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문화재

[스크랩] 복장유물腹藏遺物’에서 우리가 바라는 가치

道雨 2007. 10. 26. 12:34

복장유물腹藏遺物’에서 우리가 바라는 가치

 


탑은 부처님의 사리를 모시기 위해 쌓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그 안에 모시는 ‘사리’는 탑의 존재 의미가 된다.

물론 탑에 사리를 봉안할 때에는 오직 사리만 넣지는 않는다. 사리를 담는 크고 작은 그릇이 있고, 불경이나 작은 탑도 함께 넣는다.

유물을 넣는 전통은 탑에만 그치지 않고 불상이나 불화를 조성할 때도 나타난다.

 

이러한 것들이 모두 ‘복장腹藏’(또는, ‘복장유물腹藏遺物’, ‘불복장佛腹藏’)이니, 복장은 점안(불교에서 신앙의 대상을 처음으로 봉안하는 의식)과 더불어 부처님께 생명을 부여하는 행위와 다름없다

 

불교문화재로서의 복장유물

복장은 그 부처님을 제작하면서 넣지만, 제작 이후 보수나 개금(불상에 금칠을 다시 함) 때 복장을 열어 새로운 유물을 넣기도 한다.

그래서 한 분의 부처님 복장에서는 제작 당시 유물부터 최근 유물까지 연대기적으로 발견되기도 한다.

복장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상원사 소장 ‘목조문수동자상’은 문수동자와 세조와의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소재로 조성한 동자상으로서 복장에서 나온 세조의 피고름 묻은 옷가지를 통해 전설 같은 이야기는 사실성을 얻었으며, 불상에 대한 ‘조성기’는 그 불상 제작의 절대 연대를 알려주어 이 분야 연구에 큰 전환점을 마련하기도 하였다.
좀 더 신랄하게 표현하자면, 만약 1300년대 말이나 1400년대 초반에 만든 불상이 첫 개복開腹이라면, 온전한 ‘직지’의 발견을 기대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최근의 복장유물에서 나타난 두 가지 사례

우리 문화재청 업무 중 복장유물과 관련된 두 가지 사례가 최근 크게 주목을 받았다.

10월에 개최될 문화재위원회(동산문화재분과)에서 지정 예고를 검토하게 될 ‘포항 대성사 금동여래좌상’과 지난 7월 중순에 대부분의 언론에서 크게 다룬 바 있는 ‘안동 보광사 목조관음보살좌상’이 그것이다.


‘포항 대성사 금동여래좌상’은 높이 9㎝를 갓 넘는 작은 불상으로, 원래 강원도 고성 건봉사 낙서암에 소장해 오던 사명대사의 원불(자기가 일생 동안 섬기는 부처)이다.

 

이 불상은 사명대사께서 직접 당신이 이루고자 했던 소원을 기록해서 항시 모시고 다니던 원불로서, 스님의 열반 후 그의 문도(불교 신도를 이르는 말)들이 소중하게 전래해 오던 불상이다. 이 불상은 그 자체로 불교 조각사적 가치도 인정되지만, 사명대사의 친필 원장(불교에서 부처에게 갈구하는 소원을 써서 기도할 때 부처 앞에 바치는 글장)이 복장유물로 발견되어 그 가치가 더욱 명료해졌다.

사명대사 유정(1544~1610)은 우리나라 불교사에서도 중요한 스님이지만, 임진왜란 때 활약한 승병장이자 전쟁 후에는 강화를 위한 사신으로 일본을 다녀오기도 한 분이다. 오래 전부터 어린이 위인전, 만화, 영화를 통해 신통력이 뛰어난 산신령처럼 묘사되기도 한 탓에 우리에게는 매우 친숙한 분이기도 하다.

 

 

지난 6월에 발견되어 7월에 공개한 ‘안동 보광사 목조관음보살좌상’은 고려 때 조성한 불상이지만, 그 생김이 워낙 모던하고 보존 상태가 좋아 사찰 주지 스님조차도 그리 오래된 불상이 아니라고 믿었을 정도였다.

