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스카이캐슬과 기생충의 나라

道雨 2024. 6. 26. 12:43

스카이캐슬과 기생충의 나라

 

 

       * 주거권네트워크 회원들이 지난 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더불어민주당과 윤석열 정부의 종부세 폐지·완화 주장을 규탄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쏘아올린 종합부동산세 재검토 신호탄이, 총선 뒤 캄캄했던 용산 하늘을 환히 밝혀주자, 대통령실과 보수언론들은 이참에 상류층의 숙원을 다 풀고자, 종부세 완전 폐지, 다주택자 중과세 폐지, 고액 상속자 세율 대폭 인하, 근로자 소득세 감면 축소 등, 노골적인 ‘부자 감세-서민 증세’ 구상을 쏟아내고 있다.

 

이 같은 풍경은, 특정 세제를 둘러싼 논란을 넘어,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소수 상류층의 관심사가 정치권의 최우선 관심사가 되며, 어떻게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들이 걸인, 범죄자 취급을 받게 되는지, 어떻게 자산과 자가를 갖지 못한 광범위한 계층이 정치와 공론장에서 지워지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좋은 현장체험 기회를 제공한다.

 

 

‘종부세는 중산층의 문제가 됐다’는 말이 있다. 기망이다.

문재인 정부가 종부세를 강화하고 집값이 폭등했을 때도 납부가구는 총가구의 2.67%였고, 윤석열 정부가 과표기준을 하향한 뒤 현재 종부세 납부가구 비율은 1.75%(조세재정연구원 재정패널)다.

 

이것이 17%, 27%처럼 보이게 만드는 게, 바로 지배계급의 담론 권력, 의식조작 권력이다.

종부세를 없애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납부자 비율을 부풀린다.

분모를 전체 가구가 아닌 ‘주택 소유자’로, ‘아파트 소유자’로, ‘서울 아파트 소유자’로 좁힐수록 종부세 납부자 비율은 점점 높아진다.

이런 부풀리기 끝에 ‘4집 중 1집이 종부세’라는 어이없는 계산이 나온다.

 

 

현실을 직시하자.

지금 한국은 자산 상위 5%가 전 국민 보유자산의 약 30%를, 상위 20%가 65%를 갖고 있다. 자산 축적이 시작되는 30대에 상위 30%가 전체의 83%를 갖고 있다. 즉 ‘자산 기반 복지’를 실현할 수 있는 계층은 매우 제한적이다.

‘한국에선 자산이 복지이므로 감세해야 한다’는 논리는, 일부 계층의 이해관심을 허위 일반화한 것이다. 오히려 많은 사람은 과세할 자산이 없다.

청년층의 자산 상위 20%는 자산의 77%가 부동산이지만, 하위 20%는 고작 11%(보건사회연구원 2022년 보고서)다. 서울 청년 1인 가구의 62.7%가 자산 빈곤(서울연구원 2023년 보고서)이고, 노인들은 자산을 모두 연금화한다고 가정해도 빈곤율이 26.7%(한국개발연구원 2023년 보고서)에 달한다.

 

 

우리 사회의 지도층은 이러한 국민의 삶에 ‘부자 세금’의 100분의 1만큼이라도 관심을 갖고 있는가?

3주택, 30억원 상속, 가업 승계 같은 얘기에 장차관과 국회의원들이 열을 올리는 모습은, 마치 바깥에선 사람들이 아우성치며 쓰러지고 있는데, 거실에선 잘 차려입은 사람들이 카드놀이나 하는 공포영화의 한 장면처럼 기이하다.

 

더 충격적인 것은, 공적 책임이 있는 위치의 사람들이 우리 사회의 구조적 불평등에 대한 관심은커녕, 마치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이 부자들한테 세금을 뜯어 기생하는 존재인 듯이 취급하는, 차별적, 반인권적 담론들을 공공연히 쏟아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 감세 논쟁에서 그런 차별 담론의 중심 상징은 ‘과세 미달자’다.

