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국선언처럼 봇물 이룬 ‘국정 교과서 반대’
정부·여당의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움직임에 반대하는 교수·교사들의 선언이 봇물처럼 터져나오고 있다.
서울대 역사 전공 교수들이 포문을 연 뒤, 부산대·덕성여대에 이어 고려대 교수 161명이 16일 기자회견을 열었다. 17일에는 서원대 교수 47명이 가세했다.
초·중·고 교육현장에서도 역사 교사 2255명에 이어, 17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조합원·비조합원을 아우른 교사 1만5700여명의 반대 성명을 발표했다.
한 가지 사안을 두고 학계와 교육현장에서 이렇게 여론이 들끓는 건 근래 들어 드문 현상이다. 마치 군사독재 시절 연쇄 시국선언을 보는 듯하다.
고려대의 경우 교수들의 역대 공동성명 가운데 최대 규모라고 한다. 그만큼 보편적인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일 것이다.
성명서 내용 중에는 “정부에도 득이 될 게 없다”며 걱정하는 대목도 있다. 정치적인 차원의 반대가 아니라 나라와 역사를 생각하는 ‘공론’임을 보여준다.
물론 다른 견해도 있다. 17일 전·현직 교장들이 국정화 지지 성명을 냈다. 이들은 “검인정제는 이름만 다양이지 실상은 심각할 정도로 좌경화, 반 대한민국, 부정의 역사를 기록하며 민중사관으로 단일화돼 있다”거나 “의도적으로 근현대사에 기독교 역할을 폄하 내지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이 얼마나 실제와 부합하는지는 차치하더라도, 역사 서술에 대한 다양한 시각이 실재함을 증명하는 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만약 대다수 역사학자와 대학교수, 교사들의 반대를 누르고, 전·현직 교장 등 일부의 견해를 반영한 국정 교과서가 발행된다면 이야말로 독단의 교과서가 된다.
40여년 전 유신독재 체제에서 국사 교과서 국정화가 강행될 때도 수많은 학자·교사들이 반대했다. 그때의 논리도 지금과 다르지 않다. 다양성을 잃고 소수 학자의 독단이 지배할 것이라든가, 교과서 중심의 암기교육을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였다. 이는 실제 국정화 경험을 통해 입증됐다.
더욱이 세계적으로 국정 교과서가 퇴물이 되고, 검인정 체제를 넘어 자율성을 극대화한 자유발행제가 퍼져나가는 시대다. 유엔도 2013년 총회에서 ‘바람직한 역사교육 지침’을 밝히면서 “폭넓게 교과서가 채택돼 교사가 교과서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교과서 선택은 특정 이데올로기나 정치적 필요에 기반해서는 안 된다”고 못박았다.
오는 28일 유엔 총회 연설에 나서는 박근혜 대통령은, 이렇게 시대착오적인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하면서, 떳떳하게 그 자리에 설 수 있을지 돌아보길 바란다.
[ 2015. 9. 18 한겨레 사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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