상세하게 단독 보도한 내용이었습니다. ☞ 막장 윤석열, 국힘 발의 법안도 거부권 행사 (김어준 씨가 왜 '언론이 이래야 한다'는 평소 지론에 부합하는 시민언론 민들레를 절대 언급하지 않는지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아무튼 민들레도 방침을 바꿔서 앞으로 단독 기사에는 [단독] 표시를 달기로 했습니다.)
민들레는 인터넷 홈페이지부터 다릅니다. 온갖 잡다한 광고 배너와 팝업창으로 덕지덕지 도배가 된 다른 언론사들과 달리, 거의 '청정지대' 수준이어서 기사 읽기에만 집중할 수 있는 쾌적한 환경을 제공합니다.
하지만 이런 여러 차별성과 장점에도 불구하고, 윤석열 정권 들어 뉴스제휴평가위원회(제평위)가 실종된 탓에, 네이버와 다음 등 포털 사이트에 노출이 안 되는 채로 사실상 한계에 부닥친 상태입니다.
주로 인건비와 원고료 지급에 따른 적자가 매달 일정액씩 누적돼, 특별한 사정 변화가 없다면 다음 달부터는 더욱 허리띠를 졸라매고 '비상 경영'에 돌입해야 할 판입니다.
물론 이런저런 자구책을 다각도로 강구하고 있고, 민들레 유튜브 채널 구독자도 10만 명을 넘겨 '실버 버튼'을 받긴 했습니다만, 후원자 수의 정체 및 감소를 극복하기에는 아직 역부족입니다.
민들레가 여러모로 부족한 점이 있겠으나, 저희가 어떻게 할 도리가 없는 이유로 후원을 끊는다는 독자분들을 접하면 난감하기만 합니다.
민들레의 실소유주(대주주)가 외부 인사 아무개라느니, 특정 정치인이 배후에 있다느니 하는 터무니없는 주장에 현혹된 분들이 의외로 많습니다(그런 가짜 뉴스를 퍼뜨리는 자들에 대한 법적 대응을 여러 번 검토하긴 했습니다만, 워낙 지저분한 부류라 자칫 진흙탕에 빠질 수 있어 웬만하면 엮이지 않으려 합니다).
심지어 민들레가 조국혁신당을 너무 띄워줘서 (실제로는 민주당 기사량과 비교 자체가 안 되는데도) 싫어졌다는 이유를 들며 떨어져 나가는 독자들을 볼 때면, 의욕에 불타는 민들레 식구들도 찬물을 뒤집어쓴 기분을 느끼곤 합니다.
어떤 기사나 칼럼 한 편의 논지가 본인 생각과 다르다는 이유로 민들레를 단박에 평가절하하며, 후원 해지 댓글을 남기는 분들이 상처를 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하나의 매체가 모두를 만족시킬 순 없더라도, 가능한 한 진보개혁 진영의 결속을 중시하며, 저널리즘의 본분을 지키고 정도를 걸으려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다고 다짐합니다.
민들레는 시민언론답게 '권력과 자본'으로 대표되는 일체의 외부 압력으로부터 독립해, 오직 시민 편에 서서 양심과 신념에 따라 보도하고 논평한다는 점을 핵심 기조로 삼아 출발했습니다.
그 주요한 실천으로서 상업 광고를 일절 받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습니다. 한국 언론 대다수가 대기업 광고주 등 자본의 논리에 굴복해 홍보지로 전락하고, 삼성을 비롯한 재벌 비판은 엄두도 내지 못하거나 극히 소극적인 실태를 반면교사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창간사에서부터 독자들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는 진정한 '독립 언론'이 되고자 한다고 선언했는데, 당장의 사정이 어렵다는 이유로 기업 광고에 기댈 수는 없습니다.
현상 타개책으로 아예 방향을 바꿔서 '한방' 크게 터뜨릴 수 있는 탐사보도나, 시류에 맞게 말로 전달하는 유튜브 방송 전문 매체로 전환하는 방안도 있겠습니다.
