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토 학살의 진실과 '기억'을 지킨 윤미향의 용기
조선인 희생자 추모가 '헌법가치 부정'?
남북교류협력법 위반조차 아니다
남북 민간교류 원천 봉쇄가 목적
또다시 드러난 한일 우익의 공조
본질은 간토 학살의 진실 기억과 추모
언제까지 혼자 비를 맞도록 놔둘 것인가
윤석열 정부의 대통령실은 이번에 간토 학살 희생자 추모제에 참석한 것을 계기로 윤미향 의원을 마녀사냥 하는 데 앞장서면서 “헌법 가치를 정면으로 부인하는 세력을 우리 체제 안에서 함께 할 수 있는 정치 세력으로 볼 수 있는 건가”라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자유민주주의 국체를 흔들고 파괴하려는 반국가행위에 대해 정치진영에 관계없이 모든 국민과 함께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며, 윤미향 의원을 겨냥했다.
하지만 이런 무시무시하게 부풀려진 말의 인플레들과 어울리지 않게, 정부가 지금 구체적으로 윤미향 의원에게 억지로 적용하려는 것은, 주로 남북교류협력법 위반이다. 당장 무슨 간첩단 사건이나 국가보안법 조직 사건을 조작해서 윤미향 의원에게 뒤집어씌울 건덕지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으로 짐작된다. 더구나 남북교류협력법 위반조차 적용이 매우 어려워 보인다.
이미 확인됐듯이 그날 추모 행사는 (조)총련이 단독 주최한 행사가 아니었고, 총련은 ‘희생자 추도 실행위원회’에 소속된 100여 개에 달하는 단체 중에 하나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윤의원은 이번에 총련 관계자를 만날 계획도 없었고 만나지도 않았기에 ‘사전(또는 사후) 신고’ 대상도 아니었고, 그날 넓은 행사장에서 서로 다른 공간에 있었다는 것 말고는 어떠한 ‘교류 협력’이나 ‘회합 통신’도 없었다.
만약 이것을 위법으로 건다면 심지어 민단도 걸릴 수 있다. 일본에서 열려온 ‘원코리아페스티벌’에는 민단과 총련이 모두 참가해 왔고, 심지어 이번에도 일부 지역에서 열린 ‘간토 학살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에는 민단과 총련의 지역 대표가 모두 참석했기 때문이다.
만약 윤석열 정부가 ‘앞으로는 해외로 행사나 여행을 갔을 때 그 공간에 총련 관계자가 있었거나 스치기만 해도 그 자체로 남북교류협력법 위반으로 봐야 한다’는 뜻이라면, 정말 황당무계한 이야기가 된다. 그것은 행사장이나 여행지에 가기 전에 누가 그 자리에 올지를 미리 다 파악하고, 그 사람들의 성향과 개인정보 등을 다 조사해 놓아야 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신적 능력이 있지 않고서는 거의 불가능한 이야기인데, 결국 이것은 윤석열 정부가 시계를 얼마나 거꾸로 돌리고 싶어 하는지를 보여 준다.
그 끝에는 총련과 조금이라도 엮이면 죄 없는 재일동포들이 끌려가고 고문당해서 간첩으로 조작되는 것을 지켜보며 공포에 떨며 한없이 움츠러들던 시대가 있다.
당장 그 시대로 돌아갈 수는 없겠지만, 한국과 일본에서 남북 간의 민간교류와 협력, 접촉 시도 모두를 거의 불가능하게 만들려는 것이 윤석열 정부의 의도로 보인다. 정부 차원의 남북 교류와 접촉이 완전히 사라져 버린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는 말이다. 실제로 윤석열 정부와 통일부의 강압 속에 남북 민간교류 시도는 전에 없는 수준으로 얼어붙고 있다.
특히, 이번에 윤미향 의원을 공격하는 과정에서 포착할 수 있었던 것은, 지난 2020년에 절정에 달했던 윤미향 마녀사냥에서 두드러졌던 것과 같았다. 일본의 우익, 한국의 우익, 한국의 정보기관, 한국의 족벌언론들로 이어지는 긴밀한 협력이다. 이들은 마치 실시간으로 정보를 공유하고 서로 짜고 행동하는 것처럼, 간토 학살 100주기 추모 행동과 윤미향 의원을 공격하는 데 손발을 맞추었다.
윤미향 의원이 그 행사장에서 어느 위치에서 어떤 태도로 있었는지까지 보도될 정도였다. 이것을 살펴보면서 만약 윤미향 의원이 그 행사장에서 총련 관계자의 발언에 박수를 치거나, 스쳐 지나가다가 악수라도 하거나 몇 마디 말이라도 나누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등골이 서늘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의 마녀사냥 속에서도 우리가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이번 사태의 본질이 '추도 행사를 총련이 주최했는가', '총련이 주최한 행사에 윤의원이 참석했는가' 따위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은 저들이 만든 프레임일 뿐이다.
