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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파견 판사, 그는 정보요원이었다

道雨 2019. 8. 27. 11:27




헌재 파견 판사, 그는 정보요원이었다




정보요원이 된 판사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이 22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판사가 아니라 정보요원이었다.

헌법재판소에 연구관으로 파견된 판사 이야기다.


2017년 정기인사 정책 결정-헌재 파견 법관 선발문건에는, 법관을 헌재에 파견해 얻을 수 있는 장점으로, 헌재 내부 토론 및 평의 관련 정보를 수시로 수집하고 보고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대법원의 최고 사법기관지위를 헌재에 빼앗기지 않으려는 게 목적이었다.


헌법재판소법은 내부 토론과 평의 관련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다고 규정한다.

이 문건은 법원행정처 인사총괄심의관실이 작성하고, 임종헌 전 차장과 고영한 전 처장,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결재했다.


2015~2017년 헌재에 파견된 판사 중 부장급은 단 1명이다. 최희준 판사(47). 부장급을 파견한 이유는 헌재의 내밀한 정보를 빼내기가 쉽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법원행정처 문건엔 부장연구관은 모든 헌법재판관의 업무를 보좌하고, 중요 사건에 관여도가 높다고 쓰여 있다.


최 판사에게 정보를 넘겨받은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 업무수첩에는 보안을 위해 적극적이고 융통성 있는 법관을 활용한다는 박병대 전 처장의 지시사항도 적혀 있다.

최 판사는 2015·2016년 평정이 이었다. 헌재 파견 판사는 임기가 2년이지만 최 판사는 능력이 인정돼 3년 있었다.


양승태 대법원은 법원 조직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판사를 원했고, 최 판사는 이를 잘 수행해냈다. 최 판사가 준 정보를 이용해, 양승태 대법원은 헌재에 대응할 계획을 만들었다.

법원을 위해서라는 말로 모두가 움직였다.

지난 22일 이 전 상임위원 재판에서 상세한 증거들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재판관 평의 깨알 정보보고

3년간 파견됐던 최희준 판사

선고 전 심리과정 실시간 전달

부장연구관 막강한 직위 이용

헌재서 공유 안된 내용 통째 유출



최 판사가 이 전 상임위원에게 넘긴 헌재 정보들은 단순한 동향 수준이 아니다.

법정에 나온 증거들을 보면, 최 판사는 헌재 재판관들 기본 성향부터 특정 사건에 관한 재판관들의 생각, 심리 종결과 선고 시기까지 보안을 유지해야 하는 정보들을 속속 전달했다.


민주화운동보상법 사건에서는 합헌 5, 단순위헌 2, 유보 2(20159월 법원행정처 문건), 군형법 사건에서는 박한철·이정미·안창호·서기석 재판관이 합헌 의견(20166월 최 판사가 보낸 e메일) 식이다.

선고 전 심리 과정이 실시간으로 흘러나갔다.


헌재에서 공유되지 않은 내용도 통째로 넘어갔다.

본격적인 심리에 들어가기 전에 만들어지는 사전심사보고서는 헌재의 모든 연구관이 접근할 수 있지만, 심리에 착수한 뒤 만들어지는 연구보고서와 추가보고서는 선고 전에는 자신에게 배정된 사건이 아니면 접근할 수 없다.


부장연구관만 모든 사건에 대한 접근 권한을 가졌다. 최 판사는 부장연구관이었다. 20167월 최 판사는 이 전 상임위원에게 e메일로 긴급조치 사건 관련 정보를 알려주면서 보고도 되기 전 상태라 보고서 내용은 물론 토론 결과도 보안이 매우 중요합니다라고 썼다.


법원행정처로 넘어간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심판 관련 정보는 다른 사건들보다도 양이 방대하다. 쟁점에 대한 재판관들 의견, 내부 동향 정보뿐만 아니라, 변호인 선임신고서·이의신청서·준비서면 등 자료들을 최 판사는 법원행정처에 보냈다.

최 판사는 법원행정처에서 요구가 있었고, 관성에 따라 계속 보냈다부적절한 정보가 많이 제공됐다고 했다.


일부 정보는 대법원 밖으로도 나갔다.

2015년 임 전 차장이 한일협정의 위헌 여부가 쟁점인 헌법소원 사건을 연내 선고한다는 정보를 최 판사에게 받아 김앤장 법률사무소에 알려준 정황도 있다.

김앤장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일본 기업을 대리했다. 한상호 변호사는 임 전 차장으로부터 연내 결론이 난다고 들었다고 인정했다.



헌재 재판 기능 약화시키자

양승태, 행정처 지시 문건에는

젊은 법관을 재판관으로 지명

마지막 자리 아니란 인식 공유

대법원장의 재판관 지명권 악용



시작은 양 전 대법원장이다.

(), 연구관-완충역할, 정보역할, 위헌판단 신중(재판관들).

이 전 상임위원 업무수첩 2015225일자에는 이런 문구가 있다. 는 양 전 대법원장을 뜻한다. 이 전 상임위원은 검찰 조사에서 양 전 대법원장이 헌법재판관들이 위헌 판단에 신중해질 수 있도록 파견 법관들이 완충역할을 해야 하고, 파견 법관들이 정보를 대법원에 잘 전달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진술했다.


