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트럼프 "가자는 거대한 부동산 부지"…아랍권 거센 반발

道雨 2025. 2. 11. 09:56

트럼프 "가자는 거대한 부동산 부지"…아랍권 거센 반발

 

하마스 "가자는 사고팔 수 있는 재산 아니다"

사우디 "팔 주민, 내쫓아야 할 침략자 아냐"

아랍연맹 22개국, 27일 긴급 정상회의 소집

에르도안 "영원한 고향서 내보낼 권한 없다"

 

"가자지구를 거대한 부동산 부지로 생각해보라. 미국은 그것을 소유하고 천천히, 매우 천천히 서두르지 않고 개발할 것이다. 곧 우리는 중동에 안정을 가져올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9일 미국프로풋볼 결승전인 슈퍼볼이 열리는 뉴올리언스로 이동하는 전용기 안에서 동행한 기자들에게 던진 말이다. 지난 4일 방미했던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의 공동기자회견에서, 미국이 가자를 소유해 재건하겠다는 충격적 구상을 재확인한 셈이다. 여러 구역으로 나눠 다른 중동 국가들에도 재개발을 맡길 수 있다고도 했다.

 

 

트럼프 "가자지구는 거대한 부동산 부지"

네타냐후 "혁명적이고 창조적인 비전"

 

트럼프는 "우리는 가자를 소유하고 장악하고, 하마스가 돌아오지 못하게 하는 데 전념하고 있다"면서 "그곳은 철거지역인 만큼 돌아와서 있을 아무것도 없다"라고 주장했다.

 

그의 '가자 구상'은, 현재 이곳에 남아 있는 200만 명의 팔레스타인 주민을 이집트, 요르단 등 주변국으로 영구히 강제 이주시키고, 이곳을 미국의 소유로 만들어 "중동의 리비에라(지중해 휴양지)"로 개발하겠다는 게 골자다.

이와 관련해 트럼프는 "팔레스타인인들이 가자로 돌아가려고 유일한 까닭은 대안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우리가 더 안전한 곳에 집을 마련해준다면 그들은 가자로 돌아가려 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궤변을 앞세웠다.

 

트럼프는 이집트, 요르단을 포함한 인근 아랍국가들에게 강제로 내쫓기는 가자 주민을 수용할 부지 제공을 압박하는 한편, 이주와 가자 재건 과정에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중동의 다른 매우 부유한 국가들"이 자금을 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11일 백악관에서 요르단의 압둘라 2세 국왕과 만나기로 했으며, 아랍의 맹주인 사우디의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와 이집트 압델 파타 엘시시 대통령과도 만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스라엘의 네타냐후는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CNN에 따르면, 네타냐후는 9일 "1년 내내 그날(휴전) 이후 가자에 PLO(팔레스타인해방기구), 즉 PA(팔레스타인 당국)가 필요했다"며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이스라엘 국가에 훨씬 더 좋은 완전히 새로운 비전, 혁명적이고 창조적인 비전을 들고 왔다. 우리는 그것을 실행해 나갈 결심을 단단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 한 팔레스타인 가족이 9일 이스라엘군이 중부 가자의 넷자림 회랑에서 철수하자 남북에서 북부로 돌아가면서 풍경을 바라보고 있다. 2025. 02. 09 [EPA=연합뉴스]

 

 

 

하마스 "부동산 거래업자의 정신 상태,

가자는 사고팔 수 있는 재산 아니다"

 

그러나 가자를 통치해온 하마스는 트럼프의 발언을 일축했다. 알자지라에 따르면, 하마스 정치국 소속 이자트 엘라시크는 "가자는 사고팔 수 있는 재산이 아니고, 점령당한 우리 팔레스타인 땅의 필수불가결한 일부다"라면서 "부동산 거래업자의 정신 상태로 팔레스타인 문제를 다루는 건 실패로 가는 길이다"라고 비판했다.

 

이집트, 요르단 등 이웃 나라들은 강제 이주시킬 팔레스타인인들의 수용을 거부했다. 특히 사우디는 '팔레스타인국가'를 사우디 영토에 건설하라는 네타냐후의 제안을 성토했다.

