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위기
대통령의 조기퇴진을 이야기하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진보 진영을 넘어 여권 내의 비판과 대구·경북의 민심 이반은 현 상황이 심각함을 말해준다. 현 정권에 대한 실망이 절망으로 변할수록 사람들은 대안을 찾는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대안 중 가장 앞서 있다. 혹자의 표현과 같이 그는 불사조와 같다. 한번으로도 일상생활이 불가능하다는 검찰 조사를 끊임없이 받으면서 야당 대표직을 굳건하게 수행해왔다. 이에 더하여 김건희 여사에 대한 검찰 조사와의 형평성이 부각되면서 그에 대한 수사는 이미 정치적인 성격으로 해석되고 있다. 그럼에도 지난 금요일과 같이 앞으로의 재판들은 그의 길이 험난함을 암시한다.
그의 정치적 위기가 현실화하고 있다. 그의 위기는 비단 재판 때문만은 아니다. 그의 강점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잠재적 국가 지도자로 주목되었던 것은 ‘사이다’ 발언이나 검찰에 대한 저항이 핵심은 아니었다. 정치의 변방에서 중심으로 그를 이동시킨 것은, 놀라운 경제성장에 비해 한없이 취약하고 힘겨운 시민들의 삶을 변화시킬 것이라는 새로운 정책 아이디어와 실행력이었다.
그는 족보와 ‘라인’이 중요한 한국 정치계와 거리가 멀었고, ‘그 나물에 그 밥’ 같던 정책 이야기를 반복해오던 이들과도 달랐다. 마치 스타트업을 시작한 창업가처럼 나타나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는 정책기업가이자 정치기업가였다.
성남시장에서 경기도지사로, 경기도지사에서 당의 대표와 대선 후보까지 그의 진격은 놀라웠다. 청년에게, 나아가 전국민에게 기본소득을 주겠다는 그의 정책은 무모하게 보인다는 비판을 받았고, 기본사회라는 비전은 낯설었다. 하지만 지난 20년 동안 선진국 중 최악의 출산율, 자살률, 노인 빈곤율을 기록한 대한민국에서, 기존의 정책들은 차이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래서, 그의 제안은 한국 사회에 논쟁적이지만 반가운 바람이었다.
그의 진격은 누군가에게는 매우 불편하고 비합리적인 것이었다. 모두에게 똑같은 소득을 준다고? 그냥 빈곤층에게 더 많이 주는 게 낫지 않아? 만일 재원의 규모가 더 커지지 않고 현재와 같이 한정되어 있다면 보편적 지급은 역진적이다.
그의 아이디어가 더 나은 대안이 되기 위한 조건은 보편적 지급의 재원을 마련하는 데에서 온다. 빈곤층에게만 주는 제도보다 훨씬 더 큰 규모의 제도를 실행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재원이 필요하게 되고, 이를 위한 증세를 통해 불평등은 줄어들게 된다.
권력에 가까워질수록 그의 아이디어는 더 강한 저항에 부딪혔다. 그래서 아마도 대선 때에는 이 아이디어를 버리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증세라는 불편한 이면의 이슈에도 불구하고, 경제 효과라는 논리를 장착하고 선거에 임했다. 아쉬운 선거 패배 이후에는 야당 대표로서 다시 유사한 민생회복지원금이라는 어젠다를 제안하였다. 끈질겼고, 진심이 느껴졌다.
그런 그와 민주당이 금융투자소득세 폐지라는 결정을 내렸다. 금투세의 예상 세수 규모는 더 나은 복지국가와 기후 전환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다. 하지만 수입이 있는 곳에 조세가 있다는 상식을 세우고, 보편적 증세를 이끌어내기 전 조세정의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첫 단추였다.
이 결정은 이재명 대표를 성장시키고, 차별된 정치인으로 만들었던 기반을 위협한다. 이 작은 증세도 설득하지 못하는데, 기본사회와 이를 위해 필요한 보편적 증세를 이끌어낼 수 있을까?
만일 그의 계획에 증세가 없다면, 그가 지금까지 말했던 보편적 소득이나 서비스의 역진성과 효율성에 대한 비판은 어떻게 뛰어넘을 수 있는가?
만일 그가 지금까지 주장한 정책들을 포기한다면, 한국 사회를 전환할 그의 대안은 무엇일까?
그가 정치적 이해를 위해 택했을지 모를 이 결정은, 그를 무색무취한 정치인으로 만들 뿐 아니라, 그의 과거 주장들을 복잡하게 합리화해야 하는 어려운 처지로 밀어 넣고 있다.
그는 내내 포퓰리스트라는 비판을 받았다. 대중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엘리트와 대립하며, 대중들이 이해하기 쉬운 단순한 해결책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그는 포퓰리스트이다. 하지만 그 자체가 문제일 수 없다. 다만 정치의 이해에 따라 그의 정책들이 쉽게 변한다면 그것은 심각한 문제다.
재판의 높은 파고가 그를 기다리고 있다. 공정한 판결만이 있기를 바란다.
하지만 이러한 외적 위기뿐 아니라 그의 다른 위기도 시작되었다.
외적 위기와 달리 이 위기를 풀 수 있는 열쇠는 본인에게 있다.
최영준 |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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