이 진술에서 드러나듯 양 전 대법원장은 헌재의 한정위헌결정을 막으려고 했다. 한정위헌은 법률 조항이 아니라, 법률 조항에 대한 법원의 해석이 위헌이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이 전 상임위원은 또 양 전 대법원장이 헌재에 합리적 대처수단이 아닌 비상적 대처수단을 강구하라고 지시했다고 했다. 이 지시에 따라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실은 헌재 관련 비상적 대처방안 검토(대외비)문건을 만들었다.


문건에는 헌재를 망가뜨리려는 노골적인 방안들이 담겼다.

대법원장의 헌법재판관 지명권과 대법관 제청권을 이용하는 방안이 대표적이다. 40세를 간신히 넘긴 법관을 재판관으로 지명해 헌재 권위를 떨어뜨린다거나, 헌법재판관 출신을 대법관으로 제청하는 방법이 문건에 제시됐다.

헌법재판관이 마지막 자리가 아니라는 인식의 공유라는 문구가 함께 나온다. 지명권·제청권을 가진 대법원장 말을 잘 들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친법원 인사를 재판관으로 지명하기 위한 법관 상비군을 만들 계획도 나온다.



헌재 결정과 정반대 취지 판결

무시전략으로 헌재 약화 노려


헌재의 업무방해죄 관련 한정위헌 결정에 대비해 만든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실 작성 문건은 한 발 더 나아간다.

헌재의 재판기능을 약화하는 방안으로 극단적 무시전략을 검토했다. 문건에는 헌재 결정으로 재심 대상이 된 사건들을 기각해버리는 방안, 판결 이유에서 일언반구도 하지 않고 헌재 결정과 정반대 취지의 판결을 하는 방안 등이 적혀 있다.


이 같은 방안이 실현되려면, 법원행정처가 일선 법원의 특정 재판에 개입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법관의 독립을 정면으로 해치는 내용이다.

문건에는 법원에 계류 중인 소송사건의 적절한 활용이라는 문구도 있다. 이는 나중에 통합진보당 소송 관련 재판 개입으로 이어진다.

박한철 헌재소장에 대한 좋지 않은 소문을 활용하는 방법도 문건에 나온다.



헌재 정보 스스로 넘겼다


(헌재 파견 법관의) 인사평정권자는 법원행정처 차장이다. 그 점을 잊지 말라. 법원과 관련된 민감하고 중요한 정보는 그때그때 전달해달라.


최 판사는 20153월 이 전 상임위원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고 검찰에서 진술했다. 강형주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이 만든 헌재 파견 법관들과의 오찬 자리에서 나온 얘기라고 했다.

그런데 검찰 조사 때까지만 해도 최 판사가 그렇게 말했다면 맞을 것이다라고 했던 이 전 상임위원은, 재판에 와서는 입장을 바꿨다. 자신이 인사평정이야기를 한 사실이 없다고 부인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실관계를 인정하고 검찰 수사에 적극 협조한 이 전 상임위원이 인사평정이야기를 부인하는 이유는 직권남용죄 성립 때문이다.

이 전 상임위원 측 변호인은 법정에서 대법원장이나 법원행정처, 이 전 상임위원이 파견 법관에 대해 구체적으로 어떤 직권을 갖고 있고, 어떻게 남용됐는지가 명백히 확인돼야 한다고 했다.


이 전 상임위원은 최 판사가 스스로 정보를 줬다고 주장한다. 다른 변호인은 최 판사는 (이 전 상임위원이) 요청하는 것보다 항상 더 많은 자료를 보내줬고, 요청과 무관하게 보낸 것이 많다고 말했다. 최 판사가 스스로 법원 조직에 헌신하는 마음이 강했고, 이 전 상임위원 외의 다른 법관들에게도 헌재 정보를 제공했다면서 자신의 정보 제공 요구가 직권남용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실 심의관으로 있으면서 헌재 문건을 작성한 문성호 판사는 옳지 않은 모습을 보면서도 윗분 지시를 따르지 않을 순 없는 상황이었다많은 자괴감을 느꼈다. 제대로 된 집단이라면 이런 보고서를 보내면 엄히 훈계하고 질타했을 텐데라고 검찰에서 진술했다.


이 전 상임위원과 최 판사는 사법농단으로 검찰 수사를 받고 나서야 잘못을 인정했다.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다만 당시는 법원행정처 내부 분위기상 문제의식을 크게 느끼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헌재 내부 정보를 최대한 입수하는 게 저의 임무라고 생각했고, 이는 양 전 대법원장과 박 전 처장의 지시 때문이었습니다.(이 전 상임위원)

헌재를 논리로 설득하는 데 이용한다고만 생각했지, 청와대 등 외부에 전달하거나 언론을 이용한 것은 잘못됐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목적으로 (정보가) 이용된 게 가장 괴롭습니다.(최 판사)

양 전 대법원장은 구체적인 내용을 몰랐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