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각사지십층석탑을 보고 싶다
서울 종로 탑골공원에 가면 우뚝 솟아있는 철골 유리 박스를 만나볼 수 있다. 유리박스 안에는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높은 탑이 세워져 있다. 몇 층인가 세어보니 10층이다. 게다가 탑에 빼곡하게 새겨져 있는 불상이며 지붕 기왓골, 목조건축에서 볼 수 있는 공포 형식 등 세세한 표현이 아름답기가 이를 데 없다.
이 탑은 바로 원각사지십층석탑(국보 제2호)이다. 경천사십층석탑(국보 제86호)을 제외하고는 그 유형을 찾아보기 어려운 독특하고 아름다운 조선시대의 대리석제 탑이다. 그런데 이 탑을 좀 더 자세히 보고 싶어 다가가니 보이지가 않는다. 커다란 유리면에 반사된 공원의 나뭇잎들과 주변이 사람들만 비칠 뿐이다. 들어가서 볼 수 있을까 주변을 둘러보니 들어가는 입구가 없다. 결국 원각사지십층석탑에는 다가설 수 없는 것이다.
즉 석불, 석비와 같은 석조문화재를 주요 대상으로 하고 풍우, 생물 침해 등의 자연적 요인에 의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건립되었다고 할 수 있다. 다시 원각사지십층석탑으로 돌아가 보자. 원각사지십층석탑에 보호각이 씌워지게 된 주요 원인은 산성비와 비둘기 배설물이었다. 탑골공원의 그 많은 비둘기들이 탑 위에 올라앉아 실례를 한 것이 탑을 온통 뒤덮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재와 같은 보호각이 세워지게 되었다.
물론 보호각 건립에 있어서는 석탑이 서울 도심지 내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 대리석질이 풍화와 우수에 약하다는 점 등 많은 사항들이 고려되었다. 사실 탑을 제대로 보기 힘들게 하는 반사유리는 직사광선으로 인한 탑의 훼손을 막기 위해 사용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각사지십층석탑은 우리에게 아쉬움을 남긴다. 비둘기 접근을 막기 위해 완전 밀폐형으로 석탑을 가두어놓으니 비둘기뿐 아니라 사람들의 접근조차 이루어지기 어렵게 된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은 보호각이 문화재 보존 뿐 아니라 관람환경을 제공한다는 중요한 또다른 측면이 간과되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원각사지십층석탑 보호각과는 달리 대부분의 보호각은 한식기와를 올린 전통건축 형태를 띠고 있다. 기둥과 기둥 사이에 벽체로 막은 경우, 띠살창으로 진입은 못하지만 내부를 밖에서 볼 수 있는 경우, 아예 벽체가 없이 완전 개방하는 경우 등으로 구분된다.
경주배리석불입상(보물 제63호)의 경우를 보자. 중앙 여래상과 좌우 보살상은 풍만한 얼굴과 둥근 눈썹, 내리뜬 눈으로 온화한 느낌을 준다. 불상의 키가 머리 크기의 5배 정도로 아동형 신체비례를 갖고 있으며 삼존의 천진한 웃음이 백미로 꼽히고 있는 7세기 신라미술의 대표작 중 하나이다. 주변에 소나무숲이 우거져 그늘과 습기로 인한 생물침해가 발생할 수 있으나 보호각이 이로 인한 훼손을 최소화하고 있으며 또한 벽체가 없는 개방형으로 내외부의 온습도 등 환경적 차이가 없어 결로 현상과 같은 문제도 발생하지 않고 있다. 즉 문화재 보존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보호각은 나름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경주배리석불입상을 관람하는 데 있어서 곤란과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경주배리석불입상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는데 필수 조건은 바로 햇빛이다. 보호각 건립 이전 석불입상을 보면 자연광에 의해 드러나는 조각의 입체감이 이 문화재의 가치를 느끼는데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지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보호각에 안치된 석불입상은 풍만한 얼굴도, 온화한 느낌을 주는 미소도 쉽게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보존과 관람을 위한 더 나은 보호각 건립에 대한 논의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는 2006년 11월 14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문화재 보호각 개선방안 국제학술심포지움”을 개최하였다. 1부 동아시아 문화재 보호각의 현황에서는 한국과 중국, 일본의 문화재 보존시설에 대한 발표가 이루어졌고 2부에서는 보호각의 문제점 및 관련 연구, 보호각의 개선방향이라는 2개의 세션으로 나누어 진행이 되었다.
각 주제발표에 따른 토론을 통해 문화재 보호각의 문제점과 개선방향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었다. 제시된 개선방향의 주요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보호각의 미술적·보존과학적 문제 해결을 위한 체계적인 조사연구가 필요하다. 둘째, 전통건축 위주의 보호각 형식에서 탈피하여 재료 및 디자인의 다양화가 필요하다. 셋째, 석조문화재 뿐 아니라 발굴유적의 보호각에 대한 개선책 마련이 필요하다. 넷째, 보호각 건립시 주변 환경과의 조화를 고려해야 하며 문화재 보존과 관람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 다섯째, 현재까지는 주로 석조문화재의 보호각에 대해서만 논의가 되어온 바, 도요지(陶窯址)와 같은 발굴유적의 보호각에 대한 개선책 마련이 필요하다.
이밖에 현장에서 이전하여 박물관 등과 같은 실내에서 보존하는 차선책 강구, 전통과학기술 연구를 통해 보호각 건립 및 문화재 보존에 활용하는 방안, 그리고 ‘보호각’이라는 용어 개념의 확대 필요성 등 다양한 의견과 폭넓은 토론이 진행되었다. 주제발표자 및 토론자들은 공통적으로 보호각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논의가 이제야 공식적으로 이루어진 것에 대한 아쉬움과 앞으로 개선에 대한 구체적인 노력이 이루어지게 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으며 유홍준 문화재청장도 이번 학술심포지움의 결과를 바탕으로 국립문화재연구소의 개선안에 대한 적극적 수용 의사를 표명하였다. 문화재 보존과 관람을 원활히 수행하고 또한 건축디자인적 측면에서도 어떠한 것이 당해 문화재와 주변 경관을 위한 것인가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다양한 입지와 형태를 가지고 있는 문화재와 기존 보호각의 문제점에 대한 충분한 조사연구를 실시하고 획일적이 아니라 다양성을 포함하고 있는 보호각의 디자인과 기능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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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일 2006-12-21 11:24: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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