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단벌레 국내 서식 확인시킨 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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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시내 구 시가지 중심에는 대능원(大陵苑)이라는 신라무덤공원이 있다. 이 가운데 가장 크고 높은 무덤이 황남대총(皇南大塚)이다. 남북 길이 약 120미터에 높이가 23미터에 이르는데 둥그런 무덤 두 개가 붙어있어 마치 표주박을 엎어 놓았을 때 모습과 흡사해 표형(瓢形)무덤이라고도 불리고 있다.
발굴 결과 남쪽의 무덤이 남자의 것으로 먼저 만들어졌다. 즉 먼저 죽었다는 의미이며 북쪽의 것이 여자의 무덤으로 남자보다 뒤에 세상을 떠났음이 밝혀졌다.
아무튼 지금까지 남한에서 발견된 삼국시대 고분 가운데 그 규모가 제일 큰 무덤을 발굴한 것이다. 무덤을 발굴하게 된 계기는 1971년 청와대 주관으로 마련된 경주관광개발 10개년 계획이다. 물론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였다.
발굴조사는 1973년부터 75년까지 2년여에 걸쳐 진행되었다. 신라시대의 수많은 유물이 출토되었지만 이 발굴조사에서 여성의 무덤인 북쪽 무덤에서 신라금관이 출토되어 지배자인 남성이 쓰던 관으로 생각해 온 신라금관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하게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남자의 무덤에서는 금관 대신 실용적인 은관이 출토되었다.
발굴 결과 남쪽의 무덤이 남자의 것으로 먼저 만들어졌다. 즉 먼저 죽었다는 의미이며 북쪽의 것이 여자의 무덤으로 남자보다 뒤에 세상을 떠났음이 밝혀졌다.
아무튼 지금까지 남한에서 발견된 삼국시대 고분 가운데 그 규모가 제일 큰 무덤을 발굴한 것이다. 무덤을 발굴하게 된 계기는 1971년 청와대 주관으로 마련된 경주관광개발 10개년 계획이다. 물론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였다.
발굴조사는 1973년부터 75년까지 2년여에 걸쳐 진행되었다. 신라시대의 수많은 유물이 출토되었지만 이 발굴조사에서 여성의 무덤인 북쪽 무덤에서 신라금관이 출토되어 지배자인 남성이 쓰던 관으로 생각해 온 신라금관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하게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남자의 무덤에서는 금관 대신 실용적인 은관이 출토되었다.
그러나 많은 출토 유물 가운데 우리의 눈을 끄는 것 하나가 바로 남자의 무덤에서 출토된 옥충장식말안장(玉蟲裝飾馬鞍裝)이다. 옥충은 비단벌레를 말하는데 이 벌레는 딱정벌레의 일종으로 알려져 있고 몸길이는 3~4㎝에 지나지 않으나 초록색 또는 금록색으로 화려한 광택을 지니고 있다.
1973년 이 황남대총의 발굴에서 비단벌레 날개를 모아 장식한 유물이 출토되기 전 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서는 비단벌레 날개를 이용하여 장식한 유물이 발견된 예가 없었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나라에 있는 고대 사찰인 법륭사에 일종의 장롱이라 할 수 있는 옥충주자(玉蟲廚子)가 이 비단벌레 날개로 장식되어 있었다. 그래서 비단벌레는 우리나라에는 서식하지 않고 일본에서만 서식한다고 알려졌다.
그런데 황남대총에서 수 천 마리의 비단벌레 날개를 사용하여 장식한 말안장 앞막음인 전륜(前輪)과 뒷막음인 후륜(後輪)이 출토되어 모두를 놀라게 했다. 단연 비단벌레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일본에서 가져온 비단벌레냐 우리 땅에 자생하는 비단벌레이냐가 관심의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해서 비단벌레의 서식지를 찾는 일이 벌어졌다.
결국 전남 백양사 일대 등 남부지방 여기저기에서 서식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이 유물이 발굴되면서 당시 비단벌레가 일본산이라는 주장은 수정되어야 했다. 비단벌레는 희귀종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도 보호종에 포함시켜 2008년 10월 문화재청에서 천연기념물 496호로 지정했다.
그런데 이 유물의 구성은 금속, 나무, 비단벌레로 만들어져 있어 발굴 당시 우물쭈물했다면 바로 비단벌레 장식은 퇴색되어 빛을 잃고 말았을 것이다. 다행히 발견 즉시 글리세린 용액에 담아 지금까지 아무런 변색 없이 보존되고 있다.
1973년 이 황남대총의 발굴에서 비단벌레 날개를 모아 장식한 유물이 출토되기 전 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서는 비단벌레 날개를 이용하여 장식한 유물이 발견된 예가 없었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나라에 있는 고대 사찰인 법륭사에 일종의 장롱이라 할 수 있는 옥충주자(玉蟲廚子)가 이 비단벌레 날개로 장식되어 있었다. 그래서 비단벌레는 우리나라에는 서식하지 않고 일본에서만 서식한다고 알려졌다.
그런데 황남대총에서 수 천 마리의 비단벌레 날개를 사용하여 장식한 말안장 앞막음인 전륜(前輪)과 뒷막음인 후륜(後輪)이 출토되어 모두를 놀라게 했다. 단연 비단벌레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일본에서 가져온 비단벌레냐 우리 땅에 자생하는 비단벌레이냐가 관심의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해서 비단벌레의 서식지를 찾는 일이 벌어졌다.
결국 전남 백양사 일대 등 남부지방 여기저기에서 서식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이 유물이 발굴되면서 당시 비단벌레가 일본산이라는 주장은 수정되어야 했다. 비단벌레는 희귀종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도 보호종에 포함시켜 2008년 10월 문화재청에서 천연기념물 496호로 지정했다.
그런데 이 유물의 구성은 금속, 나무, 비단벌레로 만들어져 있어 발굴 당시 우물쭈물했다면 바로 비단벌레 장식은 퇴색되어 빛을 잃고 말았을 것이다. 다행히 발견 즉시 글리세린 용액에 담아 지금까지 아무런 변색 없이 보존되고 있다.
< 조유전 : 경기문화재연구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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