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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 용선대 석조불상 722년 무렵 제작판명

道雨 2009. 7. 13. 09:13

 

 

 

창녕 용선대 석조불상 722년 무렵 제작판명

'개원 10년' 새긴 명문 발견, "불상 기준작"

(창녕=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경남 창녕군 창녕읍 옥천리 화왕산 기슭 관룡산(해발 739.7m) 정상 부근의 용선대에 있는 '관룡사 용선대 석조석가여래좌상'(보물 295호)은 통일신라시대 초기인 722년 무렵에 만들어진 것으로 밝혀졌다.

이런 사실은 이 불상의 팔각형 좌대(座臺) 한쪽 측면에서 불상 제작 연대를 나타낼 가능성이 큰 명문(銘文.새김글자)이 보인다는 김선덕(44) 서진문화유산보존연구소장의 제보를 바탕으로, 연합뉴스가 문화재위원이자 불교미술사 전공인 최성은 덕성여대 교수, 미술사학자인 문화재청 인천공항 문화재 감정관실 이송란 박사 등과 함께 11일 현지 조사를 통해 명문을 확인하면서 드러났다.

현지 조사결과 명문은 세 줄에 걸쳐 '開元十../月卄日(?)../成內..'이라는 글자로 잠정 판독됐고, 조사단이 제공한 사진으로 정밀 판독을 시도한 한국서예사 전공 손환일 박사는 '開元十../月卄五../成明..'으로 읽어야 한다는 견해를 제시했다.

나머지 글자는 마모가 심해 전체적인 맥락을 잡기는 힘들지만 "개원 10년(722년)..월 25일에..(불상을) 조성했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개원(開元)은 당나라 현종 때의 연호로 개원 10년은 서기 722년이다.

최성은 교수는 "그동안 이 불상은 막연히 통일신라시대 불상 정도로만 알려졌고, 일부 불교미술사학자는 양식적인 특성에 주목해 9세기 무렵 작품이라는 견해를 제시했을 뿐이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명문 발견을 통해 이 불상이 제작된 연대가 개원 10년, 또는 개원 10년에서 개원 19년(731년) 사이라는 사실을 확인함으로써 8세기 전반 통일신라시대 불상의 또 다른 기준작을 확보하게 됐다"면서 "특히 8세기 전반 석불 중 좌상으로는 제작연대를 확실히 알 수 있는 유일한 작품이 된다"고 최 교수는 평가했다.

8세기 전반 통일신라시대 석불로 명문을 통해 조성 연대가 알려진 사례는 입상인 경주 감산사 석조미륵보살입상(719년)과 같은 감산사 석조아미타불입상(720년) 정도에 불과하다. 8세기 중ㆍ후반 작품으로 연대를 추정할 수 있는 석불은 석굴암 본존불 좌상과 석남암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766년), 김천 갈항사지 석불좌상(758년 무렵) 정도를 꼽을 수 있다.

최 교수는 이 용선대 석불좌상이 항마촉지인을 한 오른손이 바닥까지 내려오지 않고 무릎 위에서 그친 점은 7세기 후반 작품으로 생각되는 팔공산 군위석굴 삼존불상의 본존상과 동일하고, 부은 듯한 눈두덩과 도드라지게 양각한 대좌 앞면 주름은 감산사 석조미륵불입상과 유사하다고 말했다.

또 좌대 상대(上臺) 앙련석은 두껍고, 삼엽문(三葉文.이파리 3개)을 기본으로 하는 연화문(蓮花文)을 새겼으며, 팔각형 중대석의 각 면에 위, 아래로 긴 안상(眼狀.눈 모양)인 장식을 표현한 점은 이후에 등장하는 9세기 통일신라시대 석불좌상과는 다른 점이라 할 수 있다고 최 교수는 덧붙였다.

이 불상은 전체높이 318cm 에 불상 높이 189cm, 좌대 높이 129cm다.
한편, 최 교수는 이번 조사 성과를 오는 18일 오후 2-6시 서강대 김대건관에서 열리는 신라사학회 제85차 학술발표회를 통해 공개하는 한편, 문화재위원 자격으로 문화재청에 용선대 불상에 대한 정밀조사를 요청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