이는 고려 때 조성한 불상이 극히 드물다는 점에서도 중요하지만, 이 불상에서 수습한 복장유물 중 특히 ‘보협인다라니’의 가치는 더욱 놀라운 것이어서, ‘무구정광대다라니’ 이후 ‘초조대장경’과 ‘고려대장경’, ‘직지’로 이어지는 인쇄기술사의 고리를 연결하는 귀중한 유물이자, 우리 인쇄기술의 전통을 풍부하게 뒷받침할 수 있는 역사적 자료로 쓰일 수 있다.


 

복장유물의 두 얼굴,
문화사의 타임캡슐이냐 세속적인 유혹인가

손에서 손으로 전해지는 문화재는 역사적 나이에 반비례하여 그만큼 전해질 가능성이 적어진다.

오랜 세월에 스스로 닳아 없어지기도 하고, 전쟁이나 재해, 또는 무지한 주인을 만나 온전히 남아 전하기도 어렵다.

 

특히 종이에 적은 역사 기록이라는 것은 종이 특성상 여간한 정성이 아니면 온전히 전해지기가 어렵다. 그런데 복장유물은 이러한 위험을 모두 건너뛴다.
최근 조금씩 번역이 이루어지고 있는 불국사 삼층석탑(석가탑) 복장유물인 묵서 조각의 번역을 지켜보면, 그 사료적 가치는 더욱 확연해진다.

 

<삼국유사>가 단 몇 줄로 기록한 삼층석탑 축조 기록을, 이 복장유물은 마치 압축된 컴퓨터 파일을 풀듯이 세세하게 풀어 놓고 있기 때문이다.

보잘 것 없어 보이는 묵서 조각은 그 자체로 역사이니, 불상이나 탑 속에 봉안된 복장유물은 우리 역사의 타임캡슐인 셈이다.

그래서 복장유물은 학자에게도, 사찰에게도, 그리고 도굴꾼에게도 참을 수 없는 유혹이다. 이 가운데 가장 큰 문제가 도굴꾼이다. 그간 숱하게 많은 불상이나 탑, 불화가 수난을 겪었다. 그 발상과 수법의 대담함이나 단호함은 놀라울 정도로 그들이 훑고 지나간 뒷자리는 참혹하기 그지없다. 그래서 어떤 이는 도둑맞기 전에 복장을 열자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것은 또 하나의 악순환을 만들자는 욕심일 수 있다.


 

복장유물의 미래, 어떻게 할 것인가

사부대중(석가의 가르침을 따르는 네 부류의 사람들)의 정성과 작은 염원이 모여 이루어진 결정체인 복장은 불상의, 탑의, 불화의 생령이다. 그래서 함부로 훼손하거나 열 수 없는 소중한 정신적, 물질적 자산이다.

 

그런 까닭에 복장은 도둑을 맞아 수습하거나, 개금이나 보수 중에 불가피하게 발견되는 경우가 아니면 고이 보존해야 한다.

이것이 복장유물에 대한 우리 문화재청의 기본 입장이다. 비록 백주대낮에 합법적으로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무분별한 복장의 개봉은 몇 번이나 다시 생각하고 생각해서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따라서 ‘포항 대성사 금동여래좌상’과 ‘안동 보광사 목조관음보살좌상’을 계기로 일반인들이 복장유물에 대해 다시 한 번 주의를 환기하기 바란다.

더 나아가, 이처럼 중요한 복장을 무분별하게 도굴하고, 불법 도굴된 복장유물임을 짐작하면서도 음성적으로 거래하며, 학술적 호기심을 무기로 복장 개봉을 부추기거나, 불사나 문화재 지정을 빌미로 복장을 무리하게 개봉하는 일을 미연에 방지하자는 논의를 이끌어 내야 한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불복장과 관련된 두 건의 문화재는 유물 자체 의미를 넘어 보다 큰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스님들께서도 도난이나 개금불사, 보수 등으로 불가피하게 복장을 열게 된다 할지라도 해당 종단 총무원 문화부와 미리 의논해 주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

 

복장유물의 수습은 보물찾기가 아니다. 어떠한 절차를 거쳐 개봉하고, 어떻게 유물을 수습하느냐 하는 것이 복장의 문화재적 가치를 제대로 보호하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인 것이다.


****************▶글/사진 제공 : 문화재청 문화유산국장 엄승용 2007.10.8

출처 : 토함산 솔이파리
글쓴이 : 솔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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