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K민주주의와 반 K민주주의

道雨 2025. 1. 14. 10:53

K민주주의와 반 K민주주의

 

 

 

최근 ‘케이(K)민주주의’가 전 세계를 놀라게 했지만, 그에 대한 기대만큼 걱정어린 시선도 동시에 받고 있다.

비상계엄 절차와 포고령의 불법성을 차치하고도, 국민의 기본권을 심각하게 제한하고 위협하는 사건이 왜 2024년 자유민주주의 한국에서 일어났는지 전 세계가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북한에서나 일어날 만한 일이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외신 기자의 외침이 지금도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

 

그만큼 큰 충격을 준 사건이지만, 더 큰 놀라움도 있었다.

발 빠르게 행동한 시민들과 국회가 불법적인 비상계엄을 합법적인 절차로 불과 몇시간 내에 해제시켰다. 그리고 20·30대 젊은 여성들이 대거 참여하여 촛불과 응원봉이 춤추는, 마치 케이팝 가수의 공연장을 보는 듯한, 진지하지만 그렇다고 무겁지만은 않은 대통령 탄핵 촉구 집회가 전국의 거리를 밝혔다. 추운 겨울 날씨지만, 오히려 서로의 온기가 느껴지고 연대의 중요함을 일깨우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경이로운 케이민주주의의 다른 쪽에는, 마음을 무겁게 만드는 반(反)케이민주주의도 있다.

 

대통령 탄핵 소추 반대를 당론으로 정한 여당 국회의원들이 대부분 퇴장하는 바람에, 의결 정족수에 미치지 못해 대통령 탄핵 투표함은 열리지도 못했다. 그 일주일 뒤 대통령 탄핵 소추는 결국 가결되었지만, 그 이유가 어떻든, 정치적 이해관계가 어떻든, 민주적 선거에 의해 선출된 국회의원들이 그 민주주의를 파괴할 의도를 가진 대통령을 옹호한 것이다.

이 자기모순적이고 자기파괴적인 결정과 행동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비상계엄 선포와 해제가 일어난 후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열명 가운데 두세명 꼴의 국민은 여전히 대통령을 지지한다. 더욱이, 이른바 열성 지지자들은 여당 의원들에게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도록 압력을 가했다. 국회 앞 탄핵 촉구 집회에 모인 숫자에는 많이 못 미치지만, 탄핵 반대 목소리를 내는 이들도 길거리에 나와서 목소리를 높였고, 대통령을 지킨답시고 한남동 관저 앞에 모인다.

 

그들의 주장을 들어보면, 안타깝게도 대통령의 계엄선포 변명과 맥을 같이 한다. 야당과 그 대표는 종북 반국가 세력이자 범죄자들이고, 폭력적이고 불법적인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없애야 할 대상이다. 우리는 견제받지 않는 권력을 가진 강한 리더(독재자)가 필요하고, 자유민주주의 수호의 대의(?)를 위해 국민의 기본권쯤은 희생시켜도 된다고 주장한다. 군대를 동원한 쿠데타도 필요하다면, 그리고 할 수 있다면, 해야 한단다. 왜냐면,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기 때문에….

 

과거 독재자들에 대한 동경이 아직도 짙게 남아 있음을 보면, 마음이 무거워지지 않을 수 없다.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인 다양성, 상호존중, 대화와 타협은 어디에도 없다.

 

이처럼 케이민주주의가 앞으로 맞닥트릴 문제의 난이도는 만만치 않다. 반민주적인 생각과 의견을 가진 사람들도 포용하여 함께 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 민주적 제도 자체의 파괴를 노리는 주장과 폭력도 안고 가야 한다.

반민주적인 생각을 가진 정치인들이 민주적인 선거에 의해서 당선되는 역설적인 일이, 언제까지인지는 모르지만 앞으로도 당분간 계속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그 중엔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기보다는, 친미·친일 등으로 불릴 만한 일을 오히려 옹호하는 자들도 보인다.

 

민주주의 시스템과 반민주주의적 현실이 공존하는 케이민주주의의 패러독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만만치 않은 일이다.

그런데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있다.

 

이 우주에는 입자·반입자가 존재한다. 예를 들면, 음전하를 띤 전자의 반입자로 양전하를 띤 양전자가 있다. 양성자와는 다르다.

주목할 점은 입자와 반입자가 만나게 되면 매우 큰 에너지로 전환된다.

예를 들면, 뉴턴에게 중력의 법칙에 대한 영감을 주었던 사과 하나(질량을 300g으로 가정)가 반입자로 이뤄진 다른 사과를 만나 소멸하면, 전국의 모든 사람이 한달 이상 사용하는 총전력 소비량과 같은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이처럼 큰 에너지는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따라, 은은하게 발전적이거나 건설적일 수 있고, 아니면 요란하게 파괴적일 수도 있다.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그 에너지 총량과 관계없이 여러 가지 세부 조건, 환경, 과정에 달려있다.

 

지금 전 세계가 주목하는 케이민주주의도 입자·반입자와 마찬가지로 큰 에너지가 보인다.

케이민주주의의 앞날도 우리가 여러 가지 세부 조건, 환경, 과정을 어떻게 만들어 가고 노력하느냐에 따라 발전적이거나 건설적일 수 있고, 혹은 파괴적일 수 있을 것이다.

 

 

 

서성석 | 미국 켄터키대 물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