저 개인적으로 신문사 재직 시절 사건팀장과 특별기획팀장(탐사보도팀장)으로 일하며 다수의 기자상을 수상한 경험도 있어서, 탐사보도에 자신이 없는 건 아닙니다. 그리고 말로 하는 것보다 글로 쓰는 게 일반적으로 난이도가 더 높습니다.
하지만 소위 레거시 미디어들이 날마다 정치‧경제‧사회‧법조‧외교‧안보‧국제 등 분야별로 다양한 왜곡 보도를 쏟아내는 상황에서, 그에 대항하기 위해 종합 일간 텍스트 미디어로서 출범한 민들레의 정체성을 포기하기는 어렵습니다.
양자택일이라기보다는, 향후 재정적 여건을 갖추는 대로 탐사보도팀을 따로 꾸리고, 유튜브에도 투자를 늘리는 게 최상일 텐데, 언젠가 그런 날이 오리라 믿습니다.
올해가 고비가 될 것 같습니다. 민들레가 만에 하나 재정적으로 더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게 될 경우, 구성원들은 각자 제 갈 길을 찾아가면 되겠지만, 이만한 의식과 역량을 갖춘 에디터 및 기자들을 다시 모으기는 매우 힘들 것이라는 절박감을 편집인으로서 갖곤 합니다.
현재의 진용을 갖추기까지 얼마나 애를 먹었던가 돌아보면서 말입니다. 아쉽게도 몇몇 에디터와 기자가 이런저런 사정으로 회사를 떠났지만, 현재 민들레의 정규 인력(편집위원 포함)을 이참에 독자분들께 소개해드리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강기석 에디터 / 전 경향신문 편집국장, 뉴스통신진흥회 이사장
김성재 에디터 / 전 한국경제‧한겨레 기자, 국무총리실 공보실장, 문화체육관광부 차관보
김진호 에디터 / 전 경향신문 워싱턴특파원‧논설위원
김호경 에디터 / 전 국민일보 기자, 뉴시스 사회부장‧정치부장
유상규 에디터 / 전 한겨레 기자, 머니투데이 증권부장, 법무법인 덕수 고문, 코스콤 감사
이명재 에디터 / 전 동아일보 기자, 국가인권위 팀장, 민주언론시민연합 정책위원
이유 에디터 / 전 연합뉴스 편집국 부국장‧마케팅본부장·미주총국장
임종업 에디터 / 전 한겨레 편집부장
장박원 에디터 / 전 매일경제 중소기업부장·논설위원
한승동 에디터 / 전 한겨레 도쿄특파원·국제부장·논설위원
김성진 기자 / 전 뉴시스 사회부‧정치부‧경제부 기자
송요훈 편집위원 / 전 MBC 기자‧기자회장‧시사매거진 2580 CP
이태경 편집위원 / 토지+자유연구소 부소장, 전 토지정의시민연대 대표, 한겨레 법무팀장
전지윤 편집위원/ 다른세상을향한연대 실행위원
존경하는 원로 언론인들의 결사체인 언론비상시국회의가 19일, <권력의 '감시견' 노릇 제대로 했다면 '애완견' 소리 나왔겠나?>라는 제목의 성명을 내고, '애완견 언론'들의 적반하장을 통렬하게 비판했더군요.
언시국은 그러면서 "언론이 감시견이 아니라 애완견 노릇을 한다면, 주권자로서는 권력을 제대로 감시할 개를 키우는 수밖에 없다"며 "많은 시민이 지금 짖지 않고 아양만 떠는 애완견을 갈아치우고 싶어 한다"고 밝혔습니다.
시민들이 제대로 된 '감시견'으로서 시민언론 민들레를 키워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독자들을 대상으로 '커뮤니티'란에 편지 형식의 글을 쓰다 보니, 가급적 허심탄회하게 쓰고자 했습니다.
시민언론 민들레는 백척간두 진일보와 진인사 대천명의 자세로 다소간의 난관을 잘 헤쳐나갈 수 있도록 전력을 기울이겠습니다.
많은 응원과 격려를 소망합니다.
김호경 에디터haojing610@mindl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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