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정부 '금융 4대 천왕' 나 지금 떨고 있니?
이팔성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 집에서 발견된 메모와 비망록이, ‘MB 정부’ 시절 이른바 금융권 ‘4대 천왕’을 소환하고 있습니다. 이 전 회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 사위와 형 등에게 총 22억5000만원을 건넨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검찰 수사 결과 거액을 전달한 내용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당시 금융권을 주물렀던 인물에 대한 조사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입니다.
■ 금융계 쥐락펴락하던 4대 천왕
MB 정부 때 4대 천왕은 강만수 전 산업은행 회장(73), 어윤대 전 KB금융 회장(73), 김승유 전 하나금융 회장(75), 이팔성 우리금융 회장(75) 등 4명을 일컫습니다. 당시 이들의 권세는 금융당국도 감히 견제하지 못할 정도였는데요. 4대 천왕이 군림하는 금융지주를 ‘MB금융지주’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금융감독당국 관계자들은 “영이 서지 않는다”며 불만을 토로할 정도였습니다. 물론 이들이 자리에서 물러난 뒤 각 금융지주들은 감독당국으로부터 수많은 지적사항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당시 4대 천왕은 누구도 자신이 ‘MB맨’이라고 당당하게 얘기하지 않았습니다. 실제 이팔성 전 회장은 10여년 전 낙하산 논란이 일자,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능력으로 평가해달라. MB맨으로 불리는 게 불쾌하다’는 식으로 말하기도 했습니다.
■ 고려대·소망교회로 엮은 MB
4대 천왕은 이명박 전 대통령과의 개인적 인연을 고리로 그 자리에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서울대를 졸업한 강 전 회장을 제외한 세 사람은 이 전 대통령과 고려대 동문이라는 공통점이 있어요. 김 전 회장은 이 대통령과 같은 경영학과 61학번입니다. 어 전 회장은 이 전 대통령의 2년 후배인 경영학과 63학번이구요. 이 전 회장은 법학과 63학번인데요, 이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일 때 이 전 회장이 서울시향 대표였습니다. 이 전 대통령의 대선 캠프 상근 경제특보를 맡기도 했습니다.
강만수 전 회장은 이 전 대통령과 함께 소망교회를 오랜 기간 다닌 인연이 있습니다.
■ 22억 주면 얼마나 챙길 수 있을까?
자리 청탁을 하면서 22억원을 뇌물로 건넸다면, 그 이상의 금액을 벌어들일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겠죠. 이팔성 전 회장은 우리금융 회장을 한 차례 연임해서 6년간 재직했습니다.
우리금융지주 사업보고서를 보면, 2009~2013년 이 전 회장이 받은 급여는 총 39억8500만원이었습니다. 2008년 취임했지만, 그 때는 급여 공개 의무가 없었던 것이죠. 6년간 공식적인 급여 40억원을 훨씬 웃돕니다. 급여 이외에도 금융지주 회장은 업무추진비가 매달 수천만원이라고 합니다.
이 전 회장은 2008년 당시 비망록에 MB에 대해 ‘돈을 받아 챙긴 것은 많으면서 해주는 것은 없다’고 적은 전해졌는데요, 실제로는 본전을 뽑고도 남은 셈입니다.
뇌물을 주고 자신의 자리를 청탁하는 인물이라면, 부하 직원을 상대로 인사청탁 로비를 받았을 것이라고 의심할 수 있겠네요.
금융소비자원은 보도자료를 통해 “이명박 전 대통령 시절 우리금융지주 이팔성 회장이 뇌물을 제공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돈에 ‘독이 오른 대통령과 100억원 이상의 수입을 얻을 수 있는 금융지주 회장 자리를 놓고 벌인 친구 간 윈-윈 거래’”라고 주장했습니다.
