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군 의혹(정치, 선거 개입)

초딩도 아는 감금과 잠금 차이, 검찰 정말 모르나?

道雨 2016. 6. 9. 16:04

 

 

초딩도 아는 감금과 잠금 차이, 검찰 정말 모르나?

[주장] 검찰, 국정원 여직원 감금사건 결심 공판서 야당 의원에 벌금형 구형

 

 

 

 

기사 관련 사진
▲ 경찰 협조 요청 거부하는 국정원 직원 대선을 앞두고 국정원 직원 인터넷 불법선거운동 의혹을 받고 있는 서울 역삼동 한 오피스텔에서 지난 2012년 12월 11일 오후 수서경찰서 권은희 수사과장이 "문을 열어 달라"며 협조를 요청하고 있으나, 안에 있는 국정원 여직원이 문을 잠근 채 협조를 거부하고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감금과 잠금.

 

이 둘의 차이는 따로 설명이 필요가 없을 정도로 명확하다.

감금은 물리력을 동원해 특정 대상을 외부로 나오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고, 잠금은 스스로의 의지로 문을 걸어 잠근 상태를 의미한다.

해수(海水)와 담수(淡水)의 차이 만큼이나 확연히 다른 두 단어의 의미를 두고, 벌써 수년째 치열한 공방이 오가고 있다.

8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30부(심담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국가정보원 여직원 감금사건'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이 사건에 연루되어 재판을 받고 있는 이종걸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강기정·문병호·김현 전 의원에게 벌금형을 구형했다. "압수수색의 소명자료도 없이 국정원 여직원의 출입을 막아 감금 행위를 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검찰은 야당 의원들이 국정원 여직원의 출입을 막은 것이 '감금 행위'에 해당된다고 주장했다. 이 모습은 당시 이 사건을 있을 수 없는 인권 유린 사건으로 몰고갔던 새누리당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저 둘은 사안의 중대성과 감금과 잠금의 차이를 분별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동소이하다.

감금 행위란 바깥에서 문을 걸어 잠그고 특정 대상이 외부로 나오지 못하도록 강제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스스로 문을 잠그고 밖으로 나오지 않은 국정원 여직원이 감금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억지에 지나지 않는다. 국정원 여직원은 감금된 것이 아니라 모두가 다 아는 특수한 목적을 가지고 본인이 스스로를 감금시킨 것이기 때문이다.

35시간 동안 지워진 대한민국 민주주의와 헌법 가치

축제가 되어야 할 대통령 선거를 불법이 난무하는 난장판으로 만들어버린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 국정원 여직원은 그 중심에 있는 인물이다.

그날 그녀가 오피스텔 안에서 무슨 짓을 했는지는 이미 언론을 통해서 명명백백하게 밝혀졌다. 은폐된 공간에 틀어박혀 헌법 질서를 파괴하고 민주주의 근간을 뒤흔들던 그녀는 자신의 신변이 노출될 위기에 처해지자 문을 스스로 걸어 잠갔다. 그리고 자신이 저지른 범죄의 흔적들을 하나하나 지워나가기 시작했다.

입에 담기조차 민망한 하수구의 언어를 야당 정치인과 특정지역을 향해 무차별 난사하던 그녀의 손이, 어느새 범죄의 증거들을 지우는 은닉의 도구로 탈바꿈한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황급히 삭제했던 것은 대선에 불법개입한 국정원의 흔적이 아니라 이 나라의 민주주의와 헌법 가치였다. 문이 굳게 걸어 잠긴 35시간 동안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헌법 가치 역시 지워지고 있었던 것이다.

국정원 사건은 정상적인 민주주의 국가에서라면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것이었다. 국가기관이 조직적으로 대선에 불법개입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나라 민주주의의 후진성이 여실히 입증되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놀라운 일들은 사실 그 이후에 벌어졌다. 국정원 사건의 진행 과정이 이 나라 민주주의의 위태로운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국정원 여직원의 꼬리가 밟히자, 새누리당과 당시 박근혜 후보는 이 사건을 '감금 사건'으로 규정하고, "성폭행범이나 할 수법", "화적떼" 등의 격한 수사를 동원해 국면 전환을 시도했다.

수사결과와 관련해 경찰에 모종의 압력을 행사하기도 했고, 이 와중에 박근혜 후보는 경찰의 수사결과를 미리 맞추는 신통한 예지력으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경찰은 관련 사실을 축소·은폐했고, 실체를 밝혀야 할 검찰은 사건 수사에 전혀 의지가 없었다. 이후 전열을 정비한 검찰의 전방위적인 수사는 청와대와 정부의 외압에 막히게 된다. 결국 검찰총장이 찍혀 나가고, 수사팀이 와해되는 우여곡절 끝에 수사는 흐지부지되고 만다.

국회 차원의 국정조사 역시 새누리당의 갖은 방해공작 끝에 누더기로 끝이 나고 말았다.

야당 의원에 벌금 구형...권력에 바짝 엎드린 검찰

이 일련의 과정이 의미하는 것은 결국 하나다. 이 나라는 정치 권력이 민주주의와 헌법이 구현하고 있는 가치보다, 사회공동체의 정의와 양심보다 훨씬 우월한 지위를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민주주의의 심장을 야금야금 갉아먹던 국정원 여직원의 천인공노할 범죄가, 검찰에 의해 또 다시 면죄부를 받게 된 것은 바로 그로부터 기인한다.

민주주의가 위태로워지자, 공의와 정의, 양심도 따라 힘을 잃고 있는 것이다.

감금과 잠금의 차이를 모르는 국민은 없다. 명석함에 있어 둘째라면 서러워할 엘리트 집단인 검찰이 그 차이를 모를 리가 없다. 그러나 정치 권력이 민주주의와 헌법 가치를 자신들의 발 아래에 놓고 있다면 사정은 달라진다.

이런 나라에서라면 검찰의 역할은 지극히 제한적이며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마음먹기에 따라 언제든 무죄가 유죄가 되고, 유죄가 무죄가 될 수 있는 나라에서, 잠금이 감금이 되는 것은 일도 아니라는 뜻이다.

초등학생들도 알고 있는 감금과 잠금의 차이가 국정원 사건의 중요 쟁점이 되고 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코미디에 견줄 만하다. 그리고 이 장면은 대단히 의미심장한 사실 하나를 우리에게 각인시킨다. 이 나라가 얼마나 비민주적인 나라인지, 그리고 정의에 취약한 나라인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검찰은 국정원 여직원의 출입을 막았다는 이유로 야당 의원들에게 벌금형을 구형했다. 권력에 바짝 엎드린 검찰의 모습에서, 나는 이 나라가 당분간 바뀔 가능성이 없음을 예감한다.

분하게도 내가 살고 있는 이 나라는 민주적이지도 정의롭지도 않다.

더욱 끔찍한 것은 이런 나라에서 내 아이들이 살아가야 한다는 거다. 이보다 더 아찔하고 무시무시한 악몽이 또 어디에 있을지 정말 모르겠다.

 

 

 [ 최봉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