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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군 명으로 파묻었던 서원의 신주단지 나왔다

道雨 2009. 7. 21. 15:05

 

 

 

    대원군 명으로 파묻었던 서원의 신주단지 나왔다

대원군이 서원 철폐령을 내려 전국 서원의 문을 닫게 하고, 사당의 위패를 묻은 사실이 물증을 통해 처음 확인됐다.

문화재청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소장 강순형)는 경남 창녕군이 의뢰한 창녕 유일의 사액(賜額)서원인 관산서원(현 관산서당) 사당터에 대한 긴급학술조사를 통해 '대원군 서원 철폐령'의 실체를 최초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고종실록에 의하면 대원군은 1868, 1871년에 서원철폐령을 내려 전국의 미사액 사액서원(약 1700여곳)중 47개소만 남기고 모두 철폐하고, 신주단지를 묻으라고 명했다. 이번 창녕 관산서원의 사당터 조사에서는 그 근거자료가 매납시설을 통해 처음으로 확인돼 화제를 모은다.

더구나 관산서원은 창녕에서 유일한 사액서원이자 '영남5현'의 한 분으로 숭앙된 영의정 정구(1543~1620년)를 기려 그가 사망하자 세운 명망 높은 서원이다. 이러한 서원에서 국내 처음으로 발견된 매주(埋主)시설은 철폐시킨 사당터 자리 한가운데를 파고 옹관처럼 옹기를 맞붙여 세워 그 속에 신주(정구의 위패)를 봉안하고는 그 둘레에 사당에 얹은 기와로 세겹을 감싸고 단단하게 흙으로 덮은 특이한 형식이다.

겹겹이 둘러싼 기와 사이에는 습기제거나 벽사용으로 보이는 숯덩이가 포함돼 눈길을 끌었다. 또 옹기 속에는 옻칠이 된 목제 위패 1점이 모셔져 있는 것이 비디오 내시경 조사를 통해 확인됐다.

지금까지 대원군의 서원철폐와 관련된 실증적 유물자료는 알려지지 않아 이번 관산서원 터에서 발견된 매주시설과 형식은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첫 사례로서 그 역사적 의미가 높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