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썩은 밧줄로 달리는 수레를 부릴 수 없다

道雨 2024. 4. 15. 10:03

썩은 밧줄로 달리는 수레를 부릴 수 없다

 

 

 

윤석열 대통령의 지난 2년간의 정치는, 정적에 대한 복수와 전 정권의 정책 뒤집기를 통한 지지층의 한풀이 장단에 부응한 것이었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

대통령의 제일 덕목인 패자를 동화시키려는 포용력이 전무했다.

마치 0.7%포인트 차이의 승리 콤플렉스를 보상받으려는 듯, 승자독식 현상이 나라 전 분야에서 횡행했다.

 

지도자로서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확증편향을 경계해야 하는데도, 윤 대통령은 직언과 소통을 차단함으로써 이를 더욱 강화시켰다.

자유와 더불어 또 다른 헌법적 가치인 ‘국민 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라는 평등의 정신이 망각되었다.

국정 전반에 걸친 검찰 권력의 부상은, 헌법에 의해서 금지된 ‘사회적 특수계급’의 부활을 보는 듯했다.

 

대통령 집무실에서 불과 수백미터 떨어진 곳에서 약 160명의 무고한 인명이 희생되었는데도, 누구 하나 책임지고 물러나는 사람은커녕, 진정 어린 사과의 표명도 없었다.

한술 더 떠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검법마저 거부권 행사로 폐기시켰다.

 

이는 국민의 가장 큰 공복(심부름꾼)으로서의 대통령의 헌법적 책무를 방기한 것이다. 이로 인해 국민들이 받은 스트레스는 이루 말할 수 없었으며, 이번 선거 결과는 이러한 국민 경시 태도에 대해서 주권자인 국민이 심판한 ‘승자의 저주’ 현상이다.

 

 

윤 대통령은 어떤 길을 택해야 할 것인가?

 

대통령과 측근들은 개헌과 탄핵 저지선을 지키고 법률안 거부권을 계속 행사할 수 있다는 데 안도의 한숨을 쉴지도 모른다. 일단은 겸허하게 국민의 뜻을 수용하면서 개혁과 변화를 추구하겠다고 약속하고 마이웨이로 갈 수도 있다. 내키지 않는 국회 의결 법률안을 종전처럼 재의요구권을 행사하여 무력화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는 이러한 종전의 통치 스타일은 통하지 않을 것임을 이번 민심은 경고하고 있다. 민심은 배를 띄울 수도 있지만, 그 배를 뒤집을 수도 있음을 가까운 헌정사가 말해준다. 그렇게 되면 자칫 우리 사회는 혼란에 빠져 불행한 헌정사의 전철을 밟을 우려도 있다.

 

나는 40년 넘게 헌법 이론과 실무에 접한 사람으로서 대통령에게 제의하고자 한다.

 

개헌을 통해서 합헌적으로 임기 1년을 단축하고, 보장된 임기 내에 무리 없이 국정을 수행할 수 있도록, 50년 가까이 지속된 현행 1987년 개정 헌법은 이제 전반적으로 손질할 때가 됐다.

권력구조뿐만 아니라 헌법 전문과 총강의 국가정체성 강화, 현대형 기본권 보완, 감사원 등 국가기관 개편, 교육자치를 포함한 지방분권 강화, 경제 조항의 수정 등, 국가 운영의 틀을 바꾸는 개헌의 필요성이 상존한다.

 

만일 헌법 전반의 개정에 대한 국민적 합의 도출에 시일이 걸린다면, 4년 중임 대통령제로 원포인트 개헌을 하는 방법도 있다. 대통령제 국가에서 우리처럼 단임제를 채택하는 국가는 남미의 우루과이 정도가 있을 뿐이다.

원래 단임제는 장기 집권으로 인한 독재를 우려한 반성적 차원에서 채택한 제도였으나, 직선 대통령에 대한 국민 심판의 기회를 빼앗는 점에서 민주주의 원리에 반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간 헌정 실험 결과, 현행 5년 단임제는 사실상 실패한 제도로 드러났다. 박수받고 떠난 대통령이 없는 나라는 부끄러운 현실이다.

 

 

헌법은 대통령에게도 개헌안 발의권을 부여하고 있다. 대통령 제안으로 금년 내에 개헌하고, 헌법 부칙에 2026년 5월까지 현행 대통령의 임기를 명시하고(1년 단축), 그해 상반기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일에 대통령선거를 동시 실시한다.

이는 현재 지방선거, 국회의원선거, 대통령선거 등 3분화돼 있는 선거 주기를 2개 주기로 줄이는 것이다.

 

임기 4년이 보장되는 한 국회의원들도 개헌안 통과에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대통령은 남은 임기 동안 균형적인 인사들로 내각을 구성하여 국정을 이끌어간다면, 단축된 1년의 임기를 상쇄하고도 남는다. 어쩌면 박수받고 떠나는 첫 대통령이 될 수도 있다.

 

최근 우리 사회는 이념편향적이고 파편화된 개인과 집단의 극단적인 주장(선동)으로 인하여, 공동체적 연대가 급속히 허물어지고 있다. 참으로 우려할 만한 상황이다.

관용과 진실에 기초한 공동체 정신을 헌법적 가치로 시급히 회복해야 한다.

 

대통령은 더 이상 확증편향에 빠져 국정을 이끌어가서는 안 된다.

지금은 윤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견인해왔던 수레의 밧줄을 갈아 끼워야 할 때다.

썩은 밧줄로는 달리는 수레를 더 이상 부릴 수 없다.

 

 

 

이석연 | 동서대 석좌교수·전 법제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