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사법부, '상고법원 반대' 판사 재산까지 뒷조사
'영장없는 체포' 등 영장제도도 법무부 협상카드로 검토 정황
양승태 사법부는 상고법원 도입 반대를 주도하는 판사를 설득하려고, 광범위하고 집요한 압박 수단을 동원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외부기고를 했다는 이유로 법관윤리강령과 겸직허가 위반 여부를 조사하는가 하면, 현직 판사인 사촌형을 통해 설득에 나서고, 재산관계까지 샅샅이 뒤진 것으로 드러났다.
6일 법조계에 따르면, 이른바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이 불거진 계기가 된 차성안 판사(41·사법연수원 35기)에 대한 양승태 사법부의 끈질긴 뒷조사 정황이, 5일 법원행저처가 추가 공개한 사법행정권 남용의혹 문건을 통해 명확하게 드러났다.
시작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015년 8월 6일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오찬에서 상고법원 도입에 대해 면담을 하고 난 직후였다. 이 면담을 계기로 상고법원 도입에 대한 기대에 부풀었던 양승태 사법부는, 차 판사가 그해 8월 11일 법원내부통신망에 상고법원 반대글을 올리자 비상이 걸렸다.
차 판사의 글은 상고법원 도입으로 심리불속행제도가 폐지되면, 하급심 판단이 더 자주 뒤집힐 가능성이 높아져, 사실심 충실화에 반하게 된다는 내용이었다.
판사들이 차 판사의 글에 폭발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대법원이 추진하는 상고법원 도입보다는 법관 수를 대폭 증원하는 방향으로 재판제도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냈다.
가까스로 청와대를 설득한 양승태 사법부는 이처럼 법원 내부 구성원의 반대에 부딪히자, 상고법원 도입에 협조하도록 차 판사를 설득하기로 했다.
설득작업에 나선 이는 임종헌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이었다. 임 전 차장은 법원행정처 심의관에게 차 판사를 설득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도록 지시했다.
해당 심의관은 차 판사가 동료 판사들과 주고받은 메일 등을 입수해, 8월 18일 '차성안 판사 게시글 관련 동향과 대응 방안'이라는 문건을 작성해 임 전 차장에게 보고했다.
이 심의관은 문건에서 상고법원에 대한 충분한 검토를 마친 차 판사를 설득하려면 법원장이나 지원장 등 선배법관을 통한 논리적 설득이 필요하다고 보고했다.
차 판사의 사촌 형인 차문호 부장판사를 동원해 설득하는 방안이 시도됐다. 하지만 차성안 판사가 상고법원 도입에는 법관 대폭 증원에 대한 논의가 빠져있다며 반발하면서 실패로 돌아갔다.
이후 차 판사가 오히려 법원 내부통신망 뿐만 아니라 언론기고를 통해 상고법원 도입을 반대하는 등 활동 폭을 넓히자 임 전 차장의 대응은 설득에서 압박으로 급선회했다.
임 전 차장의 지시를 받은 법원행정처 심의관은 '차성안 판사 시사인 칼럼 투고 관련 동향과 대응 방안' 문건에서 차 판사의 외부기고가 법관윤리강령에 위반되지 않는지를 검토했다.
검토결과 '법관의 품위나 공정성, 자기절제, 균형잡힌 사고를 일탈했다고 평가하기 어려워 법관윤리강령 위반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결론이 났다.
임 전 차장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법원 윤리감사관실을 동원해, 차 판사의 외부기고가 판사의 겸직허가 규정을 위반한 것이 아닌지도 검토했다.
하지만 윤리감사관실도 판사가 겸직허가를 받지 않고 외부기고한 사례가 많아, 차 판사에게만 이를 적용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또 법관윤리 위반이나 공정성 유지의무 위반, 정치적 중립의무 위반도 해당하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려 임 전 차장에게 보고했다.
이후 차 판사에게 별다른 조처를 하지 않던 임 전 차장은 이듬해 4월 6일 다시 윤리감사관실을 통해 차 판사의 재산관계를 뒷조사하는 무리수를 둔다. 차 판사의 연도별 재산 총액을 그래프로 작성하는 등 재산관계에 특이사항이 존재하는지를 파고 들었지만 별다른 문제점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이에 대해 임 전 차장은 특별조사단에 "차 판사가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판사를 오래하지 못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재산관계를 검토해보라고 지시했다"고 해명한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특별조사단은 임 전 차장의 진술은 믿기 어려우며, 차 판사에 대한 뒷조사 차원에서 재산관계를 검토한 것으로 보인다고 최종 결론 내렸다.
피해 당사자인 차 판사도 특별조사단의 조사결과 발표 다음날인 지난달 26일 자신의 SNS를 통해 "형사소송법상 공무원이 직무상 범죄를 발견하면 고발할 의무가 있다"며 "특조단이 형사고발 의견을 못 내겠고, 대법원장도 그리 하신다면, 내가 국민과 함께 고발을 하겠다"고 밝혔다.
이 밖에 법원행정처가 공개한 문건에는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체포·구속·압수수색 영장 제도나 사법정책의 차원에서 법무부·검찰에 유리한 방안을 협상 카드로 내민 정황도 드러나 있다.
양승태 대법원장과 박근혜 전 대통령의 면담 이후 작성된 'VIP 면담 이후 상고법원 입법추진 전략' 문건에는 박 전 대통령이 상고법원 도입 협의 파트너로 법무부를 지목하자, 법무부가 관심을 둘 만한 '빅딜(Big Deal)' 카드를 제시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당시 법원행정처는 사법부가 수용할 만한 방안으로 '영장 없는 체포 활성화 및 체포 전치주의(구속을 위해 체포가 선행되는 제도) 도입', '체포 후 계속 신병 확보 필요성 등 심사', '기소 전 보석제도와 함께 영장항고제 도입' 등을 제시했다.
디지털 증거 압수수색 절차를 효율화하고 공안사건 등에 증거능력 인정 특례를 확대하는 등 검찰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고, 대법원 재판연구관으로 검사를 보임시켜 조직 확대에 도움을 주겠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법원행정처는 법무부와 협상 과정에서 청와대에서 중재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인물로 이명재 민정특보를 지목하고, 주요 고비에서 성의있는 협상 태도를 촉구하거나 법무부·민정수석의 반발을 완화할 수 있을 것이라 분석하기도 했다.
여론몰이로 법무부 등을 압박하기 위해 조선일보 등 이른바 '메이저 언론사'의 기사를 활용하고, 법률안 처리를 위해 법사위원장이나 중량급 의원의 도움을 요청한다는 전략도 기획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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