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북핵, 군비 통제부터 시작하자

道雨 2025. 2. 10. 11:15

북핵, 군비 통제부터 시작하자

 

 

 

핵을 가진 북한에 어떻게 대응할까?

정책은 선택이다. 불가능한 방안부터 지워나가보자.

핵무장론은 어리석은 선동이다. 핵무장 지지 여론이 70%를 넘었다고 하나, 한-미 동맹을 포기하고 경제를 희생하고라도 핵무장을 할지를 물어보라. 상식을 가진 국민 다수는 반대할 것이다.

 

 

핵무장론의 변형인 핵 잠재력 확보도 불가능하다.

미-일 원자력협정 수준으로 한-미 원자력협정을 개정하자는 주장은 출발이 틀렸다. 원자력 산업의 형성 과정과 기술 차이는 말할 것도 없고, 일본은 비핵 3원칙을 지키고 농축과 재처리를 경제적으로 강조해서 미국의 협조를 얻어냈다.

일본과 다르게, 경제가 아니라 안보로 접근하면, 미국이 허용하겠는가?

핵무장론은 원자력 산업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핵무장 주장이 높아질수록, 원자력 산업에 필요한 수많은 이중용도 제품의 수입이 어려워진다. 그런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정치권은 원자력 업계의 걱정을 경청해야 한다.

 

전술핵의 배치도 마찬가지다.

핵무기는 사고파는 무기가 아니다. 그럴 가능성은 아주 낮지만, 미국이 전술핵을 한반도에 배치해도, 핵무기 통제권은 미국에 있다.

전술핵의 효과가 크지 않기에, 미국은 전략핵 위주의 억지력을 유지하고 있다. 효과가 낮은 전술핵을 동북아시아의 급격한 핵 경쟁을 초래하면서 배치하겠는가?

 

핵무장론자들은 미국 핵우산의 지속성에 의문을 표시한다. 그러나 현재도 앞으로도 핵확산이 아니라 핵우산이 미국의 이익에 부합한다. 물론 트럼프 정부는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에 비용을 요구할 것이다. 긴장을 완화하고 북한의 핵 위협을 낮출 현실적 이유다.

 

 

트럼프 정부의 등장으로 다시 협상의 불씨가 살아날까?

지난 35년 북핵 협상의 실패에서 교훈을 찾아야 한다. 한방에 해결하자거나, 혹은 주지 말고 양보만 요구하는 방식은 협상이 아니다.

부분 합의(스몰딜)로 신뢰를 쌓아야 일괄 타결(빅딜)로 나아갈 수 있다. 양자택일이 아니다. 작은 합의라도 지속했으면, 북핵 문제는 달라졌을 것이다.

 

서독은 상대를 자극하지 않으려 ‘털신을 신고’, 한걸음이라도 전진하기 위해 ‘작은 발걸음’을 쉬지 않았기에, 통일이라는 목적지에 도달했다. 물론 작은 발걸음 정책의 핵심은 지속성이고, 초당적 협력으로 가능하다.

정부가 바뀌면 이전 정부의 정책을 모두 부정하는 한국이나 미국의 정치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핵 위협의 감소다.

2019년 2월 하노이 회담의 실패 이후, 미국의 전문가들은 현실적인 접근법으로 핵 군비 통제를 제안한다. 군비 통제는 비핵화라는 목표의 포기가 아니다. 현재의 핵 위협과 미래의 비핵화 사이의 벌어진 틈을 좁히자는 방안이다.

과정이 없으면 목표에 도달할 수 없고, 목표가 없으면 길을 잃기 쉽다.

 

 

핵 군비 통제는 핵전쟁을 피해야 한다는 공동의 인식에서 출발한다. 미국과 북한이 핵 군비 통제 협상을 한다면, 핵전력의 불균형을 고려할 때, 구조적 군비 통제는 어렵다.

트럼프 대통령은 세계적인 핵 군비 통제 의사를 밝혔지만, 실현 가능성은 미지수다. 동북아에서 미국·중국·러시아의 핵전력 변화 없이, 미국이 북한만을 대상으로 핵전력을 조정할 수 없다. 그래서 소통과 대화로 우발적인 핵전쟁을 피하기 위한 운용적 군비 통제가 필요하다.

 

핵무기 사용 조짐이 훈련인지 사고인지를 신속하게 판단하기 위해서는 핫라인이 필요하다. 과거 남북관계에서 핫라인으로 정보를 교환해서 오판을 막았던 경험과 마찬가지다.

 

북한과 미국이 핵 군비 통제 협상을 하면, 한국이 소외될까?

당연히 윤석열 정부처럼 협상을 부정하고, 전쟁을 불사하고, 국내 정치적 목적으로 강경정책을 고집하면 소외된다. 그러나 북핵 해법의 본질은 상호 안보 위협 해소다. 핵 군비 통제 협상의 목적 역시 긴장 완화이고 핵전쟁 가능성의 해소다.

남북관계의 긴장 완화 없이, 북-미 사이의 협상만으로 안보 위협을 해소하기는 어렵다. 북-미, 남북, 한-미 세개의 양자관계가 선순환해야 핵무기와 동시에 재래식 분야의 군비 통제가 가능하다.

 

순간의 이벤트가 아니라, 협상의 지속성이 중요하다. 그래서 협상의 내용만큼 협상 틀을 고민할 때다.

2019년 하노이 회담은 북-미 양자 협상의 한계를 드러냈다.

북한은 남방정책을 활용해서 북방정책을 추진했다.

북핵 협상의 성공을 위해서는 중국의 역할을 인정해야 한다.

 

현실은 반대로 흘러가고 정세는 복잡해졌지만, 미-중 전략경쟁 시대에 남·북·미·중 4자 협력을 분리해낼 한국의 외교 능력이 북핵 협상의 성패를 결정할 것이다.

 

 

 

김연철 | 전 통일부 장관·인제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