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지'는 '생각지', '만만하지'는 '만만치'로 주는 이유
[가겨찻집] ‘-하다’에서 ‘-하’의 줄임에 관하여
▲ 구미 시정소식지 <공감누리> 11월호에 실린 사진과 설명. "짐작하게"의 줄임말을 "짐작게"로 정확히 썼다.
외출했다 돌아오는 길에 아파트 현관 승강기 옆에 놓아둔 구미시 시정 소식지 <공감누리>를 집어왔다. 가져와도 알뜰히 읽는 일이 드물어서 굳이 가져오지 않는 편인데, 오늘 그걸 집어든 것은 표지가 눈길을 끌었기 때문이다. 표지에 실린 사진은 국보 130호 구미 죽장리 오층석탑의 야경이다.
'짐작하게'를 줄이면 '짐작게'
승강기를 타고 오르면서 표지를 넘기니, 뒷면은 해평면 금산리에 있는 상어굴 사진이다. 베틀산이라는 산에 커다란 상어가 입을 벌리고 있는 모양의 굴인데, 상어굴이라는 이름이 붙은 건 베틀산이 아득한 옛날엔 산 아닌 바다였음을 짐작게 한다고 씌어 있다. 내가 눈을 번쩍 뜬 것은 베틀산 상어굴 때문이 아니라, '짐작하게'가 준 형태인 '짐작게'를 정확하게 표기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아득한 옛날, 베틀산은 산이 아닌 바다였음을 짐작게 하죠.
사람들은 대개 이 '짐작게'를 [짐작케] 정도로 읽고, '짐작케'라고 쓴다. 그런데 시청에서 낸 소식지에 이게 정확히 쓰인 걸 보니 놀랍고 유쾌했다. 지자체에서 만든 문건이 얼마나 비문투성이인가 하는 건 해당 지자체의 문화관광 누리집에 가보면 확인할 수 있다.
옛날에 두 남매가 살고 있었는데 서로 재주를 자랑하다가 오빠는 다른 곳에서 누이 동생은 죽장사에서 석탑을 세우게 되었는데 누가 먼저 세우는가 내기를 걸어 경쟁을 하였는데 누이가 먼저 우아하고 웅장한 이 석탑을 세워서 이겼다는 전설이 있다.
- 구미시 문화관광 누리집의 '전설·설화' 중 '탑쌓기(죽장리 오층석탑)' 중에서
세상에, 서너 개의 문장으로 써야 마땅한 이야기를 단 한 문장으로 줄이는 신공(?)을 베풀었다. 당연히 이 문장은 그야말로 '택도 없는' 비문이 될 수밖에. 그런데, 위의 '짐작게'가 쓰였으니 탄복하지 않을 도리가 없지 않은가.
한글맞춤법 40항 - '하'가 주는 방식 규정
'짐작하게'가 '짐작게'로 주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축약'과 '거센소리되기' 현상을 설명하는 한글맞춤법 조항은 40항이다. 40항은 '간편하게'는 '간편케'로 줄고, '거북하지'는 '거북지'로 주는 현상을 설명하고 있는 바, 그 고갱이는 "어간의 끝음절 ①'하'의 'ㅏ'가 줄거나 ②'하'가 통째로 주는 경우"다.
▲ 한글맞춤법 제 40항의 일부
그림에서 보듯 ①은 '간편하다·다정하다·연구하다·정결하다·가하다·흔하다' 등은 '하'의 'ㅏ'만 주는 경우다. 모음이 줄면서 'ㅎ'은 뒤에 오는 어미 '-게·-다·-도·지' 등과 어울려 '거센소리' '-케·-타·-토·-치' 등의 거센소리가 되고, 이때 표기도 거센소리로 적는다는 규정이다.
②의 예는 '거북하다·넉넉하다·생각하다·못하다·섭섭하다·깨끗하다·익숙하다' 등이 '거북지·넉넉지·생각지·못지·섭섭지·깨끗지·익숙지' 등으로 읽고 그렇게 쓰는 경우다.
