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송금 판결이 이재명에 타격 줄 수 없는 이유
이화영이 이재명에게 보고? 판단 회피한 재판부
'제3자 뇌물' 대법 판례상 무죄 나올 수밖에 없어
뇌물 수수자 간 '부정 청탁' '공통 인식' 입증돼야
김성태 주장 외엔 "이재명에 보고했다" 증거 전무
변양균-신정아 사건 무죄에서도 검찰 무리수 확인
신진우 부장판사, 판결이 아니라 정치했냐는 의심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의 1심 선고 판결문에 "쌍방울이 북한에 낸 800만 달러가 이재명 경기지사의 방북 비용으로 보인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기면서 정치적 파장이 커지고 있다.
국민의힘과 보수 언론들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 관련 대북 송금 수사에 상당한 영향을 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이화영 전 부지사에 대한 판결 내용이 이재명 대표에게 정말 큰 타격을 줄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 전 부지사의 판결문에서 주목할 점은 "2019년 쌍방울이 북한에 돈을 보낸 것에 대해, 이 전 부지사가 이재명 대표에게 보고를 했는지 여부에 대해 판단하지 않겠다"고 적시한 점이다.
이 부분이 왜 중요하냐면, 이 대표에게 적용된 혐의는 '뇌물'이 아니라 '제3자 뇌물 수수' 혐의인 탓이다. '이 전 부지사가 이 대표에게 쌍방울 대북 송금 관련 보고를 했다'는 게 증명되지 않으면, 이 대표는 설사 기소되더라도 무죄가 나올 확률이 대법원 판례상 99%이다.
제3자 뇌물 사건에서 가장 많이 활용되는 '대법원 판례 (2010도 12313)'를 살펴보자.
"묵시적 의사 표시에 의한 부정한 청탁이 있다고 하기 위해서는, 청탁의 대상이 되는 직무집행의 내용과 제3자에게 제공되는 금품이 그 직무집행에 대한 대가라는 점에 대하여, 당사자 사이에 공통의 인식이나 양해가 있어야 한다. 따라서 그러한 인식이나 양해 없이, 막연히 선처하여 줄 것이라는 기대나 직무집행과는 무관한 다른 동기에 의하여 제3자에게 금품을 공여한 경우에는, 묵시적 의사표시에 의한 부정한 청탁이 있다고 볼 수 없다."
판례에서 보듯, 제3자 뇌물 혐의는 일반 뇌물 혐의보다 입증 요건이 더 까다롭다. 왜냐면 제3자 뇌물은, 뇌물 받은 이가 공무원이 아닌 제3자이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어떤 공무원에게 앙심을 품고 다른 제3자에게 뇌물을 준 다음에 '그 뇌물은 OO 공무원을 위한 것이었다'고 얼마든지 위증할 수도 있다. 모함을 당한 공무원 입장에선 '내가 아무 것도 받은 게 없는데 나를 위해 제3자에게 대신 뇌물을 줬다는 사람이 나타났다니' 하면서 미치고 팔짝 뛸 일이다.
그래서 대법원은 제3자 뇌물 사건에 대해 뇌물 공여자와 공무원 사이에 '공통의 인식'이나 '부정한 청탁' 여부가 입증되어야만 처벌할 수 있다고 판례를 정립해온 것이다.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2007년, 10개 기업들로 하여금 신정아 씨가 일하던 성곡미술관에 8억 5320여만 원의 후원금 또는 광고비를 내도록 개입한 제3자 뇌물 혐의로 구속기소 됐지만, 끝내 무죄 선고를 받았던 사건은 아주 유명하다.
기업들이 신정아 씨에게 낸 후원금에 대해 변양균 전 실장이 이를 인식하고 있었는지가 증명되지 않고, 또한 기업들의 부정한 청탁이 있었는지 여부도 입증되지 않았기 때문에 무죄가 선고됐다.
통상적으로 기업들이 신정아 씨를 보고 후원을 했다기보다는 변 전 실장을 보고 후원했을 거라고 의심은 할 수 있지만, 의심만으로 사람을 처벌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형사소송법의 대원칙인 '입증되지 않은 의심에 이른 수준이라면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결해야 한다'는 무죄추정의 원칙, ▲형사소송법 307조2항 "범죄사실의 인정은 합리적인 의심이 없는 정도의 증명에 이르러야 한다"는 규정을 기억해야 하다.
다시 쌍방울 대북 송금 사건으로 돌아오면, 재판부가 이재명 대표의 제3자 뇌물 혐의에 대해 유죄 선고를 하려면
▲쌍방울이 북한에 보낸 돈이 이 대표 방북 비용이고
▲이 대표가 그 대가로 쌍방울에 행정적 선처를 해줄 것이라는 '공통의 인식'이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과 이 대표 사이에 있었다는 점이 증명돼야 한다.
그런데 이화영 전 부지사는 "어떤 보고도 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경기도 문건 어디에도 "보고됐다"는 흔적이 없고, 쌍방울 내부 문건, 국정원 문건에도 없다. 이 대표 역시 "쌍방울 대북 송금이 있었는지조차 몰랐다"는 입장이다. 그저 김성태 전 회장의 주장뿐이다.
수원지법 형사11부 재판장인 신진우 부장판사는, 이번에 이상한 판결문을 썼다.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이화영 부지사가 이재명 지사에게 쌍방울 대북 송금 관련 보고를 했다"는 증거가 딱히 없다는 게 사실로 확인되는데도, 어떤 이유에선지 이러한 내용을 판결문에 쓰는 대신 "판단하지 않겠다"고 피해버렸다.
대신 "쌍방울 대북 송금은 이재명 방북 비용으로 보인다"는 내용만 판결문에 적었고, 대부분 언론과 국민의힘은 이 부분만 강조하고 있다.
신진우 판사가 이화영 사건에 대한 판결에 그치지 않고, 향후 이재명 대표에 대한 검찰 수사를 돕고 싶었던 의도였을까.
판사가 판결이 아니라 정치를 했다는 의심을 살 수 있다.
다음 글에서는 이화영 전 부지사에 대한 1심 판결문이 왜 '오류투성이'인지, 사례를 들어 조목조목 짚어보겠다.
허재현 리포액트 대표 기자repoact@hanmail.net
※ 허재현 기자는 과거 한겨레 신문의 법조팀 기자였고,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 등 많은 검찰 조작 수사를 밝혀내고 관련 재판 등을 취재해 온 법조 전문기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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