본질은 ‘간토 학살의 진실은 무엇이고, 누가 그것을 기억하고 추도하고 있는가’라는 것에 있다.
간토 대학살은 조선인 6661명(당시 <독립신문>의 기록)이 일본도, 낫, 갈고리, 곤봉, 돌 등으로 잔인하게 살해당한 끔찍한 비극이다. 조선인처럼 보여서 살해당한 중국인과 일본인도 매우 많았다.
이것은 대지진이 낳은 공포 속에 싹튼 대중의 광기와 유언비어로 인한 우발적 사건이 아니었다.
‘조선인들의 폭동과 방화’는 대지진 직후에 일본 군부가 계엄령을 내린 핵심 명분이었다.
자경단 구성을 추동한 것도, 수용하던 ‘불령선인’들을 자경단들이 학살하도록 ‘배급’한 것도 일본군이었다. 즉 우발적이고 무차별적인 학살이 아니라, 의식적이고 선별적인 학살이었다. 당시 일본 내무성 전신문 등이 이것을 입증하고 있다.
그래서 근래 일본의 ‘혐한 극우익’들은 학살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게 아니라 ‘폭동을 일으킨 조선인들에 대한 정당한 학살’이라는 논리로 나아가고 있다.(KBS <추적60분> “조선인을 죽여라 - 학살, 그 후 100년”)
이토록 끔찍한 학살과 참담한 세월이 벌써 100년이다. 100년 전 상해임시정부가 일본 정부에 항의한 것 말고는, 그동안 한국 정부는 이 역사를 기억하고 기록하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당시 학살당한 중국인 750명은 이름이 기록돼 있지만, 조선인은 거의 대부분 이름조차 남아 있지 않다. 희생자와 생존자의 후손들이 개인적으로 그 흔적을 찾아왔지만, 이제 그들마저 나이가 들고 세상을 떠나면서 기억과 기록은 사라지고 있다.
100년 전에 일본에서 철도나 탄광 노동자로 힘들게 살았던 조선인들의 삶과 죽음 모두가 지워지고 있다. 이 시점에 시작된 것이 윤석열 정부와 족벌언론들의 새로운 마녀사냥이다. 그리고 '공산주의를 추종하는 반국가 세력이 반일 감정을 부추기며 가짜뉴스를 퍼트리고 이적행위와 반역을 저지르고 있다'는 이들의 논리는, 일본의 혐한 극우세력의 논리와 놀랍도록 똑 닮았다.
이런 상황에 대해 윤미향 의원은 이렇게 이야기했다.
"미안했습니다. 온갖 100여 개 단체들과 일본의 정치인들도 추도사업을 진행했는데, 거기에 민단만 없었어요. … 일본 정부는 역사를 다 지우려고 하는 거예요. … 이런 역사 지우기를 비판하지 않는 게 그게 반국가인 거죠. … 한국 정부가 간토 학살 100주년에 이렇게 침묵할 수 있을까, 정치권이 이렇게 무관심할 수 있을까 너무 가슴이 아팠어요. … 윤미향[사냥]을 통해서라도 간도 학살 100주기가 이렇게 알려진... 그런 생각이 좀 들어서 씁쓸하기도 하고 참담하기도 합니다."(9월 5일 <뉴스공장>)
이번에 윤미향 의원이 보여 준 용기는 정말 놀라운 것이었다. 사실 윤미향 의원은 집권여당은 물론 제1야당에서도 아무도 참가하지 않는 상황에서 무소속 의원으로서 반드시 참가할 의무가 있었던 것이 아니다. 더구나 2020년에 시작된 마녀사냥으로 이미 낙인이 찍힌 상황에서, 새로운 마녀사냥의 빌미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예상했을 법하다.
9월 20일 항소심 재판 선고를 앞둔 상황에서 누구든 피하고 싶었을 부담이다. 실제로 이번 마녀사냥이 재판부를 압박해 결과에 어떤 악영향을 끼칠지 매우 걱정되는 상황이다.
하지만 낙인 위에 낙인이 찍히는 고통뿐 아니라, 재판 결과에 끼칠 악영향까지 뻔히 알면서도 윤미향 의원은 그 길을 피하지 않았다. 비극의 현장에서 간토 학살 100주기의 억울한 넋들 앞에 고개 숙이는 한국 국회의원이 단 1명도 없는 상황만은 결코 용납할 수 없었던 것 같다.
윤미향 의원은 간토 학살 100주기를 잊지 않고 맨 앞에서 추모한 단 1명의 국회의원이었기에 지금 사냥감이 돼 있다.
따라서, 2021년 9월에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사건 9월 1일 국가추모일 지정 촉구 결의안'을 발의했던 60명의 국회의원, 2023년 3월에 ‘간토 대학살 진상규명 및 피해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을 발의한 100명의 국회의원들은, 지금이라도 윤미향 의원 옆에 나란히 서서 같이 비를 맞아야만 한다.
전지윤 편집위원misotoleni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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