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 사상 최초로 해임건의안 묵살한 ‘오기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이 25일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 수용을 공식적으로 거부했다. 이로써 박 대통령은 국회에서 가결된 국무위원 해임건의안을 묵살한 헌정 사상 첫 대통령이 됐다.
입법부 결정에 대한 존중이나, 과거 관례에 대한 고려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오직 ‘밀리지 않겠다’는 오기와 고집만이 번뜩인다.
박 대통령은 24일 장차관 워크숍을 주재한 자리에서 “이런 비상시국에 해임건의안을 통과시킨 것이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문제며 미르·케이스포츠 재단 의혹 등을 가리기 위해 끌어댔던 비상시국 타령을 또다시 되풀이했다.
사실 경제와 안보, 국민 안전 등 국정운영 전반에서 나라를 백척간두의 위기로 몰아넣은 책임은 박 대통령에게 있다. 겸허한 자세로 야당의 협조를 얻어 국가적 난제들을 타개해나가는 게 마땅한데도, 오히려 끊임없이 남 탓만 하는 박 대통령의 행태를 보면, 과연 비상시국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는지조차 의심스럽다.
박 대통령이 “상생의 국회가 요원하다”며 야당을 공격한 것도 마찬가지다.
박 대통령은 이런 비난을 하기에 앞서 상생과 협치를 위해 자신이 한 일이 무엇인지부터 설명해야 한다. 김재수 장관 문제의 경우도 애초 박 대통령이 국회의 부적격 판정을 받아들여 임명을 포기했다면 이런 사태에까지 이르지 않았을 것이다.
해임건의안 통과는 박 대통령의 오만과 불통이 빚은 업보인데도, 또다시 국회를 무시하며 상생을 들먹이니 혀를 찰 노릇이다.
새누리당이 해임건의안 통과를 핑계로 국회 일정을 거부하겠다고 나선 것은 더욱 어이없는 난센스다. 자격 미달 장관을 지키겠다고 민생을 내팽개치는 것이 과연 집권당이 취할 태도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여권은 국정감사를 중단시키면 미르와 케이스포츠 재단 설립 의혹 등에 대한 국회 추궁을 막을 수 있으리라는 계산도 하는 듯하다. 참으로 치사한 꼼수다. 그렇다고 정권의 치부가 가려질 리도 만무하다.
박 대통령의 ‘김재수 지키기’로 정국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혼미 상태에 빠져들었다. 가뜩이나 비틀거리는 국정운영은 더욱 큰 난관에 봉착할 것이다. 그리고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의 헛된 고집과 오기가 나라를 망치고 있다.
[ 2016. 9. 26 한겨레 사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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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수 해임건의안 전격통과...야3당 공조의 힘
정진석, 원내대표직 사퇴. 朴대통령의 DJ 비난이 결정타
국회 본회의에서 24일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건의안이 전격 통과됐다.
새누리당 의원들이 전원 퇴장한 가운데 진행된 무기명 표결에서, 총 170명이 참여해 찬성 160명, 반대 7명, 무효 3명으로 가결 처리됐다. 국민의당 다수 의원이 찬성표를 던진 것.
정세균 국회의장은 새누리당의 강력 반발 속에 차수를 변경해 이날 0시18분께 해임건의안을 상정 처리했다.
국무위원 해임건의안이 국회에서 의결된 것은 박근혜 정부 들어 처음으로, 임철호 농림부 장관(1955년), 권오병 문교부 장관(1969년), 오치성 내무부 장관(1971년), 임동원 통일부 장관(2001년), 김두관 행정자치부 장관(2003년)에 이어 헌정사상 6번째다.
국민의당이 당초 야3당 합의안을 깨고 해임건의안 제출에 불참하면서, 통과가 힘들 것으로 예산됐던 해임건의안이 이처럼 전격 통과될 수 있었던 것은, 박근혜 대통령이 22일 북한 핵개발 책임을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떠넘기면서 호남 민심이 격앙됐고, 이에 따라 국민의당도 해임안 통과 쪽으로 급선회했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김 장관 해임건의안의 가결에도 "해임건의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나, 이번에 야3당 공조의 위력이 과시된만큼, 박 대통령의 레임덕은 더욱 급류를 탈 것이라는 게 지배적 관측이다.
특히 해임건의안이 통과된 이후 장관직을 유지한 선례가 없어, 박 대통령이 해임을 계속 거부할 경우, 박 대통령과 야당간 충돌은 더욱 격렬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당연히 총력전을 폈던 새누리당은 '김재수 사수' 실패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며 반발했고, 야3당은 4.13총선후 최초의 야권 공조 성공에 만족감을 나타냈다.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는 이날 표결을 거부하고 본회의장을 빠져나온 뒤 기자들과 만나 "정세균 국회의장과 더불어민주당은 오늘 저지른 헌정사상 유례없는 비열한 국회법 위반 날치기 처리에 대해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면서 "협치는 끝났다"고 야당들을 비난했다.
그는 해임안 통과직후 의총을 가진 뒤 기자들과 만나 "오만하고 다수 의석의 횡포를 저지시키지 못한 책임을 통감해 집권여당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하겠다"고 밝혔다.
이정현 대표도 기자들에게 "결국 궁극적인 목표는 대통령을 무너뜨리려는 것"이라며 "지금 안보, 경제가 큰 위기에 처해있고, 지진으로 민생이 어려운 와중에, 야당은 엉뚱한 소리나 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반면에 더민주 우상호 원내대표는 해임건의안의 본회의 통과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박근혜 정권에 제대로 된 인사를 촉구하고, 일방통행식 국정운영이 아니라 소통하는 민주적 국정운영이 되도록 청와대와 대통령에게 보내는 국민 경고"라고 말했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도 "국민을 위해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 야권 공조가 굳건하게 이뤄진 것"이라며 야권 공조를 강조했다.
정의당 김종대 원내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이번 해임건의안이 가결되는 과정에서 다소 고비가 있긴 했지만, 오늘 야3당은 공조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며 "국민이 만들어준 여소야대의 의미를 깊이 새기며, 야3당 공조를 이어나가겠다"고 밝혔다.
최병성, 정진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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