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칼질하러 온 박민 사장
박민 한국방송(KBS) 사장은 지난해 12월18일 결산 승인을 위해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놀라운 발언을 했다. 2024년 한국방송 인건비를 20% 절감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이에 이인영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인건비가 5천억원인데 20%면 1천억원을 빼내겠다는 것이냐?”고 물었고, 박 사장은 “최악의 수준으로 급감할 경우 그런 조치를 시행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여당인 장제원 과방위원장도 “1년 만에 1천억원 인건비를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저는 굉장히 충격적”이라며 당황스러워했다.
박 사장은 “수년간 지적되어온 연월차 수당을 전체 소거하면 186억원 효과가 기대된다. 관리직이 반납한 임금이 33억원, 신규 채용 중단과 자연감소분으로 100억원 정도를 기대”하고, 100~200명 명예퇴직으로 120억~240억원 감소를 예상한다고도 말했다.
이런 구조조정안을 두고 언론계에선 현실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왔다. 명예퇴직하려면 수년치 월급에 해당하는 퇴직금을 줘야 하는데, 1천억원을 어떻게 줄이냐는 것이다. 특히 수입을 늘릴 계획 없이 지출을 줄이기 위해 인력을 줄이고 월급을 깎는 손쉬운 방법만 택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그렇다면 1천억원 절감을 공언한 이유는 뭘까.
지난해 9월25일 박 사장 후보자가 한국방송 누리집에 올린 경영계획서를 살펴봤다.
박 후보자는 자기소개서(응모 사유)에 “아울러 (문화일보) 노조위원장과 우리사주조합 이사를 역임하고 대규모 구조조정을 주도해 노사 문제와 비상경영 상황에 대한 대응 역량도 갖췄”다고 적었다. 본인을 대규모 구조조정 전문가라고 소개한 것이다.
박 후보자는 수입 감소와 관련해 수신료(2022년 기준 6934억원), 광고(2642억원), 콘텐츠 판매 수입(3872억원) 등 ‘3대 수입원 급감 우려’ 항목에서 광고는 2천억원 이하로 급감할 가능성이 있고 수신료는 ‘30% 감소 시 2100억원 결손’, ‘70% 감소 시 5천억원대 결손’이 예상된다고 했다.
대응 방안으로 △조직 축소 △인력 축소와 인건비 삭감 △전체 연차휴가 촉진 △프로그램 축소 또는 폐지 △구조조정 추진 △보유자산 매각·개발 추진 등을 거론했다.
아울러 ‘공정성 논란’ 프로그램 진행자와 출연진 교체를 공언했고, 취임 뒤 대국민 기자회견에서 임원진 임금 30% 반납 선언도 언급했다.
이는 박 사장 취임과 동시에 그대로 실행됐다.
시사 프로그램 중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던 ‘더 라이브’는 후속 프로그램도 없이 전격적으로 결방이 결정됐다. 프로그램 폐지 땐 제작진에게 한달 전 고지한다는 규약 때문에 나가지 않아도 될 돈을 지출했다. 폐지로 인해 2텔레비전(TV) 광고 수주액에도 영향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 배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박 사장이 공언한 프로그램 진행자와 제작진 교체 뒤, 한국방송 시청자와 유튜브 조회수는 급감했다. 시청률 조사기관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11월6일(월) 204만명 수준이던 한국방송 메인뉴스 시청자 수는 박 사장 취임 약 한달 뒤인 12월4~10일엔 평균 157만명으로 줄었다.
경영계획서에서 공정성 이유로 9시 뉴스 하루 평균 시청자가 2022년 232만명으로 2018년 이후 50만명 하락했다고 지적했는데, 본인 사장 취임 뒤엔 한달 만에 50만명이 줄었다. 진행자를 대거 교체한 1라디오 유튜브 조회수는 11월6~12일 534만회에서 12월4~10일 141만회로 무려 74%나 줄었다.
최근 한국방송은 배우 고 이선균씨가 유흥업소 실장과 통화한 녹취록을 보도하면서 마약 복용이라는 혐의 내용과 거리가 먼 대목까지 다뤄 선정적 보도를 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이에 대해 한국방송 팀장은 “사회적 관심이 큰 사안”이라 보도했다고 옴부즈맨 프로그램에서 설명했다.
결국 ‘정치논리’에 휘둘린 한국방송 이사회는 수신료 문제 해결 능력도, 수입 증대 비전도 없는 사람을 사장으로 앉혔다. 계획이라고는 ‘사람 자르기’와 ‘프로그램 없애기’뿐인 ‘정권 낙하산’이 공영방송 수장으로 온 뒤 모든 지표가 급전직하하고 있다.
박 사장은 본인이 예고한 대로 한국방송에 ‘칼질’을 하고 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공영방송 시청자와 직원들이 받고 있다. 현 정권의 무능과 몰상식이 좀비 바이러스처럼 각계에 퍼지고 있다.
김준일|뉴스톱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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