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검찰의 ‘사찰’ 조작, 정치권이 나설 수밖에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사찰 사건의 실체를 드러내는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엊그제 팟캐스트 <이슈 털어주는 남자>가 공개한 녹음파일에는 최종석 전 청와대 고용노동비서관실 행정관이 장진수 전 총리실 주무관을 회유하는 장면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파일 내용을 들어보면 청와대를 비롯한 정권 차원에서 이 사건을 조직적으로 은폐·조작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 한둘이 아니다.
25년 전 군사독재 정권을 무너뜨리는 기폭제가 됐던 박종철군 고문치사 범인은폐조작 사건에 버금가는 정권 차원의 조직적 범죄가 아닐 수 없다.
녹음파일에는 혼자서 책임을 뒤집어쓸 수 없으니 법정에서 모든 걸 털어놓겠다는 장 주무관을 달래기 위해 최 행정관이 취업을 알선하고 평생 먹여살려 주겠다고 회유하는 조폭영화의 한 장면 같은 대목이 나온다. 또 변호사에게 “장 주무관이 청와대에서 시켰다는 걸 발설하게 되면 정상 참작의 여지”가 있는지를 묻기까지 한다.
사실대로 공개하게 되면 “민정수석실도 자유롭지 못할 테고 총리실도 다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며 “검찰의 수사 결과가 다 뒤집어지고, 틀림없이 이건 재수사가 아니라 특검이야”라고 장 주무관을 겁박하기도 한다. 이런 내용 하나하나가 검찰의 기존 수사를 전면적으로 뒤집는 것들이다.
청와대와 검찰 고위층 모두 보도된 녹취록을 읽어봤을 텐데도 하나같이 숨죽인 채 침묵하고 있다. 아랫사람들에게 모든 책임을 뒤집어씌우고 자기들은 꼭꼭 숨어 있으니 비겁하기 짝이 없는 짓이다. 그래 놓고 국회의원 배지를 달겠다고 나선 뻔뻔한 자들도 여럿이니 현 정권 핵심 인사들의 도덕성 수준을 알 만하다.
녹음파일 내용은 사건 실체의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사후 은폐·조작과 증거인멸에 관해서는 최 행정관과 이영호 고용노사비서관 ‘윗선’의 역할이 아직도 드러나지 않고 있다.
총리실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을 늦추고, 최 행정관을 비롯한 청와대 인사들은 일체 기소 대상에서 빼줄 정도면, 단순히 청와대 비서관이나 검찰의 부장검사 수준을 뛰어넘는 고위층의 역할이 있었다고 봐야 한다.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과 대검 내지 서울중앙지검의 고위층은 이런 사정을 전혀 모르고 있었는지도 밝혀야 한다.
또 하나 중요한 대목은 김종익씨 이외에 민간인 사찰은 없었는지, 삭제된 공직윤리지원관실 파일에는 무엇이 들어 있었는지, 그리고 사찰 내용은 과연 어디까지 보고됐는지 등 사찰의 실체를 드러내는 일이다.
현 정권 인사들이 스스로 진실을 고백하기를 기대하는 건 우물에서 숭늉 찾는 격이다. 그렇다고 은폐·조작의 공범에 가까운 검찰에 재수사를 맡기는 건 꺼림칙하다.
여야는 더이상 증거 인멸과 은폐·조작을 방치하지 말고, 특별검사든 국정조사든 서두르기 바란다.
[ 2012. 3. 14 한겨레 사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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