■ ‘총수 놀이’ 할 수 있는 금융지주 회장
사실 우리금융 회장의 연봉은 다른 민간 금융지주에 비해 많은 편이 아니었습니다. 어윤대 전 회장이 2013년 7월 KB금융에서 퇴임하면서 받은 6개월 근로소득은 급여 4억6200만원, 상여 5억2900만원 등 9억9100만원이었습니다. 상여를 제외한 급여만 봐도 매달 7000만원 넘게 받았네요. 2010년 무렵 민간 금융지주 회장 연봉은 10억원 안팎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강만수 전 산은 회장도 당초 민간 금융지주 회장으로 가고 싶어한다는 소문이 있었어요. 아무래도 공공보다 민간 최고경영자(CEO)의 연봉이 높기 때문이었죠.
공교롭게도 강 전 회장은 기획재정부 장관 재직 때 공공기관장 연봉 삭감을 주도한 인물입니다. 삭감된 산은 회장 연봉은 판공비와 성과급을 포함해 4억원가량이었죠.
그러나 MB의 또다른 측근들이 금융권에 버티고 있었으니 교통정리가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 결국 강 전 회장은 산은에 내려앉았는데요, 이후 재직 중 자신의 연봉을 인상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정권과 관련 없으면 가기 힘든 자리
지난해 말 이후 KB금융과 하나금융이 지배구조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KB금융은 윤종규 회장이 연임에 성공했고, 하나금융은 김정태 회장이 세번째 임기 개시를 앞두고 있습니다. 금융감독당국은 ‘금융지주 지배구조에 문제가 있다’ ‘회장 선출 과정이 적절치 않다’며 제동을 걸었습니다.
금융계 일부에서는 ‘관치’라며 반발했습니다. 과거 정권에서 회장을 지냈고, 현 정권 창출에 별다른 공이 없는 인물이 또 회장을 하겠다고 하니 정권 주변 인사들이 배아파 하고 있다고 여긴 것입니다. 실제로 정권이 바뀌고 나면 공공기관뿐 아니라 민간 금융기관의 CEO 자리도 탐내는 인사들이 많습니다.
■ 4대 천왕 이후 ‘서금회’ ‘부금회’…
MB 정부에 4대 천왕이 있었다면 박근혜 정부에서는 ‘서금회’가 있었습니다. 박 전 대통령이 나온 서강대 출신 인사들이 금융계 요직을 꿰찼거든요. 당시 서강대 출신 금융인으로는 이덕훈 전 수출입은행장, 홍기택 전 산업은행 회장, 이광구 전 우리은행장, 홍성국 전 미래에셋대우 사장 등이 있었습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부산 출신 금융인사 모임인 ‘부금회’가 주목받고 있습니다. 금융권에서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던 인사가 깜짝 발탁되는 사례가 많았는데요, 부산 출신이 많아서 그런 해석이 붙었습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선임된 부산 출신 금융인은 김지완 BNK금융지주 회장, 정지원 한국거래소 이사장, 이동빈 SH수협은행장, 김태영 은행연합회장 등입니다.
■ 다음 타깃은 일본행 준비 중인 김승유?
4대 천왕과 서금회 멤버의 상당수는 끝이 좋지 못했습니다. 서금회 멤버 가운데 이덕훈 전 행장은 뇌물수수 의혹으로 조사를 받고 있습니다. 이광구 전 행장도 채용비리와 관련해 중도에 사퇴했구요. 홍기택 전 회장은 국제기구인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부총재로 선임됐다가 중도에 사퇴했습니다.
4대 천왕 중 강만수 전 회장은 산업은행 재직 시절 각종 이권에 개입한 혐의로 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이팔성 전 회장도 곧 검찰에 소환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검찰은 이명박 전 대통령 사위와 대질 조사도 검토 중이라고 합니다.
이어 검찰수사를 받을 가능성이 높은 인물로 김승유 전 회장이 꼽힙니다.
검찰은 이 전 대통령의 다스 실소유주 의혹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하나은행이 다스의 불법자금을 2008년 대선자금으로 세탁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는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검찰은 1월 하나은행 경주지점에 이어 2월 인천 청라 하나금융전산센터 등을 압수수색해 전산자료를 분석하고 있습니다. 김 전 회장은 고령화 사회에 대한 연구를 위해 이달 중 일본으로 떠날 것이라고 합니다.
<안호기 기자 haho0@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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