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협정의 실무를 맡고 있는 국방부가 협정의 국무회의 비공개 처리 두 달 전에 이미 가서명을 해놓고도, 이를 국회 설명 과정에서 빼놓은 사실이 새로 드러났다.
매우 민감한 외교·안보 사안을 대통령이 외유 중에 도둑질하듯이 처리한 것만 해도 용납하기 어려운 일인데, 속이기까지 했다니 기가 막힐 일이다. 한 편의 막장 드라마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외교통상부와 국방부에 따르면, 국방부의 신경수 국제정책차장(육군 준장)과 일본 외무성의 오노 게이이치 북동아시아과장은 협상 대표 자격으로 지난 4월23일 문제의 협정안에 가서명했다.
이후 검토 과정에서 틀린 부분이 나와 몇 차례 문구를 수정했다고는 하지만, 지난달 26일 국무회의 비공개 의결 두 달여 전에 사실상 협정문을 확정했음이 드러난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5월과 6월 두 차례의 국회 설명 과정에서 이를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미리 협정문을 확정해 놓은 뒤, 국회 설명을 국무회의 비공개 의결을 위한 명분 축적용으로 활용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물론 정부는 이런 내용을 언론에도 공개하지 않았다. 아예 처음부터 국민을 속이기로 작정하지 않고는 하기 어려운 일이다.
더 큰 문제는 정부가 이에 대한 죄의식조차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국방부 당국자는 가서명은 실무선에서 문안의 초안이 합의됐을 때 하는 것으로, 이런 실무협의 과정을 하나하나 국회에 보고할 의무가 없다고 변명했다고 한다.
그러나 한-미 자유무역협정 체결 때는 정부가 처음 가서명을 한 뒤, 중요한 문구 수정이 있을 때마다 국회와 언론에 공개를 했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이 한-미 자유무역협정보다 중요하지 않은 사안이라 그랬다면 판단력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이고, 중요한데도 공개하지 않았다면 대국민 사기극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의 이런 태도는 자신이 궁극적으로 책임져야 마땅할 사안을 마치 제3자의 위치에서 남의 일을 논평하는 식으로 피해가는 이명박 대통령의 책임 회피 방법을 빼닮았다.
대통령이 마치 남의 일인 것처럼 책임을 피해가니, 청와대와 외교부, 국방부 관계자들도 변명이나 책임 떠넘기기에만 매달리는 건 당연하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금이라도 책임 소재를 가려 문책할 사람은 문책하고, 바로잡아야 할 것은 바로잡아야 한다. 하루라도 늦으면 늦을수록 ‘잘못은 있되 책임은 지지 않는’ 정부에 대한 심판은 더욱 준엄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