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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그날 경찰은 어디를 보고 있었나

道雨 2022. 11. 22. 15:59

이태원 참사 그날 경찰은 어디를 보고 있었나

 

 

경찰은 이태원에 인파가 몰릴 것을 알고 있었다. 경찰에 책임을 묻는 것은 진상규명의 종점이 아니라 시작점이다. 〈시사IN〉은 입수한 자료를 토대로 ‘그날의 경찰’을 복기했다.

 

 

 

경찰은 알고 있었다. 핼러윈 기간 이태원 거리에 수많은 인파가 별도의 주최자 없이 몰릴 것이라고 예상했다.

사고든 사건이든 돌발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주고받았다. 예년과 비교한 상황 분석과 대응 방향, 세부 계획을 담아 종합대책을 만들었다.

참사 4시간 전부터는 ‘압사’를 암시한 112 신고가 빗발쳤다. 그러나 참사 이전에도, 직후에도 현장에 경찰은 부족했고, 대응은 부실했다.

 

‘그날 경찰은 어디에 있었나’ ‘경찰은 어디를 바라보고 있었나’. 이 질문은 그래서 중요하다.

국민을 안전하게 보호할 의무를 가진 공권력이자 재난 대응의 한 축인 경찰 동선과 시선에 대한 질문은, 결국 ‘국가는 어디에 있었나’로 연결된다.

 

진상규명의 시간이 시작됐다.

1차적으로 경찰에 책임을 묻는 것은 진상규명의 종점이 아니라 시작점이다. 〈시사IN〉은 더불어민주당(민주당) 이태원 참사 대책본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행안위) 소속 개별 의원실 등으로부터 입수한 자료를 토대로 ‘그날의 경찰’을 복기했다.

 

 

참사 당일인 10월29일 서울 주요 지역에 경찰 기동대 81개 부대가 배치됐다. 숙련된 경찰관 기동대 69개, 의무경찰 중대 12개였다. 서울청 소속 기동대는 총 59개. 서울 지역 기동대 전체가 움직였다. 모자라는 부대는 경기 남부경찰청, 인천경찰청에서 지원받았다.

 

1개 기동대는 휴가·병가·행정요원을 제외하고 60명 정도다. 단순 계산으로 이날 투입된 기동대는 4860여 명이다. 서울경찰청은 81개 기동대를 쪼갠 뒤, 다시 재구성해 부대 수를 늘려 ‘주요 상황’과 ‘거점 근무’ ‘외국 공관 등 주요 시설’로 나눠 분산 배치했다. 서울경찰청 경비과가 기동대를 어디에 얼마나 배치할지 상세히 정리한 9쪽 분량의 ‘10월29일 경력 운용계획’ 문건을 통해 확인됐다.

 

경찰이 인력을 집중 운용한 곳은 ‘주요 상황’이다. 총 70개 기동대(4200여 명)를 배치했다. ‘주요 상황’으로 분류한 것은 집회·시위다. 앞서 총 21개 단체가 참사 당일인 10월29일 서울 도심권 곳곳에서 집회·시위를 연다고 신고했다.

경력 운용계획 문건에 따르면, 이날 1000명 이상의 인원이 참여한다고 밝힌 집회는 총 7건이었다.

경찰은 이 가운데 한국노총·민주노총 공동대책위원회, 촛불승리전환행동, 자유통일당, 신자유연대 등 4건의 집회에만 총 4만8700명이 모일 것으로 예상했다. 양대 노총과 촛불승리전환행동, 자유통일당 3곳은 서울 광화문에서 용산 대통령실 인근 삼각지까지 행진을 하겠다고 신고했다. 경찰은 이 집회들을 ‘주요 상황’ 최상단에 올렸다. 나머지 집회의 참여 인원은 적게는 10명, 많게는 200명으로 내다봤다. 경찰이 전망한 21개 집회 총 참여자 수는 4만9595명이었다.

 

‘거점 근무’ 대상지는 서울 광화문과 용산·여의도와 서초 등 4개 지역이었다. 14개 부대(840여 명)가 4개 지역에 분산 배치됐다. 광화문과 용산·여의도는 경찰이 집회·시위 대응을 위해 지정한 지역들이다.

