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서민 경제는 뒷전…상속세 완화가 급하다는 최상목

道雨 2024. 6. 27. 17:28

서민 경제는 뒷전…상속세 완화가 급하다는 최상목

 

‘0.3%’ 초부자 감세에 혈안인 경제 장관

고물가·고금리·고환율 국민 고통은 외면

취약 자영업자 대출 연체율 10% 돌파

부동산 PF 부실 커져 제2금융권 위기

“상속세 완화 방향성도 시기도 부적절”

 

대한민국 경제 사령탑인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7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신문방송편집인협회 ‘편집인 포럼’에서, 귀를 의심할 만큼 일반 상식과 배치되는 발언을 했다.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이 1년 이상 이어지며 대다수 국민의 실질 소득이 감소하는 등 서민 경제가 파탄 날 지경인데, 상속세를 완화하는 게 가장 시급한 문제라고 한 것이다.

 

상속세는 아무리 많이 잡아도 전체 국민의 5% 안팎에 그친다. 최고세율이 적용되는 부유층은 과세 대상의 0.3%에 불과하다. 이들은 전체 상속세의 70% 가까이 부담하고 있다. 이들 초부자의 세금을 줄여주는 일이, 고금리와 고물가로 깊은 수렁에 빠진 서민 경제를 살리는 것보다 더 시급하고 중요하다는 말인가.

 

*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7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주최 초청 편집인 포럼에 참석해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4.6.27. 연합뉴스

 

 

최 장관이 상속세 감면이 절박하다고 목소리를 높인 이날, 모든 신문은 전날인 26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금융안정보고서’를 비중 있게 다뤘다.

요지는 가계부채가 임계점까지 오른 상황에서, 저소득 다중 채무자와 영세 자영업자 등 취약층,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2금융권의 자산건전성 악화가 한국 경제의 잠재적 위기 요인이라는 것이다.

 

국가 경제를 총괄하는 장관이라면, 가장 급하게 해결해야 할 사안으로 이 문제를 짚고, 그 해법을 제시했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최 장관은 이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이, 상속세를 비롯해 종합부동산세와 법인세 등 부자 감세를 강조하며, 다음 달 세법 개정안을 내놓겠다고 했다.

 

최 장관은 상속세를 개편해야 하는 이유로, 세제가 너무 오래돼 불합리하다는 점을 꼽았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편할 것인지에 대해선 확실하게 답변하지 못했다. 상속세 완화에 대한 국민의 반감이 크다는 것을 의식해 말을 얼버무렸다. 최대 주주 할증과 가업상속공제, 유산취득세 전환 등을 거론하면서도 “어떤 과제를 담을지는 지금 말씀드리기 어렵다. 시급한 것과 아닌 것을 가려서 의견을 듣겠다”고 밝혔다.

 

최근 대통령실은 상속세 최고세율을 50%에서 30%로 낮춰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에 대해서도 애매하게 답변했다.

“글로벌 수준에 비춰 과도한 부분을 완화해야 한다는 입장에는 동의한다. 세법 개정안에 최고세율 부분을 포함할지는 아직 미정이다.”

 

최 장관은 감세로 인한 세수 부족 관련 질문에는 “세제 조치로 세수를 줄이면서 투자와 소비를 촉진하는 긍정적 효과를 기대하는 것”이라며, 전가의 보도처럼 낙수 효과를 언급했다.

 

기업과 가계의 과도한 부채로, 민간 투자와 소비를 늘리는데는 한계가 있다. 이런 시기에는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 정책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 재원 확충이 절실하다.

윤석열 정부는 세출 구조조정을 통해 건전재정 기조를 유지하겠다지만, 써야 할 곳이 많은 상황에서 허리띠 졸라매기로는 역부족이다. 미국과 유럽 각국이 적극적으로 증세를 검토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런데도 최 장관은 재정 확충을 위한 증세가 필요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답이 아니다”라는 말로 일축했다.

 

경제 장관이 부자 감세에 몰두하는 사이에,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시한폭탄들이 째깍째깍 돌아가고 있다. 기업부채와 가계부채는 국내총생산의 2배를 웃돌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부동산 경기를 띄우려고, 정책 자금과 주택담보대출을 마구 풀고 있다. 그 결과 영세 자영업자 등 취약계층을 중심으로 연체율이 급속히 높아지고 있다.

