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 감별법과 ‘집게손’의 착시
다음 중 중세부터 근세까지 사용된 유럽의 마녀 감별법이 아닌 것을 고르시오.
(1)손발을 묶어 물에 던진다,
(2)바늘로 온몸 구석구석을 찌른다,
(3)불로 달군 쇠판 위를 걷게 한다,
(4)성경을 소리 내 읽게 한다.
정답은 ‘없다’이다. 넷 다 마녀 감별사들이 ‘애용’한 방법이다.
왜 아니었겠나. 용의자로 지목만 하면 아무도 빠져나갈 수 없게 설계된 만능 덫이거늘.
마녀 용의자는 물에 가라앉으면 그대로 죽고, 혹 부력으로 떠오르면 마녀로 감별돼 처형됐다. 바늘에 찔리다 고통에 못 이겨 마녀라고 실토해도, 어쩌다 감각이 없는 곳을 찔려 가만있어도 또한 마녀이기에 죽음을 비켜 갈 수 없었다. 쇠판 위에서 죽지 않고 요행히 살아 내려오면 불에도 죽지 않는 마녀가 틀림없으므로 화형됐다. 불로 달군 쇠판 위에서 죽지 않는데 화형을 시키는 모순쯤은 대수롭게 여겨지지 않았다. 문맹률이 95%이던 시대에 성경을 소리 내 읽게 했다는 건 곧 백성의 95%를 잠재적 마녀로 간주했다는 얘기다.
지금 보면 어처구니없지만, 1487년 독일 쾰른대 학장 야코프 슈프렝거와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대 신학교수 하인리히 크라머가 출간한 <마녀의 망치>를 비롯해 유수의 식자층으로부터 학술적인 뒷받침까지 받았다. <마녀의 망치>는 182년 동안 36차례나 개정판이 나올 만큼 대단한 스테디셀러의 위상을 누리며 유럽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인본주의가 꽃을 피운 르네상스 시대(14~16세기)에 마녀사냥이 극성한 사실도 이 희생제의가 합리적 이성과 전적인 대립관계가 아니었음을 암시한다.
18세기 중반까지 처형된 마녀 수가 50만명에 이르는데, 이 가운데는 남성들도 여럿 있었다. 마녀는 여성으로 간주됐지만, 생물학적인 성 범주를 넘어 사회구성적인 성 범주이기도 했던 셈이다.
마녀사냥의 배경에 대중의 불신과 불만을 약자에게 투사시키려는 기득권 세력의 전략이 있었음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남성 비하의 상징이라는 ‘집게손’에 대한 시비가 국방부의 ‘거수경례’ 홍보물로까지 비화했다. 처형은 거침없다. 손 모양을 형상한 어떤 이미지물도 더는 사냥에서 자유롭지 못할 기세다.
지식 총량이 압도적인 21세기에 ‘무지몽매’만 탓할 일인가.
착시를 일으키는 만능 덫의 배경을 드러내는 게 급선무다.
안영춘 논설위원 jona@hani.co.kr
원문보기: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997240.html#csidx92b69c5faab8f3e968c26e723b5319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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