서초는 윤석열 대통령 자택 앞이다. 자택에 배치된 기동대는 대통령 자택, 관저 경비 임무를 맡은 대통령경호처 인력(202경비단)과 별개다. 2개 기동대가 10월29일 오전 8시부터 근무했다. 경기 남부경찰청 소속 기동대 2개가 지원을 위해 대기한다는 계획이 포함됐다. 경찰이 기동대 투입을 계획한 서울 집회 21건 가운데 윤 대통령 자택 앞, 또는 서초 지역 집회 일정은 없었다. 경찰은 그 밖에 미국 대사관과 대사관저 등 주요 시설에 13개 기동대를 배치했다.

 

 

 

 

질서 유지보다 ‘마약 단속’ 지시  

 

서울청 경비과가 작성한 경력 운용계획에 ‘이태원’이라는 단어는 나오지 않는다. 용산 대통령실 인근 4만9595명이 모이는 집회·시위에 서울 전체 기동대를 투입한 경찰은, 13만여 명이 한 공간에 모인 이태원에는 기동대를 동원하지 않았다.

 

경찰은 이태원에 인파가 몰릴 것을 알고 있었다. 서울경찰청과 이태원 관할 용산경찰서는 핼러윈을 앞두고, 이태원을 중심으로 한 분석 보고서를 만들었다. 이는 ‘핼러윈데이 치안여건 분석 및 대응방안 보고(10월26일, 서울청)’와 ‘2022년 이태원 핼러윈데이 치안상황 분석과 종합 치안대책(10월25일, 용산서)’ 문건에서 확인된다. 서울청과 용산서는 매년 핼러윈 기간을 앞두고 대책을 준비해왔다.

 

문건을 보면, 서울청과 용산서는 핼러윈 기간 이태원에 인파가 몰린다는 점과, 각종 사건사고가 크게 늘어날 것을 예상했다. 서울청은 “핼러윈 특화 상권이 회복되면서, 2021년부터 핼러윈 기간에 신고가 2배 이상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추세”라고 분석했다. 용산경찰서는 “곳곳에 인파가 운집하여 무질서와 사건·사고가 빈발”한다며, 대응 방향으로 “도로상 교통 무질서 행위 예방·단속 활동 실시, 가용 경력 총동원해 핼러윈 불법·무질서에 엄정 대응”이라고 적었다.

 

참사 당일 이태원에 배치된 경찰은 총 137명에 불과했다(〈시사IN〉 제789호 ‘참사 당일 경찰, 마약단속팀 계획보다 3배 투입한 이유’ 기사 참조). 인파가 몰릴 것을 예상했음에도, 용산 대통령실 인근에서 마무리되는 집회·시위에 배치된 경찰 인력과 비교해 턱없이 부족한 수를 배치했다.

 

137명 가운데 69명은 형사·외사·생활안전·여성청소년과 소속 경찰관들로, 질서 유지와 무관한 인력이다. 참사 당일 이들은 정복을 입고 호루라기와 경광봉을 드는 대신 사복 차림으로 근무했다.

사복 경찰관 가운데 50명은 참사 당일 오후 8시48분께 마약 단속을 위해 이태원에 투입됐다. 참사 장소 인근에서 순찰 활동을 했다. 클럽 마약류 점검·단속이 예정돼 있었으나, 참사가 발생하면서 취소됐다.

참사 발생 직후에도 마약 단속 경찰관들에게 상황 전파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경찰이 임호선 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답변서를 보면, 참사 발생 최초 신고 29분 뒤인 오후 10시44분께, 순찰 중이던 마약단속팀 일부 형사가 참사 현장을 ‘목격’했고, ‘자체 판단’으로 구조 활동에 참여했다.

 

질서 유지는 나머지 68명의 정복 경찰이 맡았다. 교통기동대 20명이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이날 열린 집회·시위 현장 근무를 마치고 이태원에 배치되는 것으로 처음부터 계획되어 있었다.