 

한국은행이 26일 발표한 ‘2024년 상반기 금융안정 보고서’를 보면, 자영업자 대출 연체율은 1분기 말 1.52%에 달했다. 2022년 2분기 말 0.50%와 비교하면, 2년 만에 3배 이상 급증한 것이다. 특히 자영업자 중 다중 채무자이면서 저소득이거나 저신용인 취약 차주의 연체율이 급상승해, 올해 1분기 말 10.21%로 한계치에 봉착했다. 자영업자 취약 차주 수 비중도 12.7%로 가계(6.4%)의 2배에 육박했다.

 

 * 가계와 자영업자 대출 연체율 추이. 연합뉴스

 

 

정부와 금융업계가 땜질 처방으로 막고 있는 부동산 PF 부실도 한국 경제의 약한 고리다. 지난 3월 말 기준으로 부동산 PF 대출은 134조 2000억 원에 달한다. 올해 들어 규모는 줄고 있으나, 부실 정도는 더 커졌다. 증권사와 저축은행의 PF 대출 관련 연체율이 가파르게 상승 중인 것이 그 증거다.

 

이런 흐름이 계속되면, 제2금융권의 자산건전성이 급격히 악화할 게 뻔하다. 한국은행은 “중장기적으로 민간 신용(빚)이 여전히 많은 상황에서, 향후 가계부채 누적 증가 재개 등으로 금융 취약성이 증대될 위험이 있다”고 진단했다.

 

작년보다 물가는 떨어졌으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 안팎으로 여전히 높은 편이다. 농산물과 외식 등 서민이 체감하는 생활물가는 더 높다. 인플레이션이 누적돼 체감물가가 낮아지고 있다고 판단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한국은행은 설명했다.

 

원 달러 환율이 고공 행진 중이라는 것도 물가에 부담이다. 고환율은 생산자 물가와 수입 물가를 밀어 올린다.

이런 상황에서 상속세 등 부자 감세를 밀어붙이는 것은, 방향이 잘못됐을 뿐 아니라, 시의적절하지도 않다.

 

시민단체들은 지난 25일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감세 정책이 아닌 적극적인 재정 역할을 촉구했다. 정연실 한국노총 상임부위원장은 “지금도 상속가액 10억 원, 금융투자소득 5000만 원, 1주택자 기준 공시가격 12억 원까지는 상속세, 금투세, 종부세 과세 대상에서 제외된다”며 “그런데도 추가로 (이런 세금을) 폐지 또는 인하하겠다는 것은, 부자 감세를 넘어선 초부자 감세”라고 지적했다.

 

 * 자료 : 국세청. 상속세 신고 현황. 

 

 

 

이지현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다수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이 상속세·자본이득세를 부과하고 있고, 상속재산 규모가 500억 원을 초과하는 슈퍼부자를 제외하면, 상속세 실효세율은 28.9%에 불과해 높지 않다”며 “2013년부터 2022년까지 전체 상속인 중 상속세 납부 건수는 평균 2.6%에 불과한 만큼, 중산층 세 부담이 증가했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OECD와 헌법재판소는 부의 격차 해소, 국민의 경제적 균등 도모를 위한 상속세의 역할과 목적을 확인한 바 있다”고 강조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안도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같은 날 상속세 완화 정책을 조목조목 비판하는 자료를 내놨다. 그는 “지난해 상속세 신고인원은 1만 8282명으로 전년보다 6.3%(1224명) 감소했는데, 이는 연간 사망자 35만 3000여 명의 5.2% 수준”이라며 “나머지 94.8%는 여전히 상속세를 낼 필요가 없으니, 결국 상위 5.2%에 대한 과세를 두고 중산층의 징벌적 세금이라고 하는 (정부와) 국민의힘 주장은 지나친 왜곡이자 과대 포장”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지난해 상속세 최고세율 대상은 전체 과세 대상의 0.3%밖에 안 되지만, 상속세의 65.7%를 냈다”며 “(상속세 완화가) 누구를 위한 감세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질타했다.

 

 

 

 

장박원 에디터jangbak6219@mindl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