사우디 외교부는 성명을 통해 그 제안을 "이스라엘 점령 세력이 인종청소를 포함해 팔레스타인 형제들을 상대로 자행하는 지속적인 범죄들로부터 주의를 돌리려는 것이다"라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팔레스타인 인민은 자신의 땅에 대한 권리를 갖고 있으며, 잔혹한 이스라엘 점령 세력이 원할 때마다 쫓아낼 수 있는 침략자나 이민자가 아니라는 점을 사우디 왕국은 확인한다"고 밝혔다.

 

이 제안에 대해, 이집트와 요르단, 아랍에미리트(UAE), 쿠웨이트, 바레인, 카타르 외교부도 일제히 비난 성명을 냈다. 이 문제 등을 논의하기 위해 22개 아랍국으로 이뤄진 아랍연맹(AL)은 27일 정상회의를 긴급 소집했다.

 

 

사우디 "팔 주민, 침략자‧이민자 아니다"

아랍연맹, 27일 긴급 정상회의 소집해

 

이번 트럼프의 '가자 구상'은, 장기적으로 팔레스타인국가 수립을 지지해온 미국의 '두 국가 해법' 정책을 사실상 폐기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사우디는 지난 5일 외교부 성명을 통해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에 대한 사우디 입장은 확고하고 견고하며 변함없고, 협상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하고, 팔 독립 국가 수립 없이는 이스라엘과 외교관계를 맺지 않을 것이라고 확인했다.

 

1기 때인 2020년 트럼프는 '아브라함 협정'이란 이름 아래, UAE, 바레인, 모로코 등과 이스라엘의 수교를 끌어냈고, 그 이스라엘과 사우디의 수교는 그 화룡점정이었다. 이란을 고립시키는 트럼프의 중동 평화 구상의 핵심이었던 셈이다.

그동안 사우디는 이스라엘과의 수교 조건으로 민수용 원전 개발 허용과 함께 팔레스타인국가 수립을 요구해왔다는 점에서, 팔 국가 건설을 부정하는 이번 트럼프의 구상은 사우디를 더욱더 밀어내는 결과를 낳을 것으로 보인다.

 

* 호주 멜버른의 빅토리아 주립도서관 앞에서 시온주의 반대 유대인과 그 지지자들이 가자 제노사이드(집단학살)에 항의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2025. 02. 09 [EPA=연합뉴스]

 

 

 

독일 숄츠 "가자 주민 이주 못 받아들여"

에르도안 "영원한 고향서 내보낼 권한 없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도 이날 총선을 앞두고 열린 TV 토론에서, 가자 주민을 쫓아내고 '중동의 리비에라'로 만들겠다는 트럼프의 구상을 "스캔들"로 규정한 뒤, 폐허가 된 가자의 상황을 감안할 때 정말로 끔찍한 표현이라면서 "주민 이주는 받아들일 수 없고 국제법에 반하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튀르키예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도 이날 기자들에게 "가자 주민을 영원한 고향에서 내보낼 권한은 누구에게도 없다"면서 "가자와 서안, 동예루살렘은 팔레스타인 주민의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하마스와의 휴전 2단계 협상을 위한 이스라엘 대표단이 9일 중재국인 카타르에 도착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는 1단계 휴전 16일 차인 지난 3일, 이스라엘군 완전 철수와 인질 전원 석방을 골자로 하는 2단계 협상을 시작하기로 했으나, 지금까지 별다른 진척은 없는 상태다.

 

이스라엘 언론에 따르면, 휴전협정에 따라 가자를 가로지르는 '넷자림 회랑'에서 완전히 철수했다. 넷자림 회랑은 지중해 연안에서 반대편 이스라엘 국경까지 이어지는 길이 약 6㎞짜리 통로다. 가자 남부로 피란한 팔레스타인 주민이 가자시티 등 북부로 귀환하려면 이곳을 통과해야 한다.

 

이스라엘군은 휴전협정이 적용되지 않는 점령지 요르단강 서안에서, 지난달 21일부터 테러 진압을 명분으로 '철벽'이란 군사작전을 시작해, 점차 강도를 높여가면서 팔 주민의 희생도 늘어나고 있다.

팔레스타인 보건부는 이스라엘군의 발포로 8개월 임신부를 포함한 20대 여성 2명이 숨지고 임신부의 남편이 중상을 입었다고 밝혔다.

 

 

 

이유 에디터yooillee22@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