48명에 불과한 경찰관들이 참사 직전까지 13만명 인파와 각종 112 신고 대응을 전담해야 했다. 특히 참사 당일 오후 6시34분, 압사 위험을 알리는 첫 신고가 112에 접수될 당시 현장에는 이태원파출소 주간 근무자 11명만 있었다.

 

질서유지 대신 마약 단속에 경찰 인력이 더 많이 투입된 배경은, 정부·여당 기조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은 10월21일 경찰의 날 기념식에서 “마약과의 전쟁에서 승리해달라”고 말했다. 사흘 뒤 10월24일에도 윤 대통령은 한덕수 국무총리와의 주례 회동에서 “마약 근절을 위한 특단의 대책을 강구해달라”고 주문했다. 이어 10월26일 정부와 여당은 당정협의회를 열고, 국무조정실 산하 ‘마약류 관리 협의회’를 구성하기로 결정했다.

 

용산경찰서가 마약수사 단속팀 배치 계획을 세운 건 10월12일이다. ‘핼러윈 축제 클럽 마약류 집중단속 계획’을 만들면서, 애초에 단속팀을 15명으로 배정했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의 주문(10월24일)과 당정협의회(10월26일) 이후인 10월28일,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의 지시에 따라 50명으로 증원됐다.

〈시사IN〉 취재에 따르면, 김 청장은 “용산서 경력만으로는 부족하다. 일선 부서에 마약 단속 인력 투입이 가능한지 확인 후 배치하라”는 취지로 마약단속팀 증원을 지시했다. 15명에서 세 배 이상 늘어난 마약단속팀은 용산서 5개 팀에 더해, 서울청 마약수사대 2팀, 동작경찰서·강북경찰서·광진경찰서 각 1개 팀 등 총 10개 팀으로 구성됐다.

 

김 청장은 서울청이 핼러윈 기간 이태원에 인파가 몰려 신고가 폭증할 것이라는 분석을 담은 ‘핼러윈데이 치안여건 분석 및 대응방안 보고’도 확인한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질서 유지와 인파 통제 등에 대한 별도 지시는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청은 국회 행안위 소속 의원실에 보낸 답변서에서 “대통령과 총리의 주례회동(10월24일), 당정협의회 회의(10월26일)를 참고하지 않고 자체적인 판단으로 경찰 인력을 배치했다”라고 밝혔다.

 

참사 당일 경찰 지휘부의 시선도 용산 대통령실을 향해 있었다.

김광호 서울청장은 이날 집회·시위 상황 관리를 위해 출근했고, 오후 8시32분께 집회 관리를 격려하는 무전을 하고 퇴근했다.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도 용산 대통령실 인근에서 집회 대응을 지휘한 뒤, 용산서 근처에서 식사를 했다. 압사를 언급하거나 암시한 신고가 접수되는 과정에서도 현장 지휘 책임자(용산서장)와 서울 경찰 지휘 책임자(서울청장) 모두 집회에만 집중했던 셈이다.

 

이들의 참사 발생 직후 대응도 부실했다.

용산서장-서울청장-경찰청장으로 이어지는 보고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이태원 참사 지휘 보고 어떻게 이루어졌나" 기사 참조). 지휘부 보고가 늦어지면서, 전체 경력의 소방 공동대응 요청에 대한 대응과 참사 현장 투입 등이 잇따라 지연됐다.

 

경찰의 시선은 참사 이후에도 대통령실을 향했다.

경찰은 참사 발생 이틀 뒤인 10월31일 ‘정책 참고자료’를 만들었다. 경찰청 정보국이 만드는 이 자료는 ‘집회’나 ‘소요 사태’ 등 정권에 위협이 될 수 있는 정보를 수집해 정리한 내용을 담는다.