그럼 이는 어떻게 구분할까. ①에 쓰인 용언은 모두 어근(하다 앞부분)의 끝소리가 'ㄴ, ㅇ, 모음, ㄹ' 등이다. 즉 '목청을 떨어 공기가 울리게 나는 소리'인 '울림소리[유성음(有聲音)]'다. 국어의 자모 가운데 울림소리는 자음 'ㄴ·ㄹ·ㅁ·ㅇ'(보통 중고교에서 이를 가르칠 때 기억하기 쉽게 '나라마음' 등으로 외우게 한다)과 모음 전부다.
울림소리 뒤에선 '치'로 안울림소리 뒤에는 '지'로
②는 어간의 끝소리가 'ㄱ·ㅅ·ㅂ' 등이다. ①과 견주면 '목청을 떨지 않고 내는 소리', 즉 '안울림소리'[무성음(無聲音)]이다. 울림소리 뒤에서는 '하'의 'ㅏ'만 줄고, 안울림소리 뒤에선 '하'가 통째로 주는 것이다. 이것만 기억하면 맞춤법에 맞게 쓰기는 어렵지 않다.
▲ 어간의 끝음절 "-하"의 줄임
그럼 다음 용언은 각각 어떻게 축약되는지 생각해 보자. 정답은 맨 아래에 있다.
⑴기억하지 → ( ) ⑵부지런하다 → ( )
⑶달성하고자 → ( ) ⑷청하건대 → ( )
⑸대답하지 → ( ) ⑹분발하도록 → ( )
⑺감탄하지 → ( ) ⑻생각하건대 → ( )
⑼당하지 → ( ) ⑽비슷하지 → ( )
실제로 안울림소리 뒤에 '하'가 통째로 주는 경우는 일상에서 그리 많이 쓰이지 않는다. 그러나 귀에 선 말이라도 안울림소리 뒤의 '하'는 반드시 주는 거로 판단해 써도 된다. 위에 질문지에 든 '비슷하다'는 "형과 동생은 비슷하지도 않다"에서 '비슷하지도'를 '비슷지도'로 줄여도 된다는 말이다.
한편 이들 '-하'의 축약은 부정 표현에선 한 번 더 줄기도 한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갑갑지 않다'가 줄면 '갑갑잖다'가 되는데, 이를 '갑갑쟎다'로 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잖'과 '-찮'을 헷갈려 하는 이들도 많은데, '-잖'은 '-지 않-'의 줄임말이고 '-찮-'은 '-하지 않-'의 줄임말이다.
· 갑갑하지 않다 → 갑갑지 않다 → 갑갑잖다
· 깨끗하지 않다 → 깨끗지 않다 → 깨끗잖다
· 넉넉하지 않다 → 넉넉지 않다 → 넉넉잖다
· 답답하지 않다 → 답답지 않다 → 답답잖다
· '-잖' : '-지 않-'의 준말 예 : 반갑잖다(← 반갑지 않다)
· '-찮' : '-하지 않-'의 준말 예 : 편찮다(← 편하지 않다)
그거 하나 바로 쓰는 게 무어 그리 중요하냐고 반문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그 하나를 제대로 쓰기 시작하면 의식적으로 '바른 말글 쓰기'가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건 꽤 쓸모 있고 기분 좋은 경험이다. 한번 경험해 보시라.
▲ 모범답안
장호철(q9447)
'생활상식,유용정보'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국민연금의 '재직자 노령연금 감액제도' (0) | 2021.06.26 |
---|---|
투명페트병 분리배출 계도기간 종료...오늘부터 과태료 최대 30만원 (0) | 2021.06.26 |
식약처 "코팅 벗겨진 프라이팬 새 제품으로 교체하세요" (0) | 2019.09.19 |
벨기에의 국가 (0) | 2017.12.27 |
충전지 수명 다한 것 살리는 방법 (0) | 2017.10.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