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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장군서 청자 등 발견, 국내서 가장 크고 오래돼
남한 지역에서 가장 오래 전에 쌓은 것으로 추정되는 고려시대의 봉수대 유적이 부산 기장군에서 발견됐다.
매장문화재조사기관인 울산문화재연구원은 최근 부산시 기장군 기장읍 죽성리 야산의 남산 봉수대 터를 발굴해 연기를 피우던 연소실, 연기를 올리던 연대(煙臺), 딸림 건물 터 등을 확인했다고 19일 밝혔다.
봉수대 터는 동해를 바라보는 산기슭에 있다. 조사 결과 지름 14m, 연대 높이 5m, 둘레 220m에 이르러 남한에서 발굴된 옛 봉수대 유적 가운데 최대급으로 꼽힌다. 연구원 쪽은 “유적 부근에서 전형적인 고려시대 유물인 생선뼈 무늬의 어골문 기와와 청자 등이 발견돼 봉수대를 쌓은 시기가 국내 최고인 고려시대까지 올라간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고려시대 봉수대 건물 터는 현재까지 남한에서 확인된 전례가 없었다.
봉수대는 국경이나 지방에 변란이 생겼을 때 횃불과 연기로 알리는 긴급 통신시설이다. 삼국~조선시대에 이 땅 곳곳의 높은 산에 세워 연락했다는 기록들이 전하며, 서울 남산의 목멱산 봉수대, 경기도 수원 화성 성곽의 봉수대 등이 유명하다.
기장의 남산 봉수대는 조선 초기 지리문헌인 <경상도지리지>(1425)에 처음 언급되며, 일부 터 흔적도 드러나 있었다. 그러나 유적 현장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지 않아, 구체적인 유적 현황과 축조 시기 등은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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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기장 남산 봉수대, 最古·最大 확인
- 울산문화재硏 "고려 때 만들어"
봉수대는 횃불과 연기를 이용해 급한 소식을 전하던 옛날의 통신수단. 멀리 바라보기 좋은 높은 산봉우리에 설치해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불빛으로 신호를 보냈다.
매장문화재 전문조사기관인 울산 문화재연구원(원장 이겸주)은 남산 봉수대 유적에 대한 발굴조사 결과 처음 만든 시기와 구조, 규모 등을 확인했다고 19일 밝혔다.
조사 결과 이곳에서는 연기를 올리는 시설인 연대(煙臺)와 연기를 피우던 시설인 연소실, 방호벽, 부속 건물터 등이 드러났다.
당초 지표상에는 남산 봉수대의 연대 일부(지름 7m, 높이 4.5m)만 드러난 상태였으나, 발굴조사를 통해 드러난 규모는 방호벽 기준으로 지름 14m, 연대 높이 5m, 둘레 220m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현재까지 남한에서 발굴된 봉수대 중에는 가장 큰 것이다.
부속 건물터(규모 7.5m×4.1m)에서는 고려시대의 대표적 유물들인 어골문(魚骨文·생선뼈 무늬) 기와와 고려청자가 발견됐다.
조사단은 "고려시대 봉수대 부속 건물터가 남한에서 발굴된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남산 봉수대가 언제 처음 만들어졌는지는 그동안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조선 초기 기록인 '경상도지리지'(1425)에 처음 명칭이 나타난다는 점에서 고려시대부터 봉수대가 있었을 것이라고 막연히 추측돼 왔을 뿐이다.
하지만 이번 발굴조사 결과 하부 퇴적층에서 고려청자와 어골문 기와가 출토됨에 따라 봉수대 역사가 적어도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이 분명해졌다고 조사단은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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