이번에 작성된 참고자료에는 참사와 관련한 시민단체와 언론, 여론 동향 등에 대한 정보가 정리돼 있었다. 문건에는 “진보 성향 단체가 세월호 때처럼 정부 성토 여론 형성에 주력하고 있다” “정부 안전관리가 미흡했다는 정부책임론이 부각될 조짐이 있다” 등의 내용이 담겼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은 “부처와 기관에서 올라오는 보고에 대해 어디까지 보고되는지 일일이 확인해드리긴 어렵다”라고 밝혔다.

 

특수본 수사, 정부 기조와 맞닿아 있나

 

용산경찰서 정보과는 참사 발생 3일 전인 10월26일, 많은 인파로 보행자의 도로 난입·교통 불편 등이 우려된다는 보고서를 작성했다. 보고서는 참사 이후 삭제됐다. ‘경찰책임론’ ‘정부책임론’이 불거지는 과정에서다.

용산서 정보과장이 보고서 삭제를 주도했으며, 보고서 작성 정보관을 회유하려 했다는 의혹도 불거졌다.

 

이태원 참사를 수사 중인 경찰청 특별수사본부(특수본)는 11월7일 부실 대응 의혹을 받는 6명을 입건했다.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을 비롯한 경찰 관계자들, 구청장과 현장에 출동한 소방서장 등이 포함됐다. 경찰은 이들 모두에게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업무를 제대로 하지 않아 사람을 죽거나 다치게 했다는 혐의)를 적용했다. 경찰은 다음 날인 11월8일 서울청장과 경찰청장 집무실을 압수수색하는 등 수사 범위를 넓히고 있다.

 

경찰 지휘부는 이태원 참사 책임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집회·시위에 대응한 경찰 기동대도,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 근무한 경찰관들도 사전에 각종 보고를 받은 경찰 지휘부의 판단과 승인에 따라 배치되고 움직였다.

다만 이번 참사 책임은 현장 실무자 선에서 마무리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특수본은 서울청장·경찰청장에 대한 압수수색이, 참사 당일 보고를 늦게 한 용산서장과 참사 4시간 전부터 접수된 112 신고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서울청 당직 상황관리관의 혐의 입증을 위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수사 범위는 넓지만 초점은 이 두 사람(용산서장, 서울청 당직 상황관리관)에게 맞춰져 있다는 뜻이다.

 

현재로선 특수본 수사 방향이 이태원 참사 책임 소재에 대한 정부 기조와 맞닿아 있는 측면도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11월7일 국가안전시스템 점검회의를 주재하고 “130여 명이나 현장에서 보고 있었는데 왜 조치를 하지 않았나” “일선 경찰서가 몰랐다는 것은 납득이 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참사 당일 경찰 인력을 운용한 지휘부가 아닌, 137명의 이태원 현장 경찰관 대응이 소홀했다는 취지다.

 

윤 대통령은 윤희근 경찰청장과, 주무부처 수장이자 경찰국 신설로 경찰 문제에 대한 책임이 무거워진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등에 대해선 별도로 언급하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책임은 (책임이) 있는 사람에게 딱딱 물어야 하는 것이다. 그냥 막연하게 다 책임지라고 하는 것은 현대사회에서는 있을 수 없다”라며, 진상규명을 통해 책임 소재를 가릴 것임을 시사했다. 대통령실은 비공개 회의에서 나온 30분 분량의 윤 대통령 발언을 전례 없이 공개했다. 경찰 안팎에선 “발언 의도와 관계없이, 특수본 수사 초기에 대통령이 나서서 수사 가이드라인을 주는 모양새가 됐다”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윤 대통령의 발언 이후 책임 문제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보여왔던 한덕수 국무총리와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도 한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한덕수 총리는 11월8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종합정책질의에서 “(참사 당일) 국가는 없었다”라면서도 “현시점에서 보면 용산 쪽에 치안을 담당하는 분들이 제대로 못했다”라고 말했다.

김대기 대통령비서실장도 같은 날 국회 운영위원회 대통령실 국정감사에서 ‘이태원 참사’ 책임자 및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경질 요구와 관련해 “매번 사건이 터질 때마다 장관이나 청장을 바꾸라는 것은 후진적이다. 참사 원인부터 밝혀야 한다”라고 밝혔다.

 

 

 

문상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