‘소득세 과세 미달자가 37%나 된다’, ‘상위 20%가 90%의 세금을 낸다’는 말이 수많은 텍스트에 등장한다.

이 같은 ‘가난의 범죄화’‘부자 억울 담론’은,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부터 반복되는 패턴으로, 제도화된 지배담론이며, 또한 지배계급의 이익을 제도화하는 담론이다.

 

 

과세 미달자는 납세 거부자나 세금 미납자가 아니다.

소득 신고자 중 과세할 만큼의 소득에 미달하는 저소득층이며, 중소기업 근로자나 비정규직 청년들이 다수다.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는 소득 신고자의 50%에 이른 해도 많다.

이 같은 조세감면 제도는, 한국의 복지제도가 취약하기 때문에, 일종의 대체 제도로 활용됐다.

임금이나 복지 향상 없이 근로자 세금 감면을 축소하면, 이 계층의 경제 상황은 파탄 난다.

 

 

저소득층을 ‘무임승차자’로 몰아 부도덕한 존재로 묘사하는 담론도 흔하다. 복지는 원하면서 세금은 안 내려 한다거나, 자기 세금은 싫지만 남의 증세는 찬성한다는 식인데, 이 역시 계급적 편견이다.

관련된 최근 연구들에 따르면, 소득 변수는 세금에 대한 태도와 관련이 약하며, 이념적 진보이거나 임금생활자들이 세금을 가장 기꺼이 낸다.

 

‘부자 억울 담론’은 정작 그들이 얼마나 많은 세금 혜택을 받는지는 은폐한다.

기획재정부 자료로, 올해 연 소득 7800만원 이상 소득자가 혜택받는 비과세와 세금 감면은 15조4천억원, 대기업을 위한 조세지출도 6조6천억원에 이른다.

그동안 복지 목적의 조세지출이 늘었는데, 윤 정부 들어 고소득층과 대기업 대상 조세지출이 급증했다.

 

이 같은 자산, 주택, 조세 관련 정책들은 오늘날 한국 정치의 가장 첨예한 갈등의 대상이다.

민주화 직후에 한국에 계급정치란 없었다. 하지만 금융위기 이후 2000년대 중반부터 계급 균열이 점차 선명해졌는데, 특히 자산과 주택의 영향은 일관되고 강력하다.

 

연구 결과들을 종합해보면, 대략 2006년부터 대선, 총선, 지선(지방선거) 모두 자산 상층과 자가보유자는 보수 투표로, 자산이 적거나 세입자는 민주당 투표로 이어지는 경향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이 세입자와 자산 중하층의 이익을 분명히 대변하지 못하고, 고자산층의 눈치를 보는 이유는, ‘종부세는 정권교체 촉진세’라는 주술 때문이다.

그러나 자산 상층 다수는 어차피 보수를 찍는다.

관건은 민주당을 찍으려던 유권자 중 종부세 때문에 보수로 돌아선 유권자가 정권교체의 주요 원인이 될 만큼 많았느냐다. 실제 2022년 대선에서 종부세가 과중하다고 생각한 유권자, 종부세 대상자가 확대된 지역의 경우 ‘문재인→윤석열’로 이탈이 많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민주당에 실망한 자산 중하층과 세입자들의 투표율 하락과 이탈이다. 지지층을 배신하는 정당에 힘이 붙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최근 종부세 파동에 대해 민주당 지도부는 철저히 반성하고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자본주의 국가는 부르주아의 집행위원회라는 이론을 나는 수용한 적이 없고, 지금도 그러하다.

하지만 한 나라의 국가가 지배계급에 의해 포획되면, 정치는 부유층의 민원 청취와 해결 기관으로 타락한다는 사실을 요즘 목격하고 있다.

 

과연 스카이캐슬과 기생충의 나라다.

공동체에 대한 책임을 상실한 정부 관료들과 정치인, 언론은 부끄러운 줄 알라.

 

 

 

신진욱 |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